문화일보 2005년 신춘문예 당선작
즐거운 제사/ 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메 : 제삿밥
저분(箸分, 저붐): 젓가락
박지웅 시인의 **「즐거운 제사」**는 죽음을 슬픔이나 단절로 보지 않고, 삶의 연장선상에서 가족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이자 ‘교감’의 시간으로 그려낸 아름다운 시입니다.
전통적인 제사가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라면, 이 시 속의 제사는 제목 그대로 따뜻하고 평온하며 심지어 ‘즐거운’ 풍경으로 묘사됩니다. 주요 대목별로 해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 슬픔을 넘어선 '포근함'
보통 제사는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자리이기 쉽지만, 시인은 이를 **‘즐거운 제사’**라고 명명합니다. 이는 죽은 이가 공포나 허무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을 찾아와 온기를 나누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2. 주요 구절 풀이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제사가 형식적인 절차(제례)를 넘어, 조상과 후손이 본격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교감의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반복되는 이 구절은 시 전체에 안정감을 줍니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이 시의 핵심적인 통찰입니다. 이승의 가족(산 것)과 저승의 아버지(죽은 것)가 제사상 앞에서 만나는 순간을 ‘고운 향’으로 표현했습니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화로운 풍경이 됩니다.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술잔에 담긴 맑은 술, 혹은 그리움의 감정을 뜻합니다. 너무 맑아서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시린) 역설적인 슬픔과 사랑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제사상의 나물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연결한 재치 있는 비유입니다. 죽은 이를 기리는 자리에서도 새로운 생명(아이들)이 복작거리는 모습은 대를 이어가는 가족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선친의 순한 이웃들"
아버지 혼자 오신 게 아니라, 저승에서도 좋은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오셨을 거라는 상상은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조차 ‘순한’ 공간으로 치환됩니다.
3. 공간의 확장: "멀리 山도 편하다"
제사를 지내는 방 안의 평화로움이 창밖의 자연(산)으로 확장됩니다. 아버지가 편히 앉아 계시니 세상을 구성하는 자연조차 편안해 보인다는 감각의 전이입니다. 이는 제사가 단순히 귀신을 부르는 행위가 아니라, 우주적인 질서와 화해하는 시간임을 암시합니다.
4. 핵심 정리
주제: 제사를 통해 확인하는 가족 간의 사랑과 삶과 죽음의 따뜻한 공존.
특징:
감각적 묘사: 촛불이 튀는 소리(툭, 툭), 향기, 시린 촉각 등을 통해 제사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합니다.
역설적 표현: '즐거운 제사'라는 표현을 통해 죽음의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냅니다.
포용성: 가족뿐만 아니라 선친의 이웃까지 불러들이는 넉넉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느낌은 제사가 끝날 무렵 우리 마음속에 남는 깊은 위로를 뜻합니다. 결국 이 시는 제사란 떠난 이를 보내는 슬픈 예식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의 온기를 빌려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사상의 풍경을 아주 세밀하고도 따뜻하게 관찰한 대목입니다. 이 구절은 제사를 지낼 때 어머니가 보여주시는 지극 정성과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시어들을 중심으로 풀이해 드릴게요.
1. 시어의 의미
메: 제사상에 올리는 **'밥'**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저분(箸分): 젓가락을 뜻합니다. 제사 때는 젓가락을 나물이나 고기 등 음식 위에 가지런히 놓아드리는데, 이를 '저분'이라 부릅니다.
탕(湯): 제사상에 올리는 국입니다.
2. 구절의 의미 해석
"저분 매만지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아버지가 드시기에 젓가락 위치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음식이 흐트러지지는 않았을지 끊임없이 살피십니다. 여기서 '매만진다'는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떠난 남편을 향한 어머니의 여전한 사랑과 정성을 손길로 표현한 것입니다.
"밀린 듯 일어나"
이 표현이 백미입니다. 제사상 앞에 엎드려 아버지를 대면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한참을 머물고 싶지만, 따뜻한 국을 새로 갈아드려야 하는 제례의 절차(혹은 아버지를 대접하려는 마음)에 등 떠밀리듯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아쉬움과 분주함이 교차하는 지점이죠.
"탕을 갈아 오신다"
제사 중간에 식은 국을 물리고 뜨거운 국으로 바꾸어 올리는 **'갱개(羹改)'**의 과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어 했던 아내의 마음이 죽음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이 대목은 제사를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정말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일상적인 식사 시간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어머니의 손길을 통해 죽은 이와 산 이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집안 전체에 **'포근한 사랑의 공기'**가 감도는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한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