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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82년에 구석회의 협조로 KBS와 함께 제1회 나라꽃 무궁화 전시회 열다
삼육대학도 1982년에 구석회의 협조로 KBS와 함께 우수 품종 전시회를 개최했다. 원예학 교수 윤평섭의 노력으로 개최된 제1회 나라꽃 무궁화 전시회는 준비와 효과면 에서 가장 성공적인 행사라 여겨지고 있다. 그 이후에는 학교의 사정이나 연구학자들의 연구가 시작된다.
연구실적을 살펴보면 그 모체(母體)가 되는 연구 단체는 대학과 정부의 전문 연구기관의 두 곳으로 구분된다. 서울대, 고려대 등 몇몇 대학의 연구기관이 있었으나 서울대 농대가 제일 활발한 연구를 했었다.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와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이 정부 연구기관을 대표한다. 각 연구기관별로 그 실적을 살펴보자.
서울대 농대
서울대 농대는 1969년도부터 무궁화 시범포를 조성하고 외국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무궁화를 도입하였다. 류달영을 중심으로 염도의, 김일중, 김성진 등이 연구에 참여한 이들이며 1972년도에 이어서 1973년도에는 무궁화 종류별 전시회를 가져 그때까지 무관심했던 무궁화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외국에서 도입한 종류의 무궁화을 모수(母樹)로 하거나, 또는 우리의 수집종 중 우수한 종류를 교잡(交雜)시켜 화랑, 아사달, 배달 등의 무궁화 대표 품종을 발표하였다.
◀서울대 농대 원예과 학생들
우리 이름으로 붙여진 무궁화 종류가 100여종에 이르는데 그 중 3분의 2에 가까운 것이 서울대 농대에서 자생종 중 육성종이거나 또는 외래도입종의 교잡 종이 아니면 우리 품종 중의 우수 품종으로 선발된 종류이다. 서울대 농대는 1983년 당시 문교부 학술연구 조성 사업 연구과제로‘무궁화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주요 연구과제는 다음과 같다.
하나, 무궁화 육종에 관한 기본 방침 둘, 무궁화 화분관(花粉管)생장 중 암술의 단백질 및 동위효소(同位酵素) 변화추적에 관한 연구
셋, 무궁화의 자가(自家)빛 타가수분(他家受粉)에 따른 화분관 신장의 차이에 관한 연구 넷, 무궁화 암술 절제(切除)수분에 의한 자가수정 시도에 관한 연구
이 연구는 2년 과정이며 1984년에 마감하였다. 1985년부터 2020년까지 36년간 무궁화 선양운동을 펼치는 동아일보사는 서울대 농대에 연구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연구의 주요 과제는 우수한 무궁화 품종육성 및 관리에 관한 장기적인 연구계획 수립 및 실행이다. 이 연구과제는 류달영, 염도의가 활발히 전개하였으나 지금은 염도의의 타계로 인해 김기선·박효근이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1982년에 이어 1983년까지 2년간의 과제로 서울 특별시가 서울대에 연구기금을 지원하였는데 연구를 위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 무궁화 육종에 관한 기본방침
둘, 우수 품종 선발 육종실험
셋, 개화수명이 긴 품종의 선발
넷, 개화시기가 빠른 품종의 선발
다섯, 개화시기가 늦은 품종의 선발
여섯, 시비(施肥)에 의한 개화증진에 관한 연구
일곱, 전정에 의한 개화증진에 관한 연구
여덟, 무궁화 수집(蒐集)
연구의 시작 시기는 극히 짧다고 하겠으나 그 실적은 실로 세계적이라는 것이 학계와 관계자들의 거론이다. 무궁화 종류별 전시회는 1972년 서울대 농대의 교정에서 개최된 것에 이어 1973년 8월 18일부터 31일 까지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서 개최되었다. 이때는 무궁화만 가지고 전시회를 연 것은 아니다. 잔디 전시도 함께 했다. 참석한 이들도 그 당시 사회의 저명인사인 유봉영, 정비석, 윤극영, 최태호 등이었고 문교부와 문화공보부의 후원으로 열렸다. 제3회 전시회는 1974년 8월 15일부터 25일까지 신세계 옥상에서 2회 때와 같이 잔디도 함께 전시하였다. 제3회 전시회 이후에는 전시회의 성격을 띤 행사는 없었다. 10년만에 KBS와 공동으로 1983년 8월 12일부터 KBS 본관 특별전시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는 꽃의 종류와 전체 화분의 규모가 제1회부터 제3회 전시회 때보다 훨씬 컸다.
임목육종연구소
원래 임목육종연구소의 주된 목적은 임목의 식생과 육종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무궁화를 연구하게 된 연유는 1958년 김정석 등의〈4종의 배수체(倍數體)유도시험(誘導試驗)〉에서 비롯된다. 주요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임목육종연구소
하나, 본 실험(本實驗)은 생장(生長)이 왕성(旺盛) 한 할엽수림목(潤葉樹林木) triploid의 획득(獲得)을 목적(目的)으로 하고, 우선(于先)그 첫 단계(段階)로 co1chicine 처리(處理)에 의(依)한 tetraploid 유도(誘導)를 시험(試驗)하였다. 둘, Robinia pseudoacacia 외 4종의 활엽수종자(潤葉樹權子)를 사용(使用)하여 종자(種子) 침지(浸漬) 로 최적처리법(最適處理法)을 발견(發見)하고자 농도별(濃度別) 및 처리시간별(處理時間別)로 각각 시험 (試驗)하였다. 셋, 0.1∼0.6%의 colchicine액으로 25∼33℃의 incubator 내에서 2∼140시간 처리하였다. 넷, 종자는 참오동나무와 양버들을 제외하고는 저온(低溫)으로 발아(發芽) 예조(豫措)를 행한 것을 공시(供試) 하였다.
김정석은 빈번한 선양 운동인들과의 접촉으로 1979년 9월에는 임목욱종연구소의 시험포에서 선발 한 것 중에서도 가장 특성이 있는 것으로서 17개 종류의 신품종을 선발하였는데 그 무궁화의 이름은 광명, 광복, 덕안, 아사녀, 한얼, 천사, 귀빈, 새마음, 새롬, 이슬, 한샘, 새얼, 동자, 늘벗, 모정, 한마음, 새겹이다.
◀무궁화 품종 명명식(1979. 9)
17개 종류의 무궁화는 1979년 9월 23일 경희대 자연박물관서 명명식(命名式)을 가졌는데, 이 명명식에 참여한 이는 발표한 논문에 근거하면 류달영, 김정석, 정현배, 전상근, 이영로 등 연구학자와 조사연구비를 지원한 최승권, 김기현과 선양운동의 일선에서 애써온 윤석산,박한춘, 배남수, 김병현, 박춘근 등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임목육종연구소의 연구설적이라 하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점도 있으나 당시 연구조사의 책임자인 김정석은 육종과장과 식생(植生)과장의 직책에 있었고, 또 모든 연구가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이루어진 점을 들어 이 연구를 임목육종연구소의 실적이라 한다. 이후에는 다소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연구의 주체가 되는 이들의 퇴진에도 그 이유가 있겠으나, 행정적으로도 무궁화 연구는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가 아닌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이라는 감사 당국의 시정조치에 따라서도 그렇게 되었다. 1980년부터 1987년도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1988년 2윌에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의 4월 5일 식목일 행사가 임목육종연구소 현지에서 있었을 때, 무궁화 연구를 활발히 추진하라는 말씀에 따라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무궁화 연구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 다시 시작되었다. 무궁화 연구는 김정석에 이어서 이석구 박사가 담당하여 몰두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의 제2차 무궁화 500만 그루 심기 범국민 운동이 전개되자 환기를 되찾으며 새로운 연구에 돌입했다. 4년간의 연구 결실에 따라 1990년 8월 7일에는 2 종의 신품종 무궁화가 이석구 등의 연구진에 의해서 개발되었는데 이는‘진자주 무궁화’와‘개량자주 무궁화 1호’이다. 지금은 연구관 송원섭 등이 새로운 진영으로 연구를 하고 있으며, 1990년 11월 하순에 가진 바 있는 한국무궁화연구회의 품종명명위원회와 신품종선발 위원회에서는 임목육종연구소의 시험포장에서 선발된 것 중에서 선덕, 불새, 난파, 개량단섬, 칠보, 고주몽, 원화, 칠보아사달 등 7 종류를 새롭게 세상에 선보였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의 무궁화에 대한 관심으로 8·15 기념행사는 물론 3·1절과 주요 기념일에 무궁화로 식전을 수놓게 되었으며, 이는 명실공히 무궁화를 나라꽃으로서 격상시켰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임목육종연구소의 공로가 크다 하겠다. 전국적으로 노거수 조사시에 빼어난 꽃모양과 꽃 색깔을 지닌 무궁화 몸체에서 굴취한 삽수 포장에서 아주 좋은 종류의 꽃이 새롭게 생겨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임목육종연구소의 요즘 연구 상황이다.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
화훼담당관 홍영표를 중심으로 무궁화 연구를 해 온 원예시험장은 김강권, 이정식, 김성진 등의 참여로 전국 72개 지역에서 155개체(個體)의 지방종(地方種)을 수집, 5년에 걸쳐 그 생장 특성을 조사 연구하였다. 화색과 화형, 수세(樹勢)와 생장력 등을 두루 조사하여 가장 우수한 것 8 종류를 1979년 9월 1일 원예 시험장 회의실에서 가진‘국내수집 무궁화 우수계통의 명명식’에서 무궁화 연구 학계의 원로인 류달영 을 비롯 김병우, 곽병화 등 식물학자와 진흥청장과 김인환 장장(場長), 홍순우 원예시험장 연구 담당자 그리고 구석회, 최승권, 검석겸, 박춘근 등 선양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판명하였다.
◀원예시험장
이 날 제1차의 명명 시안(試案)에 이어 제2,제3차의 서류검토 결과 임진홍, 영광, 나보라, 향단, 화홍, 서호향, 옥녀, 아랑의 8 종류를 신품종으로 명명 발표하였다. 홍영표·이정식 연구관은 쉬지 않고 무궁화의 육성 개량에 힘써 온 결과 1983년에 초롱, 한얼 의 2종도 발표했다.
1980년 5월 16일자《동아일보》에 보면 컬러판으로“개발종 임진홍(臨津紅)은 화형 정연, 화심(花心) 선명···”이라고 적은 후에 8 종류의 명명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1979년 10월 25일 자《소년한국》에 서는“농촌진흥청 홍영표·이정식 씨가 연구”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 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 나라 꽃, 나라마다 그 민족의 특징을 상징하는 국화 가 있듯이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은 무궁화이다. 겨레의 꽃 무궁화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며 끈기가 서려 있다. 그런데 수원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 연구관 홍영표·이정식 연구팀은 무궁화를 개량하여 더욱 크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웠다.
이 기사에서 원예시험장의 연구설적을 생생히 알 수 있다.
이후에는 별다른 연구보고가 없었으나 1991년 8월 12일에 개최된 제1회 나라꽃 무궁화 큰잔치에 100여 점의 무궁화 종류별 분화를 출품하였다. 많은 이들은 어느 연구기관, 대학의 시범포에 못지 않은 원예시험장 무궁화 모수포(母樹圃 )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바람에 아주 빈약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지적한다. 최주견 무궁화 박사가 홍영표의 후임으로 화훼과장이 되자 그는 지난날의 활발한 연구 과정과 실적을 되찾기 위하여 중흥과 도약의 깃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밖의 연구기관과 실적
고려대 농대는 동아일보사와 같은 재단이라는 입장으로 서울대 농대와 같은 조건 아래 곽병화 등 농대의 원예학 교수들이 무궁화의 개량 증식에 몰입했다. 고려대 농대 무궁화 연구팀은 독도에 우리의 화랑, 신태양 등의 무궁화를 심기로 하였으며 해변의 암벽토질에 잘 자라는 황근(黃槿)을 집단적으로 심는 방안도 연구 발표했다. 그 실적이 어떠하였는지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다만 지금도 많은 묘목이 시험포에서 증식되고 있어 곧 우량 품종의 우수 묘목을 일반인에게 분양하여 심게 할 것이다.
삼육대학도 1982년에 구석회의 협조로 KBS와 함께 우수 품종 전시회를 개최했다. 원예학 교수 윤평섭의 노력으로 개최된 제1회 나라꽃 무궁화 전시회는 준비와 효과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행사라 여겨지고 있다. 그 이후에는 학교의 사정이나 연구학자들의 형편 이 연구를 계속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별로 그 실적이나 과정은 볼 수 없다. 고려대 농대와 삼육대학에 이어서 뚜렷하게 연구실적이 학계에 발표된 대학이나 기관은 많지 않다. 그러나 관심은 여러 대학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시립대학, 서울여대, 효성여대, 순천대학, 건국대 충주 캠퍼스등이 그 범주에 든다. 이러한 관심은 한국무궁화연구회의 회원인 교수들 이 무궁화 자생지·군락지 및 노령목 조사 연구에 참여하면서 갖게 된 것이다. 경희대 산업대학도 한때에는 상당한 열의를 갖고 무궁화에 대한 연구와 전시회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가졌다. MBC와 공동으로 주최한 무궁화 전시회는 1984년 8월 13일부터 25일까지 세종로 교보빌딩 옆 녹지 공원에서 개최되었다. 제1회에 이어서 제2회 ,제3회 는 대학로에서 있었다. 제4회 전시회는 주최측 사정상 열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제5회 전시회는 ’88 서울 올림픽 문화행사의 하나로 열렸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기간 중에 있었기 때문에 기온상으로 이미 좋은 꽃을 보기는 어려웠고, 또한 장소도 서울이 아닌 신갈에 위치한 경희대 수원 캠퍼스였기 때문에 참관인(參觀人)도 별로 없었다. 이 전시회는 방송국이라는 특성상(特性上)전시회 이름을 구별하여, KBS의‘나라꽃 무궁화 전시회’에 대해 MBC는‘국화(國花)무궁화 전시회’라 하였다.
◀KBS사보에 실린 제1회 나라꽃 무궁화 전시회 내용
대학이나 단체 또는 기관은 아니나 무궁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더러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당시 원자력연구소의 권신한 등이다. 권신한은 무궁화 삽수에 X-Ray를 투사(投射)하 거나 원자력 방사능 처리를 하면 염색체가 파괴된 무궁화의 변이종(變異種)이 다수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세울 것이 없는 듯 지금까지 주목받는 연구발표는 없다. 창경원 식물과장 곽동순, 자원식물학자 최영전도 무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나 직접 연구를 한 것은 아니고 학술연구나 선양 애호의 대열에 기꺼이 참여해 온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