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를 너무 좋아해서 죽다니 태블릿 피시로 장티푸스를 찾아보던 산아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벌레가 문제였다며 장티푸스를 살모넬라타이피균에서 발생하는 급성전신감염질환으로 파리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소리 내 읽었다. 산아는 뭔가를 너무 좋아하면 역시 안 되는 거 같다고 말했다. 불행해진다고. 나는 산아가 쓴 불행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신경 쓰였다.
“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너무 좋아하는 게 생겨 버리는 걸까? 엄마도 돈이면 다 좋다고 하고 오빠는 게임만 하고. 이모도 그런 게 있어?”
나는 생각을 더듬었다 좋아하는 상태를 더 심화시키는 ‘너무’라는 부사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면 늘 금성무, 어쩜 성마저 이씨라서 조선의 명장군과 이름이 같아져 버린 순신이 떠오를 따름이었다. (p.118)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무거운 무력감과 새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되는 상실을, 걔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가르쳐 주었다. (p.156~157)
키워드
#김금희 #역사소설 #창경궁대온실 #오려내고싶은기억 #상처를마주하고치유하다 #영두의성장소설 #사람은변하지않는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