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지 못한 꽃을 찾아서
박순철
효자 정재수 기념관을 찾은 날, 겨울 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기념관 마당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고, 마른 낙엽만이 바람에 밀려나며 구석을 맴돌았다. 낙엽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적막을 긁고 지나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전시실을 천천히 거닐며 그의 짧은 생애를 더듬어 보았다. 사진과 기록들 앞에 멈춰 설 때마다, 설명문 속 문장들은 또박또박 말을 건네왔지만,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서늘한 공허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효를 말하던 시대는 점점 멀어지고, 그 이름 또한 기억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듯했다. 이제 효자 정재수 군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입에서 전해지기보다, 먼 설화처럼 희미한 울림으로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기념관을 나와 나는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는 고개를 향해 차를 몰았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입김은 하얗게 흩어져 금세 허공에 사라졌다. 고개는 높지 않았으나,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다. ‘효행비 정재수’라 새겨진 비석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곁에는 봉분만 남은 작은 무덤 하나가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 빛이 바랜 조화 한 다발이 차가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누가 이곳까지 찾아와 두고 갔을까.
묘 앞에 서는 순간, 시간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1974년 그날의 눈보라가, 잊힌 기억의 틈을 비집고 다시 불어오는 듯했다.
섣달그믐이었다. 아홉 살 재수 군은 새 점퍼를 입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섰다. 설을 쇠기 위해 옥천 큰집으로 향하던 길, 여느 가족처럼 설렘으로 시작된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하늘은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눈보라가 길을 삼켜버렸고, 희미하던 산길은 끝내 방향을 잃고 말았다.
고개를 넘던 중, 술기운에 휘청이던 아버지가 눈길에 쓰러졌다. 어린 재수는 놀란 마음으로 아버지를 흔들며 목이 터지라 불렀을 것이다. “아버지!” 그 간절한 외침은 매서운 눈발에 부딪혀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졌으리라.
그날의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나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차로 오 분 만에 그 고개에 닿았지만, 그 시절은 옷도 장비도 넉넉지 않던 때였다. 거센 한파는 어린 소년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했다. 그럼에도 재수는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입고 있던 새 점퍼를 벗어 아버지의 몸 위에 덮고, 작은 몸으로 힘껏 끌어안았을 것이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떨리는 숨결로 그렇게 되뇌며, 아버지의 체온이 꺼지지 않기만을 빌었으리라.
그러나 흰 눈은 소리를 삼키고, 산길에는 사람의 기척 하나 없었다. 길 위에 남은 것은 점점 희미해지는 숨결과, 아버지를 향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어린 두 팔뿐이었을 것이다. 그 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마지막 온기를 다 내어준 아이는 끝내 제 꽃봉오리 한 번 피워보지 못한 채 눈 속에 스러졌다.
이튿날, 부자의 주검이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오래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끝까지 지켜낸 효심 앞에서 누구도 쉽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교과서와 신문에 실려 온 나라를 울렸고, 학교에는 기념관이 세워지고 비석도 세워졌다.
그러나 세월은 무심하다. 이제 그 고개는 아스팔트로 단단히 포장되어,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넘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눈보라에 길을 잃던 날의 숨 가쁜 발자국은 사라지고, 기억만이 희미한 자국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지만 않았더라면….” 또 다른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뿐”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린 한 생명이 끝까지 붙들어낸 인간의 품위였다고 믿는다. 사랑이었고 책임이었으며, 두려움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맑은 결단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비극은 단순한 사고로 머물지 않고, 오래도록 가슴을 울리는 증언이 되었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사뭇 다른 소식들이 들려온다. 부모에게 손을 드는 자식, 늙은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들. 뉴스 속 문장들은 건조하고 차갑다. ‘패륜’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던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보라 속 고개 위에 웅크렸던 작은 등을 떠올린다. 끝내 활짝 피어보지 못한 꽃이었으되, 그 향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어쩌면 우리는 그 향기를 따라가며 잃어버린 길을 되짚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정재수 군의 묘 앞에 서서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효란 낡은 교훈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마지막 온기일지 모른다. 누가 보지 않아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그 추운 밤 제 몸으로 그 길을 증명해 보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이름 없이 바람에 마모된 봉분일지라도, 그 자리에는 아직 시들지 않은 무엇이 숨 쉬고 있었다.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묻고 있는 한 송이 꽃이.
2026년 한국산문 7월호 발표
박순철 약력
충북 괴산 출생. 월간『수필문학』천료등단(1994년)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수필문학추천작가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2004년) 제30회 수필문학상(2020년)수상 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외 다수. 콩트집 『소갈 씨』엽편소설집『목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