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4백만 관객의 비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이 2월 29일 현재 4백만 명이 보았다고 한다. 한국 영화사에서 관객이 4백만 이상 몰려드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것도 이른바 '문제성' 있는 작품에서...
개봉 초기에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대히트를 예감했으면서도, 실제로 이 정도까지 성공하리라고는 짐작 못했다.
<부러진 화살>이 수백만 관객을 몰려들게 한 비밀은 무엇일까? <부러진 화살> 흥행 자축연에서 국민배우 안성기 씨와 함께. 뒤에 있는 사람이 <부러진 화살>을 만든 정지영 감독이다. 궁금하던 차에 <부러진 화살> 흥행 자축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영화를 제작한 아우라픽쳐스의 정상민 대표가 문자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정상민 대표 역시 영화 감독으로, 정지영 감독의 아들이다. 정지영 감독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오랜 친분이 있다. 함께 여행도 가고 명절이면 인사도 오가는 사이다. 정지영 감독의 아들 정상민 대표는 초등학생일 때 처음 만났다. 아빠를 닮아 미소년이었다. 자축연은 2월 24일 금요일, 연극의 거리 혜화동 샘터사 뒷골목의 '張'이라는 식당에서 열렸다. 우리 부부는 선약까지 바꾸어 가며 자축연에 참가했다. 그만큼 정지영 감독의 성공이 우리 일처럼 기뻤다. 평소 정지영 감독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작품 세계만 아니라 인품 역시 참 좋아한다. 자축연 장소에는 많은 영화인이 참가했다. 식당 위아래층에 축하객이 가득했다.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친숙한 얼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의 부인 역으로 나온 영화배우 나영희 씨와 함께. 옆에서 기분 좋게 웃는 분은 영화 대기자이자 영화평론가 김두호 전 굿데이신문 편집국장이다. 먼저 식사를 한 뒤, 자축연에 참가한 원로들의 축사로 공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정지영 감독의 스승인 김수용(84세) 감독이 첫번째로 마이크를 잡았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만든 <안개> 등 예술성 높은 영화를 만든 원로 김수용 감독은 "정지영이가 자기 세계를 고집하면서 영화를 만들더니 이렇게 성공했다"며 대견해 했다. 노 감독의 떨리는 목소리가 가슴까지 전해져 왔다. 정지영 감독의 스승 김수용 감독의 축사.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고집해온 정지영 감독을 대견해 했다. 다음으로 영화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인 황기성 사단의 황기성 감독이 축사를 하였다. 황 감독은 "나는 한국에서 나오는 영화는 다 본다. 초대권이 아니라 영화표를 사서 본다" 고 말하고 "돈돈 하는 요즘 영화계에서 돈 얘기 안하는 영화 만들어 너무 좋았다. 돈 얘기 안해도 이렇게 성공하지 않나?" 하며 함께 기뻐했다. 돈만이 최고인 듯 가치관이 변해 버린 요즘 세상에 예술성을 강조하는 노감독의 말씀에 나도 십분 공감했다. "<부러진 화살>이 돈 돈 하는 요즘 영화계에서 돈 얘기 안하고 성공해서 더욱 기쁘다". 황기성 사단의 황기성 감독의 축사. 세번째로 나의 블로그 친구인 <홈즈네 집>의 주인인 '키크고 싱거운 넘'의 축사가 이어졌다. "몇 달 전 우연히 정 감독을 월드컵 공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요즘 무엇 하느냐고 물었더니 석궁 테러 사건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런 단순한 사건으로 무슨 영화를? 안돼~~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감탄하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부러진 화살을 쏘았는데 이렇게 성공했으니 앞으로 안 부러진 화살을 쏘면 정말 더 대단할 거"라며 싱거운 농담도 잊지 않았다. 누가 '싱거운 넘' 아니랄까봐... ㅎㅎ. 블로그 <홈즈네 집>의 주인장 '키크고 싱거운 넘'도 축사를 했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지키는 정지영 감독의 예술성에 감탄하며... 다음으로 주인공인 정지영 감독에게 마이크가 넘어 갔다. 정 감독은 "모두가 스텝 덕분"이라고 모든 공을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돌렸다. 정지영 감독이 스텝에게 영광을 돌린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러진 화살>은 15억으로 제작한 저예산 영화라고 한다. <남부군>, <하얀 전쟁>의 성공 이후로 좋은 작품을 만들고도(내가 본 것으로는 <블랙잭>, <까> 등이 있다)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정지영 감독. 그래서 혹시 그의 작품 활동이 끝난 것이 아닌가 우려하던 사람들이 있던 중에 국민배우라 일컫는 안성기 씨, 문성근 씨, 나영희 씨, 이경영 씨, 박원상 씨, 김지호 씨 등 유명 연기자들이 <부러진 화살>에 그야말로 '재능 기부'를 했고, 제작진 역시 저예산으로 최선의 작품을 만드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정지영 감독의 말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지면서 후배 감독들이 선물을 마련해 왔다. 후배 감독들이 한 선물은, 선배의 작품 성공에 대한 축하의 메시지를 적은 것. 할 말들이 많았는지 적은 카드를 파노라마처럼 길게 이어붙였다. 보는 이도 코끝이 찡하게 만드는 선물이었다. 후배 감독들이 정성껏 마련한 축하 메시지를 펼쳐 보이는 정지영 감독
이후부터 출연진의 소감이 이어졌다. 주연인 안성기 씨가 일어나 "오늘 처음으로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를 만났다. 이렇게 부드럽게 생기신 분이 그렇게 심지가 단단하실 수가..." 하면서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하얀 전쟁>에 출연하면서 그 만남이 좋아서 이번 영화에 무조건 (출연)한다고 했다, 이제 나이가 60대가 되었는데, 앞으로 70세가 되어도 계속 따라가겠다"고 하여 박수를 받았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을 맡은 안성기 씨. 이날 자축연에서 처음으로 실제 주인공 김명호 교수와 만났다고 한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부인 역을 맡은 나영희 씨. 나영희 씨는 은막에서 볼 때나 TV 화면에서 볼 때나, 실제로 볼 때나 맑고 우아해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영희 씨는 "<부러진 화살>에 관객이 많이 든다는 말이 들려오면서부터 매일 관객 수를 세어 보게 되었다"며 함께 작품을 한 사람의 기쁨을 표현했다. "매일 관객 숫자를 세어 보며 기쁨을 느꼈다"는 주인공 부인 역의 나영희 씨. 멀리서 찍었더니 사진이 영 시원찮다. 그래서 작게 줄였다.
이어서 주인공의 변호사 박훈 역할을 맡은 박원상 씨 차례. 회색 후드티 차림의 박원상 씨는 자신은 말주변이 없다며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석궁 테러 사건의 실제 변호사(오른쪽)와 영화 속에서 박훈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 박원상 씨
다음으로 판사 역을 맡은 이경영 씨가 일어나 "오늘 이 현상이 데자뷰처럼, 20년 후에도 이렇게 모두 기쁘게 이대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멋진 한마디. 판사 역을 맡았던 이경영 씨는 "데쟈뷰처럼 20년 후에 오늘 이대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멋진 소감을 말했다. 이어서 또 다른 판사 역을 맡은 분. 이분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것을 많이 봤는데 성함을 잘 모른다. 어쨌든 불성실하면서도 무성의한 판사역을 잘 소화해내서 인상 깊었다. "주변 사람들이 길 다닐 때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악역을 맡은 고충을 말하면서 "앞으로 양심적으로 잘 살겠다"고 말해서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분 사진 역시 멀리서 찍어서 잘 안나왔다. 그래서 작게 편집...
검사 역을 맡은 분. 멀리 있어서 얼굴이 잘 안보인다.
이밖에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명품 얼굴에 명품 연기를 하는 유해진 씨가 축하의 자리에 함께 했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블랙잭> 출연이 자신의 데뷔작이었다며, "정 감독의 작품이 성공한 것이 너무 기뻐서 왔다"며 축하를 했다.
이 전인가 후에 서글서글한 여배우 김지호 씨도 인삿말을 했는데 메모도 못하고 사진도 제대로 안나왔다. 유감.
명품 얼굴에 명품 연기의 배우 유해진 씨도 와서 축하.
나는 평소 사진 찍기나 찍히기 모두 그리 즐기지 않고, 별로 챙기지도 않았는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블로그 내용을 좀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래서 이날 처음으로 영화 배우들과 사진도 찍었다. '싱거운 넘'도 배우 안성기 씨와 한 컷 찍었다. 자신의 블로그 <홈즈네 집>에 싣기 위해서일 거다. 내가 먼저 갖다 써야징.
안성기 씨와 홈즈 아빠 '키 크고 싱거운 넘'. 안성기 씨는 겸손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인 듯하다. 그래서 국민배우란 말을 듣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기쁘고 즐거운 자리에 함께 해서 행복했다. 그리고 <부러진 화살>에 4백만 관객이 든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번째로 감독의 뛰어난 작품성과 출연진의 뜨거운 예술혼이 어우러졌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그동안 성역처럼 여겨졌던 사법부의 판결까지 엄정하게 감시하는 관객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합류했기 때문이라고 내 나름 결론을 내렸다. 감독과 출연진과 제작진, 관객이 함께 만들어낸 성공이었다.
우리 부부는 2부 공연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오니 행사장 입구에서 석궁 테러 사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교수가 발간한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제목은 <판사, 니들이 뭔데?>. 도전적인 제목이었다.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이 쓴 책 <판사, 니들이 뭔데?>
나는 요즘 서울 서부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서, 그리고 가정법원 협의이혼상담위원, 가사상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판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판사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판사들은 대부분 얼굴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이미지가 조선시대 선비 같았다. 지성적이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처럼 불성실하고 무성의하고 심지어 권력적인 판사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판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이 영화를 보면 어떤 심정이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전의 들뜬 기분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 사회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리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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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저린 손끝 원문보기 글쓴이: 도담
첫댓글 ^^
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