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석유’를 위하여
메주가 뜨고 있는 시골 안방, 할머니의 잠드신 머리맡을 비추는 작은 그 석유 등잔불에도 세계사의 바람이 분다. 깜박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오래 전부터 안다. 지성의 언어는 석유보다도 더 근원적인 생명의 ‘에너지’였을.
그런데도 당신은 어째서 유류파동만을 근심하는가? 한탄하지 말아라. 네온사인 꺼진 도시의 밤거리가 쓸쓸하다고…… 따스하던 아파트의 방이 툰드라의 빙원(氷原)처럼 썰렁하다고……바퀴 달린 것들이 서서히 멈춰가는 정적의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하지 말라. 한 방울의 석유를 아쉬워하기 전에 먼저 언어의 위기, 그 에너지의 궁핍을 생각해야 된다.
삶의 언어들이 빈혈에 걸려 쓰러지고 정의와 진리의 언어들이 양식(良識)의 송유관으로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암흑 속에 묻힌 도시를 보리라. 사랑이 얼어붙고 의식의 창마다 성에가 끼는 추위를 느끼리라. 모든 활동력이 피댓줄이 끊긴 발동기처럼 공전하리라.
지성의 언어도 석유처럼 지층 깊숙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제삼기의 지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있는 곳이면, 인간적인 긍지가 있는 곳이면, 아름다움을 아는 심미의 마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고 깊은 마음을 파기만 하면 샘솟는다.
그런데도 한 방울의 석유보다는 지금 우리는 지성의 언어가 결핍되어 있는 그 추위와 암흑을 괴로워해야 된다. 오직 석유만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세계의 역사가 지금 지성의 언어, 자유의 언어, 양심의 언어에 굶주려 혹독한 추위와 어둠과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 아우성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근심하라. 사막에 꽃을 피우는 것은 석유가 아니다. 거친 땅에 푸른 캐비지를 심는 것은 석유가 아니다. 마이더스*의 손에 다시 인간의 피가 흐르게 하고 늑대가 사슴들의 호수를 흐리지 않게 하는 힘은 석유가 아니다.
생명의 에너지는 언어이다. 아파하는 시인의 언어이다. 사물을 정시하는 지식인의 언어이다. 이 언어들이 송유관을 흘러 개개인의 집에 불을 켠다. 그 마음에, 그 걸음걸이에 힘과 빛을 던진다.
석유가 없음을 한(恨)하기 전에 먼저 울어라. 언어의 고갈을.
*마이더스(미더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 그의 손에 닿은 것은 모두 황금으로 변한다.
지은이:이어령
출 처;『문학사상』.19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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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약>
백석(1912~1296)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녯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녯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토방:방에 들어가는 문 앞에 좀 높이 편평하게 다진 흙바닥 / 여기에 쪽마루를 놓기도 한다.
*숙변: 숙지황
*곱돌탕관: 곱돌로 만든 약탕관.
*밭어놓다: 밭다; 건더기와 액체가 섞인 것을 체나 거르기 장치에 따라서 액체만을 따로 받아 내다. 여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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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침은 새롭습니다. 새롭다는 것은 전과 다르다는 것이고 눈에도 마음에도 설다는 것이겠지요. 낯설기에 긴장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대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새해 새날을 맞았습니다.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소한은 이미 지났고 이제 대한이 오면 곧 입춘도 따라 옵니다. 봄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 속에서 남은 겨울을 좀더 알차게 지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이번 방학중에는 책을 많이 읽어볼 생각입니다. '언어의 고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면서 많이 아파해보려고 합니다. '언어의 고갈'은 바로 '양심의 고갈'이고 그것이 '정의의 고갈'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먼저 해야할 일을 하고,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어느 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유정독서모임은 3월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새해의 벽두입니다.
건강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2026.1.6 저녁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