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카츠의 『법은 왜 부조리한가』(1) - ‘법의 허점’
1. 우리는 법이 범죄자들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때론 분노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세회피를 통해 불법적으로 자금을 은닉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자금을 몰수하지 못하는 경우, 사회적 분노를 일으킨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다양한 ‘감면이유’(심신미약, 부인지, 무능력 등)로 감형되는 경우, 엄청난 폭력을 통해 끔찍한 살인을 했음에도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처벌이 감면되는 사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법학자 레오 카츠는 『법은 왜 부조리한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법의 허점을 조세회피, 자산보호, 정당방위, 증거자료 폐기, 거짓망명 등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법이 갖고 있는 한계를 설명한다.
2. 저자는 법의 허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기준 선택’과 ‘가치의 충돌’에서 찾는다. 다기준 선택이란 우리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 하나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기준들을 종합해서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결국 기준과 원칙의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법은닉’에서는 부당한 이익을 금지한다는 원칙과 개인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재산을 보호한다는 원칙이 충돌할 수 있다. 이런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범죄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몰수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하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이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3. 이렇듯 직관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사실 사회의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매우 불합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수많은 학자들이 밝혀냈다. 저자는 ‘사회선택 이론’이라는 범주를 통해 선택의 역설을 보여주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다. 먼저 ‘투표의 역설’에서는 투표의 방식이나 진행을 통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이때 전혀 선택과는 무관한 대안이나 요소가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수학적, 경제학저 원리를 이용하여 증명한다. 또한 센의 역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면 상생원칙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4. 법의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법을 제정할 때 법이 적용되는 모든 사례를 완벽하게 포함시킬 수 없으며 최종적인 판단에서도 조화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즉 법의 제정과 실제 법의 집행과는 ‘불일치’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일치 이론에 따르면 법의 허점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시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입법자가 모든 경우를 예측할 수 없고, 또 모든 경우를 완전무결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는 이러한 법의 허점에 대처하기 위해 실제적인 피해에 집중해서 판단하는 ‘실질 우선 접근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한 ‘경제적 실질 원칙’같이 이익이 되지 않음에도 한 행위에 숨어있는 의도를 찾아 접근하려는 ‘회피 의도 접근’이 있고, 입법 취지를 고려해서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허점을 막기 위한 방법들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본다.
5.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와 사회선택 이론의 내용을 설명한 후에 세 가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법의 허점이 갖고 있는 문제를 정리한다. 첫째 ‘법에는 왜 허점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법을 제정할 때 누군가가 법을 악용할 목적으로 타당성이 희박하거나 아예없는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허용할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예:소비자 보호법) 둘째, ‘허점을 인지한 후에는 왜 시정하지 못하는가?’에는 “이런 위험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타당성이 있어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허점을 보면서도 달리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변호사들이 이 허점을 이용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에 대해서도 이상론적인 비난보다는 현식적인 수용적 관점을 택하고 있다. “도덕적 비난에 그쳐야 한다. 애초에 허점이 있는 법을 제정하게 된 근거를 생각하면 사건이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경우에만 아따금씩 개입하는 것이 적합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6. 법의 허점에 대한 저자의 논리와 제시된 사례는 조금 허무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수많은 사회선태이론이 밝혀낸 것을 인용하면서 권리와 공정성에 대한 지나친 추구가 결국 권리의 위협을 가져오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때론 오로지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상생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선택 이론에 대한 설명은 수학적인 개념과 경제학적인 원리를 적용하고 활용하면서 상당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각각의 이론의 정당성을 평가하기 쉽지 않지만 최근 윤리학에 대한 수학적, 경제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추세에 대한 흐름을 인식하게 해준다.
7. 결국 법의 허점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다기준 의사결정’이나 ‘상충되는 원칙의 충돌’과 같은 규범적인 문제 뿐 아니라 사회선택이론의 ‘투표의 역설’에서 밝혀낸 무관한 요소을 개입시키거나 투표의 방식 변화를 통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속성상 다기준이라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과 여러 기준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한 이런 허점은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린다. 이런 결론은 변호사의 법의 허점을 노린 행위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이어진다. “변호사가 사실 관계를 묘사할 때 준거틀을 바꾸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비합리성을 유도하기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헤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8.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이나 ‘법은 상식에 규합하여야 한다.’는 직관적인 인식은 수많은 위법 상황에서 나타나는 법의 적용에서 전혀 다른 실망감이나 때론 배신감까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일상적인 법상식을 넘어 법이 갖고 있는 한계와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선택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에 대한 추구와 실현을 위한 목적이 오히려 법의 허점을 만들어낸 중요한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는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법’이 상식과 도덕의 실현이라는 이상을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의 허점이 작동되는 방식을 이해하여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분노를 자제하고 허점이 갖고 있는 문제를 끊임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만든 제도는 분명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커다란 흐름이 존재하지만, 그것 또한 완전무결하고 바꾸지 못할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며, 결국 그것을 조작하고 권력화하는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법의 정의’라는 위험한 메커니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복의 대상인 ‘법’의 본질적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의 현실적인 전개에 대한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뿐 아니라, 법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 -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활개를 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더 촘촘한 법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의 대안을 찾는 노력은 힘이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