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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경전(宗敎(輕典)과 위경(僞經)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한 스님이 운문 스님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지고나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이 답했다.
“몸뚱이가 가을바람에 드러나느니라.”
僧問雲門 樹凋葉落時如何? (승문운문 수조엽락시여하)?
雲門云 體露金風. (운문운 체로금풍).
<성경>에 의하면 천지창조는 6,000년 전에 일어났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생물은 개·소·말·닭 등 종류대로 지금 모양으로 창조되었고, 진흙을 빚어 만든 사람이 사는 에덴동산이 있었고, 엄청난 홍수가 일어나 인간은 노아 가족만 빼고 다 익사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도 노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놀랍게도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 이 말을 안 믿는다. 문학 작품에도 이렇게 무지막지한 구라(거짓말)는 없다.
과학발달에 의해서 반대증거가 너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화학·물리학·천문학·지질학·생물학·진화생물학 등이 제시하는 증거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증거를 부인하며 한사코 성경의 내용을 모두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어처구니없는 내용들을 믿는 걸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걸 창조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크게 자랑스러워하고, 건강한 정신으로 회의(懷疑)하는 사람들을 악마의 자식이라고 비난한다. 지옥, 즉 우주적 아우슈비츠에 떨어질 거라고 저주한다. 야훼는 이상한 존재이다. 왜 우주에 초대형 아우슈비츠를 운영할까? 그리고 왜 영원히 수감자들을 불과 칼로 고문할까? 혹시, 사디스트처럼, 자기가 만든 우주가 비명소리로 가득차는 걸 즐기는 것일까? 악마도 이 정도로 악하지는 않다. 악마에게는 자기가 운영할 강제수용소가 없다. 만약 거꾸로 악마가 지옥을 만들어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며 신이 났는데,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그 고통을 대신하며 사람들을 구한다면 대단히 감동할 일이다. (일시적인) 십자가형은 지옥에서 당하는 (영구적인) 형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훨훨 타는 불에 구워지면 뼈도 못 추리고, 펄펄 끓는 물에 삶아지면 살도 못 추린다. 몸의 꼴이 온전히 유지되지 않으므로, 이러고도 부활(復活)을 한다면 훨씬 더 위대한 기적이 될 것이다.
불교도들 중에도 불경(佛經)에 쓰인 거라면 무조건 믿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과학이 명명백백하게 밝힌 사실에 어긋나는 헛소리를 신앙의 이름으로 맹신한다. 그러고는 오히려 큰소리친다.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자들은 신심이 부족한 불경스러운 자들이라고.
기독교 경전처럼 불경에도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종교경전은 교주가 쓴 게 아니라 제자들이 쓴 것이다. 석가·예수·마호메트는 글을 단 한 줄도 써 남긴 적이 없다. 아마 말하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지혜로운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33년, 61년, 80년 인생이 길건 짧건 모두 하나같이, 할 말을 다하기에는, 시간이 평등하게 부족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르침이란 말의 직선적인 독주곡이 아니다. 신구의(身口意) 삼행(三行)이 서로 녹아들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교향곡이다. 그러므로 말만 분리해 악보처럼 건조한 종이 위에, 생생하고 풍요로운 무대를 잃어버린 모습으로, 기록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설사 교주는 완벽하다 할지라도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불완전한 사람들의 글에는 반드시 불합리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제자들이 신통력을 발휘해 완벽하게 기억해내 썼다는 주장은, 선지자들이 신의 계시를 받아 완벽하게 썼다는 주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하늘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그렇다. 도솔천인의 수명은 수억 년에서 수십 억 년까지, 경에 따라 다르다.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히 성직자들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엄청나게 더 지능이 뛰어나거나 초능력을 지닌 게 아니다. 우리가 지금 망상을 하듯이 그들도 망상(妄想)을 했다. 지금도 남방의 고승들은 점성술을 신봉하고 한국의 고승들은 진화론을 부정한다. 지금 수많은 성직자들이 헛소리를 하고 또 그걸 책으로 펴내듯이 그들도 그리했다. 그게 경전으로 남은 것뿐이다.
이런 말들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큰일 난다. 지혜란, 진정한 실용적인 지혜란, 자기 종교경전의 헛소리들을 감별하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폄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도 최선을 다해 살듯이, 그들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 비록 지금 우리보다는 지식이 한참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생명과 우주에 대해 사유하고 또 살았다. 이 점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진실함과 열정은, 오히려, 지금 우리보다 더 클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근본적인 교리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인종말살과 인신공희를 행하던 구약의 야훼는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과 다른 존재로 간주한다. 유태인들이 엉뚱한 신을 하나님이라 오해했다는 것이다. 소위 환망공상(幻妄空想)적 신이다. 이 이외에는 다 부차적인 것들이다. 근본적으로 이들의 믿음은,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마구 꾸짖고 잔혹하게 벌을 주는 난폭한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와 같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마찬가지로 불교도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삼법인(三法印)·사성제(四聖諦)이다. 대승불교도들에게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정신이 추가된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들이다.
극락도 경전에 있지만, 역사상 많은 스님들이 믿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틱낫한 스님이 대표적인 예이다. 윤회(輪廻)도 마찬가지이다. 통속적인 윤회, 즉 힌두교적 윤회는 안 믿는 사람들이 많다. 스님들 중에도 제법 된다. 예를 들어 정토회 회주 법륜 스님은 공개적으로 윤회를 부인한다. 인도 민속신앙으로 격하한다. 지질학·천문학·진화론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창조주 신을 믿을 수 없듯이, 윤회도 믿을 수 없다. 윤회론은 유전자를 모르던 시절에 생명의 특성의 이어짐을 설명하려던 이론일 뿐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유를 설명하려던 가설일 뿐이다. 방편일 뿐이다. 이제 유전자가 발견되었으므로 수명이 다한 것이다.
윤회론을 안 믿는다고 불교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커진다. 미신(未信)에 억눌려 숨을 못 쉬던 진리가 풀려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말을 걸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과 천문학 때문에 망하는 건 가짜 종교들뿐이다. 진짜 종교는 오히려 신이 난다. 훌륭한 법이 사기꾼들의 창궐을 막고 선량한 시민들의 활동을 돕듯이, 훌륭한 과학은 가짜 종교의 창궐을 막고 진짜 종교의 발흥을 돕는다.
가을바람이 한바탕 불면 낙엽이 다 날아가고 몸통이 드러나듯이 과학의 바람이 세차게 불면 가짜 종교는 다 날아가고 진짜 종교가 드러난다. 그걸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한다.
■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지고 나면 나무줄기와 가지가 들어날 뿐이다.
출처 : 불교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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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僞經: 가짜 경전)에는 부처님 법신(法身)이 없다.
가짜 약은 병을 낫기는커녕 병을 더 악화시킨다. 가짜 불경 즉 위경(僞經)은 사람을 제도(制度)하기는 고사하고 잘못된 어둠의 길을 가게 한다. 위경에는 부처님 법신(法身)이 없기 때문이다. 위경(僞經)은 석가모니가 직접 교설한 것처럼 ‘불설(佛說)’이라는 이름을 빌려 위조함으로써 정전(正典)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는 의경(疑經)을 가리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시기 직전 아난다의 부탁을 받고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眞理)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法身)과 다름이 없다.” <대열반경>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부처님이 직접 몸소 깨달은 말씀과 설법을 의미한다. 이 부처님의 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부처님만큼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만 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 하시고 수많은 경전과 조사 어록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위경(僞經)과 조서어록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없는 경(經)이고 어록이다.
위경은 중국 등에서 새로 제작된 경전을 일컫는 것이지만, 위경은 아니라 하더라도 서역·남해(南海) 등에서 불교의 보급을 목적으로 토속신앙 등과 결합하여 정통 불교의 교리나 사상과는 다른 내용을 설파하는 의경까지를 통칭하여 위경(僞經)이라 한다.
중국 불전 목록 사상 그 최고봉을 점유하며 가장 정밀하고 체계적인 목록이라 할 수 있는 지승(智昇)의 ≪개원석교록 開元釋敎錄≫ 권18의 <의혹재상록 疑惑再詳錄>에 14부 19권, <위망난진록 僞妄亂眞錄>에 392부 1, 055권을 수록함으로써 위경에 대한 총정리를 가하고 있다. 또 원조(圓照)의 ≪정원신정석교목록 貞元新定釋敎目錄≫에서도 <의혹재상록>14부 19권, <위망난진록> 391부 1,491권을 수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는 4세기 중엽 이래 시대적으로 끊임없이 계속 증가하여 ≪정원석교록≫이 찬술된 8세기 말엽에는 의경과 위경이 무려 405부 1,500여 권에 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위경 제작동기도 대단히 다양하다. 즉 토속신앙을 흡수하여 이루어진 ≪시왕경 十王經≫·≪고왕관세음경 高王觀世音經≫, 말세사상을 내포한 ≪상법결의경 像法決疑經≫, 위정자의 권계(勸誡)를 목적으로 한 ≪인왕반야경 仁王般若經≫과 ≪범망경 梵網經≫이 그것이다.
그리고 선종(禪宗)의 전통과 관련된 ≪대범천왕문불결의경 大梵天王問佛決疑經≫, 영험과 관련된 ≪사천왕경 四天王經≫·≪관정경 灌頂經≫·≪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經≫, 불교 중 특정의 교의(敎義)를 강조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대불정수능엄경 大佛頂首楞嚴經≫·≪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대반열반경후분 大般涅槃經後分≫이 있다.
또한 중국 재래의 유교와 도교를 불교와 조화시켜 민심을 선도할 목적으로 보응성보살과 보길상보살을 복희와 여와의 전신(前身)으로 각각 설하는 ≪수미사역경 須彌四域經≫, 공자를 유동보살(儒童菩薩), 안회(顔回)를 광정보살, 노자(老子)를 마하가섭의 재탄(再誕)으로 하는 ≪청정법행경 淸淨法行經≫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위경은 대장경, 즉 정장(正藏)에서 제외되어 대부분 없어졌으나, 약간은 대장경에 스며들어 잔존하고, 최근에 돈황(敦皇)에서 출토된 것도 다소 있다.
우리 나라에 유포된 대표적인 위경은 ≪불설대목련경 佛說大目連經≫과 ≪불설대보부모은중경 佛說大報父母恩重經≫을 들 수 있다. ≪불설대목련경≫은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신통제일인 목련존자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그의 어머니를 구하였다는 ‘목련구모(目連求母)의 설화’ 및 아함부(阿含部)의 여러 경전에 수록된 목련의 전기에서 착상하여 태동시킨 것이다.
이 경은 ≪우란분경 盂蘭盆經≫을 더욱 심화시킨 돈황 출토물인 목련변문류(目連變文類 : 10세기의 산물로 추정)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우리나라에서 11세기경 경전으로 성립된 위경으로 볼 수 있다. ≪목련경≫은 1106년 (예종 1) 7월에 강경(講經)하였다는 기록이 있어서, 우란분재(盂蘭盆齋)와 관련하여 각 사찰이나 일반 민중에서 간행, 유포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 전파한 것은 계(戒), 정(定), 혜(慧) 삼학과 인과법이다. 부처님은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불성(佛性)이 있어 다 존귀한 존재이라고 설파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되고 바르게(戒) 생활을 하면 마음이 안정(定)되어 바른 지혜(慧)를 얻어 자비를 실천하므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이 불법이다.
법정 스님이 수없이 강조한 말씀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기실현의 길이고, 형성의 길입니다. 부처님이 벌을 주고 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불교 신자 중에 있다면 그는 불교를 크게 잘못 알고 있다. 부처는 분노하고 질투하며 복을 주었다 거두었다 하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부처란 눈뜬 사람으로 지혜와 자비를 몸소 실현하신 분입니다.'부처님은 그래서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