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 39
항괘恒卦
선대 학자의 말에 의하면 “건(乾)과 곤(坤)은 기화(氣化)의 시작이고 함(咸)과 항(恒)은 형화(形化)의 시작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기화ㆍ형화의 의의를 들려줄 수 있겠는가? 또 “형화는 곧 기화이다. 가령 형화가 종식(終息)되게 되면 기화가 다시 일어난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바로 개벽설(開闢說)이다. 그런데 진실로 형화가 곧 기화라면 기화가 종식되지 않았을 적에 형화가 종식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가령 형화가 종식되게 된다면 기화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무엇으로 체험할 수 있는가?
[신복이 대답하였다.]
《주역》 상경(上經)을 건ㆍ곤에서 시작한 것은 천지(天地)의 기화(氣化)의 묘리(妙理)이고, 하경(下經)을 함ㆍ항에서 시작한 것은 남녀(男女)의 형화(形化)의 묘도(妙道)입니다. 음양(陰陽)의 이기(二氣)와 오행(五行)의 기운이 교감(交感)하는 것으로 인하여 만물의 생명이 비롯되는 것이니, 그것이 어찌 천지의 기화가 아니겠습니까. 남녀의 정기가 결합하면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것이니, 그것이 어찌 남녀의 형화가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기(氣)는 무형(無形)한 것이고 형(形)은 유형(有形)한 것인데, 무형이기 때문에 천지의 기화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태극도(太極圖)에서 이른바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水)ㆍ화(火)ㆍ목(木)ㆍ금(金)ㆍ토(土)가 생긴다.”고 한 것입니다. 유형이기 때문에 남녀의 형화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태극도에서 이른바 “오묘하게 부합하고 응집(凝集)되어 건(乾)의 도(道)는 남자가 되고 곤(坤)의 도는 여자가 된다.”고 한 것입니다. 요컨대 기화와 형화는 원래 근원이 하나이지 애당초 두 가지가 아니니, 이 점은 선대 학자들이 진실로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형한 것은 종식될 때가 있으나 무형한 것은 종식될 때가 없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 천지 사이에 유형한 물체가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마는 본디 다하여 사라져 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화의 작용은 종식된 적이 없습니다. 그 종식되는 면에서 보면 충(蟲)ㆍ어(魚)ㆍ조(鳥)ㆍ수(獸)ㆍ초(草)ㆍ목(木)은 모두 종식될 때가 있는 것이고, 그 종식되지 않는 면에서 보면 만물이나 내가 다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선대 학자들의 그러한 논리도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왕필(王弼)이 말하기를,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이고 편안히 있음은 동작의 주체이다. 그래서 편안히 있음은 위에서 처해야 할 바이고 고요함은 오래갈 수 있는 도이다. 괘(卦)의 위에 처해 있고 동(動)의 극에 있으면서 이러함을 항상 지켜 간다면 베풀지 않아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노자(老子)의 사상으로 역(易)을 풀이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도 이치에 타당함이 있다. 송(宋) 나라의 소식(蘇軾)이 배를 젓고 바둑을 두는 비유를 한 것도 사실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며, 한(漢) 나라의 문제(文帝)와 송 나라의 인종(仁宗)이 모두 고요함을 추구하고 편안함에 처한 자였으므로 그들의 다스림이 오래갈 수 있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노자의 사상으로 역을 풀이하였다고 하여 일률적으로 나무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기는가?
[강세륜이 대답하였다.]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이고 편안히 있음은 동작의 주체이다.”라고 한 것은 그 견제하는 방법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은 천지 사이의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한결같이 고요하게 있기만 하면 힘없이 쇠약해지고야 말 뿐이고, 한결같이 움직이기만 하면 설치다가 넘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하늘의 움직임만 있고 땅의 고요함이 없으면 하늘이 아마 무너져 내릴 것이고, 땅의 고요함만 있고 하늘의 움직임이 없다면 땅이 아마 꺼지게 될 것입니다. 천지의 도가 오래가면서 끊임이 없을 수 있는 까닭은 움직임과 고요함의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항괘(恒卦) 하나로 말하면 장남(長男)인 진(震)이 위에 있고 장녀(長女)인 손(巽)이 밑에 있는데, 남은 양이고 여는 음이며 양은 움직이는 물건이고 음은 고요한 물건이니, 음과 양이 서로 필요로 하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연관이 된 다음에야 오래가는 도가 되는 것입니다. 천하의 만사와 만물이 다 그러한데, 어떻게 움직이지 않은 채 고요한 상태만으로 오래가는 도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노자가 주장하는 청정(淸淨)의 학설이 우리 유학자에게 배척을 당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굳이 《정전》과 《본의》를 내버려 두고 왕필과 소식의 견해를 취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 나라 문제와 송 나라 인종의 경우는 모두 안정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였으니 오히려 조급하게 나아가고 망녕되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래서 후세의 중급 수준의 군주가 되는 데는 해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 문제의 학문은 황제(黃帝)와 노자를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그 말류의 폐단 가운데 무제(武帝)가 신선을 구하는 병폐가 있었고, 송 나라 인종의 다스림은 도리어 쇄신(刷新)하는 데 결함이 있어서 끝에 가서는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오랑캐에게 굴복당하는 화근이 있었으니, 안정만을 추구하는 정치가 어떻게 오래갈 리가 있겠습니까.
이상은 항괘(恒卦)이다.
[恒]
先儒言乾坤氣化之始。咸恒形化之始。所以爲氣化形化之義。可得聞歟。又言形化卽氣化也。使形化或息則氣化復作。此開闢之說也。然苟知形化之卽氣化。則氣化未息之前。形化之或息。吾未之信也。使形化之或息。則氣化之復作。又從何而驗諸。馥對。上經首乾坤者。天地氣化之妙也。下經首咸恒者。男女形化之道也。二五交感。萬物資始。則玆 豈非天地之氣化者乎。男女構精。萬物化生。則玆豈非男女之形化者乎。大抵氣無形者也。形有形者也。無形故所以爲天地之氣化。而此正太極圖所謂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者也。有形故所以爲男女之形化。而此正太極圖所謂妙合而凝。乾道成男坤道成女者也。要之氣化形化。自是一原。初無二致。此則先儒固言之矣。至若有形者有時而息。無形者無時而息。夫天地間有形之物何限。而固有澌盡而泯滅者矣。然其氣化則未嘗息也。自其息者而觀之則蟲魚鳥獸草木。皆有時而息。自其不息者而觀之。則物與我皆無盡也。先儒此論。蓋亦有見於此矣。
王弼曰靜爲躁君。安爲動主。故安者上之所處也。靜者可久之道也。處卦之上。居動之極。以此爲恒。无施而得也。此所謂以老解易者。然其言亦殊有理。宋臣蘇軾操舟奕碁之喩。實本於此。而如漢之文帝。宋之仁宗。皆御靜而處安者。故其治有可久之效。似不當以老易而一例訶斥之也。如何。世綸對。靜爲躁君。安爲動主。以其制之之方而言也。然一動一靜。天地間自然之理也。一於靜則委 靡而止耳。一於動則僨敗而止耳。有天之動而無地之靜則 天幾於墜矣。有地之靜而無天之動則地幾乎陷矣。天地之道。所以恒久而不已者。以其有動靜之理也。以恒之一卦言之。長男在上。長女在下。男陽也女陰也。陽動物也陰靜物也。陰陽相須。動靜相仍。然後乃爲恒久之道。以至天下之萬事萬物。莫不皆然。則豈可以安靜二字。爲可久之道哉。此老子淸淨之學。所以見斥於吾儒者也。何必捨傳義而取正於王蘇哉。至於漢文與宋仁。俱以安靜爲治。則猶有愈於躁進而妄動者。故不害 爲後世之中主。而漢文之學。主於黃老。故其流也有武帝求仙之弊。宋仁之治。却欠振刷。故其末也有徽欽陷虜之禍。則以靜爲治者。烏可爲可久之道哉。以上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