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문화원 마을조사지]
성인의 가르침, 인의예지
- 조리읍 강동희 님
김선희 (정빈)
강동희(87세) 님은 조리읍 능안로에 10대째 살고 있다. 젊어서는 건설 계통에서 일하다가 파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교하향교 전교, 진주강씨 종친회장을 지냈다. 강동희 님이 거주하고 있는 2층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 말고도 간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다리 아픈 한 아내를 위해 마련한 건데, 아내는 얼마 전 8월에 먼저 떠났다. 아직도 방에서 금방 나올 것 같고,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게 된다. 집 뒤에는 꽃을 좋아하는 아내 대신 국화가 웃고 있다.
스물셋에 스무 살 아내와 얼굴 한 번 못 보고 결혼했다. 당시 헌병으로 군 복무 중이었고 ‘김창용 저격 사건’이 있었을 때라 전국적으로 외출 금지였는데, 잠깐 나와서 결혼을 하고 복귀했다. 4년 100일을 복무한 후 제대했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느라, 아내 혼자 부모님 모시고 애들을 키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무척 힘들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못 하고 사느라 바빴다. 좋은지 나쁜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인연인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나이 들어 보니 정이 깊어가고 젊었을 적엔 몰랐던 배려심도 생겼다. 돌아보니 80이 넘도록 아내가 차려 준 밥상을 받았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이제 그런 걸 알만한데 가고 없다며 애잔한 눈빛으로 국화를 바라본다.
진주강씨 종중
고려 시대 때부터 파주에 살기 시작한 진주강씨는 교하, 문산 당동리, 적성 등에 집성촌이 있었지만, 6·25전쟁 이후에는 남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진주강씨 시조는 고구려 때 병마원수(兵馬元帥)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이다.
‘진주강씨’ 하면 부지런하고 치밀하며 공정한 정치를 했고 박학다식하다는 평을 받는 강희맹과 천지 만물의 이치를 화폭에 담아 사대부 문인의 풍류를 독창적이고 색다른 화풍으로 개척한 강희안이 떠오른다.
파주에 진주강씨 종친회가 생긴 것은 1980년대 말이다. 당시 파주에 진주강씨가 300여 가구 살았는데, 종친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파주경찰서 보안과장의 제안이 있었다. 초대 사무장을 맡아 운영하였는데, 지금도 매월 둘째 일요일이면 모여 친목을 다지고 있다.
2005년 고양시가 재개발되면서 종중 땅 보상받은 것으로 건물을 사들여 종친회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 강동희 님은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였는데도 집안일이라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잘 운영되는 것 또한 조상님들의 위토 덕분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인의예지
교하향교 전교 시절, 향교 형편에 따라 지내는 제향을 춘계 석전과 추계 석전 두 번 지냈다. 전교는 관련된 행사를 전체 총괄하는데 공부자와 5현 그리고 동국18현을 봉사한다.
향교에는 유도회가 있는데 교육을 담당하고, 읍면별로 지부가 있어 자치교육을 한다. 전교를 맡고 있을 당시에는 요청한 각 학교에 파견을 나가서 유교에 대한 ‘인성교육’을 했었다. 인의예지는 유학에서,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의 성품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움을 말한다. 지산중학교, 탄현초등학교 등에 가보면 관심을 두고 똘망똘망 집중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어렵고 지루지 않게 현 사회와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전했다.
<仁> 공자님이 주로 주장한 ‘인’은 어질다는 뜻이다. 사람이 본래 ‘선’만 가지고 태어나는데 사회 변동에 따라 선하고 어질게 살기도 하고, 주변 여건에 따라 하면 안 될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 선한 것을 자주 보면 선하게 자라는데 요즘은 조부모와 사는 가정이 드물어 그런 가정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고 자라기 어렵다. 왜정 땐 『수신』 그 후엔 『도덕』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인성교육’을 접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義> 나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는 ‘이기주의’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나’ 대하듯 하면 문제가 생겨날 일이 없을 텐데 안타까울 때가 많다.
<禮> 부모님을 봉양할 때, 우러나서 해야 하고 즐겁게 해야 한다. 자기 마음이 안정되고 즐겁지 않으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할 수 없다. 부모님이 아프면 자기 몸이 아플 때처럼 돌봐드려야지 “얼른 병원 다녀오세요.” 하는 것과 직접 모시고 다녀오는 건 다른 거다. 아무리 많은 연세에 돌아가셨어도 “사실 만큼 사시고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 더 효도하지 못하게 돌아가심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제사도 남이 본다고 해서 가식적으로 지내려면 안 지내느니만 못하다. 엄숙한 마음으로 은덕을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
<智> 지식보다는 지혜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지식을 오용하면 지식이 없는 사람보다 더 나쁜 짓을 한다. 올바른 지혜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안다고 자만하거나 거만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어렵다. 아는 걸 내보이고 싶어 독단적으로 떠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지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활용해야 완전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교하향교 전교 시절에 특이 사항은 신축한 향교 사무실 건물에 주차장이 적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건물 주변을 정리하고 주차장을 확보했다. 대부분은 협의하여 이사를 했는데 두 집이 이사를 가지 않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한참 애를 먹었다. 4층을 향교 사무실로 사용하고 도서관 시설도 만들었다. 옆에는 당시 송은 선생의 요청으로 서예실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는 대신 칸막이 시공은 직접 하게 했다.
아흔 가까이 살아보니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중요하다. 행복이 어디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 화근은 욕심에서 생긴다. 욕심이 있어서 과욕을 부리다 사기도 당하고 집착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한 것이다. 앞으로 바라는 건 손주들까지 탈 없이 건강하고 자기 일 잘하는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