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학교까지 버스 2번 갈아타고 가면 1시간이 걸리는데 걸어가면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출근을 해보다가 작년 가을부터 가능하면 걸어서 출근합니다.
가장 큰 목적은 "생활 속의 운동"이었는데 이제는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걸어갑니다.
걸어서 출근하는 것이 즐거운 것은 그 길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그저께는 한라산 다녀온 다음날이라 도평동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도평동까지는 우리집 농부님이 태워다 주었고요.
태워다 준 김에 함께 한 구간을 같이 걸으면서 사진도 몇 장 찍어주고...
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만의 출근 올레를 한번 따라와보실래요?
여기는 도평마을에서 사라부락 올라가는 숲길 입구예요.
집에서 부터 걸어오면 여기까지 35분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부터가 출근 올레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이랍니다.
이 길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이는...
가다가 난데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건. 저 위에 모람덩굴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이 모람덩굴인데 사탕 크기의 열매가 열려요. 작년 겨울에 둘이서 산책나왔다가 작대기로 그걸 한참이나 따먹었답니다.
지나가다 보니 문득 그 때 생각이 나는군요^^
여기서 사라마을 도착할 때까지는 오로지 새소리만 들릴 뿐이랍니다.
아주 가끔 내려오는 올레꾼을 마주칠 때도 있지만 작년 여름 이후 열번도 안됩니다.
그러니 오로지 나만의 길이랍니다.
솔향기와 새소리에 마음이 절로 맑아지니 걷는 것이 차라리 축복의 순간입니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 쪽에 낯익은 녀석이 보이지요?
제주올레의 상징물인 간세입니다^^
이 길이 무수천을 옆구리에 끼고 가는 길인데 바로 올레 17코스의 일부랍니다.
걸어온 길에서는 무수천이 안보이니까 이렇게 길 옆 비탈로 작은 오솔길을 따로 내어 안내를 하고 있는 간세군!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벗어나 흙을 밟아보게 하려는 올레지기들의 배려이지요.
어여쁘기 그지 없는 작은 숲길이 끝난 지점에서 보이는 어느 부잣집^^
비가 오면 물이 철철 흐르는 무수천도 이제서야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진에는 별 특징없는 자갈들만 보이지만 저 아래 위로 아주 대단한 암반들이 보는 이들을 감탄게 하는 곳이랍니다.
근심이 없는 개울이라는 뜻이니 그 옆의 길이 그렇게 고요한가봅니다.
무수천을 가로지르는 사라교를 지나서... 사라마을을 지나서...
살칼퀴가 무성한 들길로 들어섭니다.
이 길로 들어서기 전에 더 멋진 길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터라 ....평범한 이 길로 갑니다^^
하지만 퇴근길에는 그 멋진 길로 온답니다^^
밀감밭 너머로 초록기둥이 보이지요?
용도 폐기된 전봇대와 덩굴들이 한 몸을 이룬 모습이랍니다.
새로 생긴 도로 옆 경사진 곳에 금혼초가 지천으로 피어있습니다.'
누군가가 열매를 맺은 살칼퀴를 무더기 무더기 베어놓았네요.
어라, 이걸 뭣에 쓰는고? 싶어 사방을 둘러보니...
할머니 한 분이 살갈퀴 한 무더기를 베어오시는군요.
"이걸 뭣에다 쓰시나요?"
"씨를 털어서 미깡밭에다 심을라고 그라요. 그러면 풀도 안나고 그라요. 옛날에는 그렇게들 많이 했는데 요새는 이게 안보이더니 여기 많아서 .."
아하~~그렇지, 콩과 식물이니 질소를 고정해주어 땅을 비옥하게 해주고, 잡초도 막아주고..일거이득.
역시 어른들의 삶에는 지혜가 가득합니다..
길 위에서 이렇게 배웁니다.
다시 만나는 마을, 광령2리 고샅길을 지나서..
아주 조그만 꽃이 다닥다닥 피어있는 땡감나누가 있는 집을 지나서...
이 땡감으로 팔월에 이 집 아낙은 광목으로 지은 옷에다 감물을 들이겠지요?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아이를 따라 가면..
시내에서 봉성쪽으로 가는 중산간 도로가 나오고, 길 건너편에 올레 17코스의 출발지인 광령마을회관과 농협이 보입니다.
숲속의 고요와 마을 고샅길의 따스함이 잠시 허물어지는 구간이긴 하지만 재잘재잘 떠들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있어 그 또한 생기가 느껴지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재잘재잘대는 녀석들이 다니는 광령초등학교입니다.
학교 현관의 시계를 보니 8시 15분이네요^^
이 학교를 지나다 보면 교감 선생님은 늘 쓰레기를 줍거나 풀을 뽑거나, 꽃을 심거나 하시고
교장 선생님은 정문이나 후문 쪽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계신답니다.
가끔 아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옆구리를 끼고 또 다시 시작되는 작은 숲길.요즘은 찔레꽃이 많이 피어있습니다.
숲길에 이르기 전에는 양 옆으로 밀감밭도 있고 , 고구마 싹이 자라는 밭도 있고.
고추밭도 있답니다.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도 정겨운 모습들이지요.
지난 달에는 광대나물꽃이 한 밭 가득 피어있는, 눈이 아찔하도록 예쁜 모습도 보았답니다.
아, 작년 가을에는 밭담 가득 보라색 강낭콩꽃이 피어있는 곳도 있었지요.
이런 저런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연못도 있고, 그 연못에 사는 왜가리도 있고...
아주 작은 오솔길도 있고
그리고 내가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도 있습니다.
모두들 나보고 말합니다.
아침에 그렇게 걸어서 출근하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나는 오히려 생기가 가득해져서 나의 일을 시작한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출근길을 걸어오기 때문이랍니다.
모두들 운동화끈을 조여매고 골목밖으로 나가보세요.
그리고 나만의 올레길을 찾아보세요.
분명 두 발로 영혼을 맑게 씻어줄 나만의 작은 길들을 찾을 수 있을거예요.
첫댓글 영화 한 편을 잘 보았습니다. 영화같은 삶 누구나 할 수있는데 도시의 끈을 놓으면 죽음의 나락으로 빠질 것 같은 두려움에 서울에서 대구에서 아둥바둥 거리면 다른이의 삶을 부러워 만 합니다.
허허아저씨네 감귤농장 회원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니시면 길가의 나무들도 호호아줌마를 좋아하겠어요,,
들꽃이름이 살칼퀴, 금혼초였군요. 궁금했는데... 근데요. 호호 아줌마님이 들꽃처럼 예쁘세요.
호호아주머님!
아름다운 사진과 맛깔나고 유익한 설명 잘 보았습니다.
출처 원본보러 갔다가 '허허 아저씨네 감귤농장'에
회원 가입도 하였습니다.
자주 들러 좋은 글과 자료 잘 보겠습니다.
허허 아저씨네 감귤농장은 오로지 유기농만 고집스럽게 하시는 좋은 농장입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제주를 보면 은퇴해서 제주도에 정착하며 살고 싶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