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과 교육개혁
이영호
오늘은 토요일,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수거함에 버렸다.
일을 마치고 TV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아들이다.
오늘 오후에 나에게 오겠다는 것이다.
오후 4시경에 아들 식구들이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 손자들이 나에게 큰절을 한다. 이제는 제법 반듯하게 잘 한다. 큰절을 하고난 뒤 무릎을 꿇은 자세로 양손을 무릅위에 언져 놓고 반듯이 나를 처다 보고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시기를 기다리는 자세다. 큰손자는 열두 살, 작은 손자는 아홉 살이다.
내가 손자에게 “그동안 부모님 말씀 잘듣고 착하게 행동하느냐” 물었더니
“넷” 하고 큰소리로 대답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느냐“
”예“
”몸은 건강하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느냐”
“예” 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저축을 하던지 꼭 필요한데 써라고 하면서 용돈을 주니 두 손으로 받으면서 “감사 합니다” 하는 것이다.
손자들의 큰절에 대한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손자들이 어렸을 때 어른에 대한 공경심(恭敬心)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생각에서, 나에게 큰절을 하도록 시켰는데, 처음에는 큰절하는 모습들이 엉성했다.
첫째 녀석은 그런대로 하는데, 둘째 녀석은 업드려 뻗쳐 하듯이 어둔했는데 그것마져 안하려고 고집을 부려 큰절을 하지 않으면 용돈을 주지 않았다.
그후 아들, 며느리가 철저한 교육을 시켰는지 큰절을 잘한다. 올 때 마다 용돈을 주고 있다.
절에는 큰절, 반절, 평절 3가지로 나누는데, 큰절은 절을 하여도 답배를 하지않아도 되는 높은 어른님이나, 직계존속에 해당, 평 절은 같은 또래 사이에 하는 절, 반절은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답배할 때 하는 절로서 제자, 친구의 자녀등에 해당된다.
큰절은 허리와 머리를 굽혀 인사하는 방법으로 상대편에 대한 공경과 반가움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예절이라고 할 수 있다.
절은 또한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예(禮)로써 행하여 지며, 자고로 우리나라는 예로 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하여 절을 중히 여겼다.
큰절을 하는데 기본원칙은 바로 음양(陰陽)사상이다. 남녀가 함께 치루는 모든의식 제사, 결혼식, 등에서 지켜져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 어른에게 절을 하거나 제사 또는 중요한 관혼상제, 수연, 고희등에 한복을 입고, 양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큰절을 하는 모습은 보기도 좋을뿐만 아니라 예절을 갖춘 훌륭한 인사법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설날 우리나라는 남녀모두가 새옷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뒤에 조부모, 부모에게 큰절하고 형, 누나등 차례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머리 숙여 절을 하여 새해 첫인사를 나눈다.
절은 공수(拱手)자세로서 남자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잡고 하는 동작으로 왼손이 위로,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오며 절은 한번만 한다, 돌아가신 분에게는 제사나 상중에는 두 번한다. 종교적인 이유로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과 사람도 있다.
지금은 악수, 포옹, 경례, 허리를 굽혀 목례를 하는 것 등 서양식으로 대신하여 우리의 인사법을 점점 잊어버려 가는 느낌이 들어 좀 안타깝다. 나의 젊은시절 기억으로 고향에 들렸다가 할아버지가 마루에 앉아계시면 땅바닥에서 절을 하고, 방에 계시면 마루에서 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손자들에게 큰절을 교육 시킨 이유 중의 하나는, 지금의 세태가 핵가족화 의 물결 속에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가고,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가족 친족 간에도 상하 웃어른에 대한 예절을 지켜가며 사는 사회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 됨이다.
지금 아이를 하나만 낳는 우리나라의 젊은 부모들은 자식을 지.덕.체(知.德.體)의 연대교육이 아니라,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 좋은 학교 입학,취업을 위해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선행 학습, 덕,체를 뺀, 지.지.지(知.知.知)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사교육 시장을 더욱 활성화 시켜놓고 있는 실정이다.
전교 일등을 한 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사가 되어 몸이 아픈환자를 정성껏 치료해 주고, 판, 검사가 되어 정의롭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데, 천박한 오만을 부리고 있는 모습, 상대의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고 권위와 위선에 빠진 엘리트들이 군림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2차 대전 이후 1968년도를 기점으로 독일을 비롯한 서 유럽국가 대부분이 학교의 서열을 없애고, 경쟁 없는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유독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이 경쟁교육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중 가장 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경쟁하여 승자만 살아남는 사회는 결국은 망한다.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경쟁을 시키는 교육정책은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경쟁이 없이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며, 올바른 민주주의에 대한인식, 함께 살아가는 시민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갈등이 심하고, 권위주의와 우열로 나누는 불평등한 나라 대한민국이 현주소다, 가장 꿈이 많고 즐겁고 행복하여야 할 초, 중등교육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주입식 경쟁교육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나는 중등학교에서 전쟁터 같은 경쟁교육을 퇴직 시 까지 교실현장에서 가르친 장본인이다.
아직까지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위선적이고 기득권화 되어있는 세태, 성숙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개혁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교육개혁부터 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없애고 서열이 아닌 평준화로 전환, 학벌계급사회를 과감히 철페 해야 한다고, 독문학자 김누리교수의 주장에 공감한다.
나의 손자들은 출세와 성공보다 사람됨이 우선인 사회, 경쟁이 아닌 다함께 협력하며, 정의롭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2023. 8. 5.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