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면서 부단히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두 길을 다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 갈래 길에서 망설였으며 또 사는 동안 내내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던가.
폴란드 여인 소피는 나치 점령 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두 자녀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에바와 얀 중 하나를 가스실로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죽음보다도 두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소피는 얀을 선택하고 에바를 포기한다. 그리고 남은 생을 지워지지 않는 죄의식 속에서 산다.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론William Styron(1925~2006)의 대표작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주제는 바로 ‘인간의 선택’과 그 후유증이다. 과거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고통받던 소피는 결국 마지막 선택을 죽음으로 마무리한다.
소피의 상황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해주는 건 그녀의 부친이 반유대주의자였으며 그녀 역시 다소간 반유대적이었음에도 결국 유대인으로 몰려 수용소로 끌려간다는 점이다. 수용소에서 그녀는 자신과 아이들이 유대인이 아니고 “독일어를 잘하는 순수한 혈통인 기독교도”라고 절규하지만 오히려 나치 의사 폰 니트만의 조소를 받고 “아이를 하나만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그녀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 곧 인종차별과 딸 에바를 죽게 한 것, 모두를 고백한다. 그녀의 고백을 들어주는 사람은 22세의 작가 지망생 스팅고다.
스팅고는 1947년 여름,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소피와 그녀의 유대인 동거남 네이선을 만난다. 그녀 고백의 청자이자 이 작품의 화자인 스팅고가 또 하나의 인종차별인 노예제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부 출신이라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 그와 소피는 유대인 밀접 지역의 유일한 ‘이방인’들이라는 점에서도 긴밀한 유대를 갖게 된다. 그는 소피의 고백을 들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동료 인간들의 고통에 무관심했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소피의 선택’은 우리 모두의 ‘선택’으로 확대된다.
이 작품은 1982년 앨런 파큘라 감독이 영화화했는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소피 역의 메릴 스트리프)과 감독상 후보 지명을 따낼 만큼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2시간 40분의 이 장편 영화는 소피의 유대인 수용소 시절 회상이 시작되는 후반부에 진입하기까지 다소 지루하고 난해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초반부에 소피와 그녀의 애인 네이선(케빈 클라인)이 자주 벌이는 싸움은 나중에 소피의 과거 회상을 듣기 전까지는 그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소피가 두 자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후반부의 비극적 장면에서 관객들은 강렬한 슬픔과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미국으로 건너온 소피가 왜 그렇게도 괴로워하고 있는가를 깨닫는다. 바르샤바에서 소피는 유대인을 도와달라는 부탁에 “난 이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아”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그녀는 곧 유대인의 고통을 직접 겪게 되고 비로소 타자의 고통에 눈뜬다. 소피의 고백을 통해 순진한 미국인 스팅고가 배우게 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인종을 초월해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피가 가르쳐주는 값진 ‘우리의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