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들이2] 전남보성 벌교에서 부산 구포와 하단, 그리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걸음걸이가 그럴까. 왠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런 기분.
그저 엉성하기 그지없는 무계획성 고무줄 같은 시간스케줄이 막연이라면 막연이겠다.
월요일(4일) 오후 1시 반. 충남 대천 웅천역 바로 앞, 그야말로 흐름한 엿날식 다방에 세 남자가 마주 앉았다.
짙은 화장을 한 마담이 가져다 놓은 다방커피가 식어가는 줄 모르고 통기타얘기다.
아침 9시반쯤 대천에 있는 설까치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장항에 있는 기타고수 한분과 함께 나올 거랜다.
닟선 이와 만나는 이런 의외성이 난 좋다. 설렘이 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한두명 건너면 다 연결되는 통기타인들의 네트워크가 확인되는 게 신기했다.
1시간여 함께 했을까. 가야할 길이 멀어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쪽 끝이나 진배없는 전남 보성 벌교를 향했다. 네비 안내따라 움직이는데 전주를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아뿔싸.
몇 시간 전 전주 들릴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통화가 늦어지는 바람에 나중에 다시 찾겠다고 했는데..
통화하자마자 몇명이냐며 맞이채비부터하시려는 강태영선배님의 목소리가 귀가를 맴돌아 전주권역을 지나는내내 미안함이 나를 괴롭혔다.
올초, 전주에서 중랑통기타동호회까지 먼길을 몸소 찾아와 주옥같은 연주곡을 들러 주셔서 큰 감동을 안겨주었더랬다.
더군다나 주유하러 휴게소에 들렀는데 한참 전에 핸드폰카톡에 벌교 원이님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약속시간 전 1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리 문자를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전주 지나면 남원. 순간 머리를 스치는 유명 통기타가수 라이브무대 '샤모니'. 곧바로 고속도로에서 내려 남원시내로 들어갔다.
남원 구도심중심거리에 있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3층에 있는 샤모니카페로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다.
샤모니를 약1년여 전 더존소리 김병건 선배님께서 소개해줘 알게 됐다. 통기타TV 준비하면서 소개받았는데 꼭 만나야할 한명으로 언제 기회를 기다렸는데 그날이 된 것이다.
"ᆢᆢ."
가는 날이 휴업일. 전화를 거니, 멀리 있단다.
남원을 빠져나와 보성으로 가는 길은 헛헛함이 물씬 했다.
차창너머 눈길가는 데마다 하얀 억새꽃이 즐비하다. 먼 벌판 위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빛에 괜스레 마음이 울컥한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벌교로 접어들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이었다.
지난 여름,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통기타TV 창간기념음악회에 이 먼 전남 보성 벌교에서 가족들과 왔던 원이님 아닌가. 내겐 마음의 큰빚으로 남았더랬다.
원이님과 벌교특미 꼬막요리로 저녁을 하고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 원이님의 와이프와 아이가 도착했다.
금방 얘기꽃이 피웠다. 어두운 주차장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나눈 이별이 많이 아렸다.
요즘을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를 격려한다. 우린 가족이었다.
벌교에서 나의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까지는 1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다. 오랜만에 고향방문이다.
시골 깡촌, 아들 기다린다고 집에 있는 모든 전등에 불켜놓은 한 집. 반가움의 한 표시일 테다.
어머니는 기다리다지쳐 깊이 잠들어계셨다. 대충 짐을 내려놓고 피곤함에 눈 좀 붙이려고 하는데, "아이고, 애비야. 오랜만에 왔는데 얘기 좀 하자"며 나를 흔든다.
아버지 보내고 홀로 되신지 7년. 얘기가 고팠나보다.
뭐 먹고 사니, 얘들은 어떻니, 동네 누구랑 누구 요즘 사이가 안좋다느니, 작년에 키우던 강아지를 왜 팔았다느니..
누운 채 졸린 눈을 비벼가며 듣는 나는 아랑곳않고 주저리주저리 하시는 어머니. 그러다말고, "얘야, 피곤하재"하며 얼른 눈붙이라 하신다.
새벽 4시반에 새벽기도가는 차가 온다며 두시반부터 일어나 또 얘기를 붙인다. 비몽사몽 "예", "응"하고 있는 나.
내가 대여섯살 무렵 어느날 섬진강 건너 광양 진월에 사는 작은 외삼촌이 검정색 삼천리호 자전거를 끌고 우리집에 왔다가 그걸 두고 가셨다.
그날 이후 동네 어른, 청년들이 우리집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자전거를 한번 타보고 싶은 이유였다. 우리동네에 자전거가 처음 생긴 거란다.
어린 내가 왕이었다. 자전거를 타려면 사탕 같은 것을 줘야 허락하지 그렇지않고 자전거를 만지거나 하면 울고불고 했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 무거웠던 삼천리호 무쇠자전거였다. 한번 넘어지면 세우지도 못했다.
집 뒤뜰에서 손으로 페달돌리거나 다리 한발 페달 올리고 몇발자국 내딛기만 하다말곤 했다.
몇 년 후 초등학교 3학년 이맘 때였다. 늘 도움받이 한발을 땅에서 떼고 자전거 의자에 앉고 내리는 연습만 하다 처음으로 짧은 두발로 페달을 돌렸다. 그 기분 환희 자체였다.
짪은 다리로 페달을 돌리기위해 몸을 뒤뚱뒤뚱, 엉덩이를 씰룩씰룩 하면서.
그 길로 동네 한바퀴 도전했다. 동네 마을 앞길을 달려 들판으로 나가 제방위를 달렸다.
제방 한쪽은 섬진강을 끼고 그 남쪽은 남해고속도로가 있었다.
평소 소끌고 나가 제방에 풀어놓고 풀먹일 때는 몰랐는데 제방이 그렇게 길다고 느낀적이 없었다.
무겁기만 한 무쇠자전거를 어린 꼬마가 짧은 다리로 페달밟고 긴 제방을 한바퀴 돌기엔 무리였을 터.
"어어어~. 어어어~."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어느 순간에 철퍼덕하며 제방밑 도랑으로 자전거와 함께 꼬꾸라치고 말았다. 고요 그 자체. 멍-.
내가 여기 왜 누워있지. 아픈 느낌이 없다. 또 멍-.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눈을 떴다. 남해고속도로 부산방향 함안휴게소다. 간밤에 2시간여 잤을까.
눈은 충혈된 채, 눈을 뜨려해도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임을 깨닫는다.
부산 하단에 계신 유튜브스타 풍운아님을 뵈러 나선 길인데, 통화 안되던 태바우선배님 전화에 잠을 깬 것이다.
얘기나누다 시간스케줄을 확인하니, 함안휴게소에서 태바우선배님 계신 곳까지 3~4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다.
저만치 구포현대아파트입구 상가 앞에 태바우선배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깜놀. 아뜰리에는 정말 아담규모였다. 거기서 그렇게 많은 행사가 이뤄지고 있음에 놀랐다.
조금 있다 태바우선배님과 팀인 '달달한 삐꾸' 장수봉님이 오셨다. 몇달 전 부천에서 뵈었는데.
고맙게도 풍운아님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해 주셨다. 을숙도공원 내 카페에서 네명이 한참동안 통기타얘기.
흐르는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못다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대구로 출발.
그런데, 무리였다. 장시간 운전에 피로까지 겹친 탓이다. 뒤따르던 화물차경적소리에 화들짝, 옆을 스치는 고속버스에 휘청.
청도새마을휴게소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에 쿵~.
대구는 다음에 들리기로 하고 서울로 향하는데 머리가 띵하다. 몸은 천근이고 아쉬움은 또 만근이었다.
요근래 내친구는 거의 유일한 네이버 네비였다. 한치오차없는 안내였다. 집도착예정시간 밤12시 20분도 틀리지 않았다.
속도위반 카메라단속 위치에 비상경고음에 많이 시달렸지만 네비녀석 없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했다.
오후1시에 눈떠 거실소파에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가을나들이 후기를 적고 있는 지금이다.
그동안 통기타로 맺은 귀한 인연에 대한 마음의 빚을 일부 들은 기분이 있어 가볍고,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생긴 것 같아 약간은 무거움이 있다.
길떠난 나그네가 제자리 집에 이르렀을 때 기분일까.
2019년 나루터의 가을, 그들과 함께 했기에 행복이다.
-달빛 머금는 나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