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구둔 고갯길 <옛사랑의 추억과 폐철로를 걷는 낯선 경험의 길>
애초에 구둔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마을의 산에 아홉 개의 진을 설치했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아홉 구九, 진칠 둔屯 그래서 구둔九屯이라 불렀다는 것이지요
또한, 1907년 정미의병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이 마을에 있는 구둔치 고개에서 의병과 일본군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양평 양동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의병대를 소탕하기 위해 구둔치를 넘게 되었는데 이 고개에 매복하고 있던 150명의 의병과 격전을 치르게 되지요.
죽기 살기로 구둔치에서 의병들이 항전해준 덕분에 양동면에 집결된 의병 진은 전열을 가다듬고 일본군 토벌대에 대비할 시간을 벌게 되었지요. 그러니 일본에게는 구둔이라는 마을 이름이 상당히 꺼림칙한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평해길 안내문>
구둔 마을에 얽힌 설화이다. 설화를 찾아 역사의 현장인 구운마을에서 구둔치를 향하여 걸어간다. 구둔역을 품고 있는 구운마을은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가 살았던 마을을 연상케 하였다.
마을 뒤로 야트막한 동산이 솟아 있고 논, 밭이 펼쳐있으며 실개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비춰진 한적하고 아늑한 마을로 다가오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곳이었다. 살기 좋은 동네일까? 살고 싶은 동네일까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을 그리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를 그리워할까? 생각이 많아질 때 문득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리저리 헤매고 헤매면 봄 향기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집의 단 복숭아 나무는 버려두고 온 산을 돌아다니며 똘배를 따고 다닌다(棄却甛桃樹. 巡山摘醋梨) 말이 떠오르며 구둔치로 향했다.
구둔마을에서 쌍화리 임도까지는 3.7km이다. 일신 2리 마을회관 앞에서 우측의 길로 진행하여 납골묘지를 지나 언덕을 오르니 길바닥에 가는 자갈이 깔렸다. 한 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의 듣는 소리는 정답지만 걸어가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중앙선 철로가 있었던 곳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일직선의 길에 자갈길이 지평선을 이루었다. 기차가 다니던 길을 사람이 걸어가는 길로 변할 줄 누가 상상했으랴! 덜컹거리며 달려가던 기찻길이 걷기 좋은 길로 탄생한 사연은 무엇일까?
“오래된 철길은 누구에게나 옛사람의 그리움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옛사람을 그리며 덜컹거리는 기차에 기대어 한 장의 편지에 꿈을 실었던 그곳, 그 길을 옛 추억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경기 옛길 안내 책자는 말없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철길이 다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고 돌아가는 다소 가파른 오르막의 산길에서 구둔 고개에 오르는 길로 여기며 땀방울을 흘리며 고갯마루에 올라섰는데 아무런 표시기가 없다.
구둔치일까? 분명 고개인데 라는 의구심 속에 고개를 내려서 헤어졌던 중앙선 폐철로와 다시 만나 폐철로 길로 이어지고 폐쇄된 지산 터널이 있었다. 지산 터널을 확인하고 비로소 넘어온 고개가 구둔치가 아니라 지산 터널을 우회하기 위해 조성한 산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폐철로 길을 땀방울을 흘리며 걸어가는데 중년 부인이 산딸기를 따고 있었다. 호젓한 산길에서 남, 녀의 만남은 다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려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지금도 길을 걸을 때면 단 두 사람의 만남은 긴장을 놓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헤아렸는지 김 총무는 산딸기를 따고 있던 중년 부인을 향하여 큰 소리로 ‘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평해길을 걷고 있는데 얼마나 가면 마을이 나오냐고 묻는다. 중년 부인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망우리에서 이곳까지 걸어오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서울에 사는데 이곳에 농장이 있어 찾아온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얼마나 더 걸어갈지 모를 철로 길에서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서니 거문골 동쪽에 연못이 있다하여 못저리 마을로 불리는 일신 3리였다. 일신 3리를 통과하여 2차선 아스팔트 길에 이르니 쌍학리임도 입구 3.5km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구둔마을에서 쌍학리임도 입구 3.7km를 보고 걸어 1시간이 지나 이곳에 이르렀는데 쌍학리임도 입구가 3.5km라면 우리는 200m를 1시간 넘게 걸어온 것인가? 믿을 수 없는 표지판을 탓하면 무엇하랴 ! 어차피 시간이 되면 목적지에 이르게 될 텐데..... 아스팔트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되어 이 길의 정점이 바로 구둔치임을 확신하고 힘차게 걸어간다.
아스팔트 길은 어느 지점에서 옛길인 산길로 접어들까 ? 라는 궁금증 속에 진행하는데 돌연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끝이나 자동차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고 오로지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산길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많지 않아서인지 자라난 풀들이 진행을 방해하였고 높이에 비교해 가파른 오르막길이 되어 땀방울을 알알이 맺히며 고갯마루에 올랐다. 구둔 고개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구둔치는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꼬불꼬불한 비탈을 뜻하는 구九자와 험준함을 의미하는 둔屯자로 이루어진 명칭처럼 높이와 비교하면 매우 험준한 고개이다.
그리하여 신 사임당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어야 했고, 임진 왜란 떼에는 아홉 곳에 진을 펼치고 일본군 대항했고, 정미의병 결성 때에는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여 일본군과 대치하여 그들의 발목을 묶어 놓을 수 있었으니 모두가 험준한 지형을 의지한 책략이 아니었겠는가! 표지목에는 해어진 종이에 구둔치라는 시가 적혀 있어 당시를 말해주고 있었다.
구둔치- 박우형
양동과 지평 경계에 구둔치가 있다
집 앞의 길이 관동대로 평해길이다
경북 울진에서 원주 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넘어가던 고갯길
보부상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
의병들의 독립을 외치는 함성이 들리는 듯
오죽헌을 떠나온 사임당의 숨결이 들리는 듯
나의 발소리가 구둔을 넘어 낙엽 소리 들리는 듯
왕박산 아래 민초들의 옛길이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구둔치에서 관동대로 옛길인 고갯길로 내려가지 않고 임도길로 진입하여 평해길의 원형 노선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옛길을 찾아 새길을 걷기 때문이지만 단종이 유배를 가고, 신 사임당이 한양으로 오고 가고, 임진왜란과 6·25동란 시에는 격전지였고, 구한말에는 을미, 정미의병의 본거지였던 관동대로의 원형 노선을 걷고 싶은 마음은 항시 솟구친다.
임도에서 매월교까지는 6.9km이다. ‘ 고라니 등 야행성 동물의 서식지이니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오전 10시-오후 4시 사이에만 이용해 주세요‘ 라고 평해길 안내 책자는 주의를 환기한다.
어떻게 임도를 걸어갈까?
산 넘어 넘어 돌고 돌아
그 뫼에 오르려니
그 뫼는 어드메뇨
내 발만 돌고 도네<돌고 돌아 가는 길. 노래 노사연>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가는 재미를 누구 알까? 그렇다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갈까?
산 <양주동>
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소리,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이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없이 밤에 홀로 산길을
홀로 산길을 간다
시를 읊조리며 걸어갈까?
어느 곳에서도 자기가 주인이 된다면 隨處作主 자기가 있는 그곳은 모두 진실한 깨달음의 경지가 된다는 立處皆眞 선가의 화두를 참구하며 걸어갈까?
동행한 조 회장님께서는 이번 구간의 날머리인 양동은 양평군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양동이라 불린다고 하시면서 정미의병이 최초로 일어난 본거지임을 기념하는 의병 마을이 있고,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가 음성으로 피신하면서 9박 10일간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이식 선생께서 낙향 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양동면의 자존심인 택풍당이 이번 구간에 서린 역사의 향기라고 들려주신다.
생각이 많으니 거리가 짧아진 것일까? 어느새 매월교 2km, 양동역 3km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진 곳에 이르렀다. 12시5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를 탈 수 있을까? 다음 열차는 15시 55분 그러나 12시 55분 차를 타기에는 조금은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여유가 있게 다음 열차로 가기로 세 명이 하나가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가니 발걸음이 경쾌하였다.
매월천을 따라 매월교에 이르니 고가도로의 다리였고 곧이어 상록다리를 건너 멀리 양동역을 바라보며 시내로 진입하여 양동역에 이르렀다. 다음 열차를 타겠다고 편안한 마음에 걸으니 날아서 온 것일까? 12시32분, 20여 분의 여유가 있었다.
● 일 시 : 2021년7월3일 토요일 흐림
● 동 행 ; 조용원 회장님. 김헌영 총무
● 행선지
- 08시50분 : 구둔역
- 10시08분 : 구둔고개
- 12시01분 : 메월교
- 12시32분 ; 양동역
●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14.9km
- 시간 : 3시간4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