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감자튀김
미국·프랑스 세련된 외교 ‘화해’의 상징
프렌치 프라이즈에 빗대 불편한 심기 표현했다 슬쩍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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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나누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
‘감자튀김 먹으며 정상외교’ 주목
화낼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불편한 심기를 표현만 하고 폭발시켜서는 안 된다. 수습과 통제, 회복에 걸림돌이 된다. 절제는 리더에게 필수 덕목이다.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이 식사 자리에서 솔선수범해 사례를 보여줬다.
“양국 정상이 감자튀김으로 만찬을 즐겼다.” 백악관 대변인 발표였다. 이튿날 미국 조간신문 제목도 비슷했다. 뉴욕타임스에서 ‘감자튀김 먹으며 정상외교’라는 제목을 뽑았다. 2005년 2월 21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있었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 관련 보도다.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이 공식 만찬에서 달랑 감자튀김 하나만으로 식사했을 리는 없다. 실제로 당시 공식 만찬 메뉴는 바닷가재로 요리한 이탈리아식 볶음밥 리소토와 프랑스 보르도풍 소스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가 주요리였다. 감자튀김은 사이드 메뉴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백악관이나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두 정상이 만나 만찬을 함께 했다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주요리는 제쳐놓고 겨우 감자튀김에 주목했을까?
美·佛 갈등, 프렌치를 프리덤으로 이름 변경
사연이 있다. 2003년에 있었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발단이다. 당시 프랑스는 이라크 공격에 반대해 사사건건 미국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런 프랑스가 얼마나 미웠는지 미국 정계에서는 프랑스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였다.
미국 국회식당에서 일이 생겼다. 의회 살림살이를 책임진 밥 니(Bob Ney) 하원의원이 구내식당 메뉴 이름을 바꿨다. 프랑스식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즈(French Fries)를 자유의 감자튀김, 프리덤 프라이즈(Freedom Fries)로 변경했다.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것만큼 흥미로운 뉴스였기에 주요 언론이 화젯거리로 보도하며 미국과 프랑스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주미 프랑스대사관에서는 프렌치 프라이즈는 미국인의 음식이지 프랑스 요리가 아니고, 원조도 프랑스가 아니라며 엉뚱한 화풀이 하지 말라고 비꼬았다. 그러면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즈는 과연 어느 나라 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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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프랑스에 대한 반발로 프렌치에서 프리덤으로 이름을 바꾼 감자튀김. |
프랑스·벨기에·미국이 원조?… 설만 무성
사람들은 프렌치(French)라는 영어 형용사 때문에 원조가 프랑스라고 생각하지만, 기원은 확실치 않다. 이름 그대로 프랑스 거리음식에서 발달했다는 설, 원조는 벨기에라는 설, 이름만 프렌치일 뿐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설 등으로 다양하다.
먼저 프랑스 음식이라는 설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감자를 제일 먼저 먹은 나라다. 감자는 남미가 원산지인데 처음 유럽에 전해졌을 때는 독이 있다며 식용을 기피했고 주로 동물에게 먹였다. 이 시기에 프랑스 생물학자 파르망티에가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혔다. 그는 6년간 포로 생활을 하면서 주로 감자를 먹었다. 이때 감자의 유용성을 알아본 파르망티에는 1763년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후 편견만 버린다면 감자가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중요한 식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감자튀김의 원조 역시 프랑스일 것이라고 유추하는 이유다.
벨기에에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지금도 벨기에는 감자튀김이 유명하다. 인접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벨기에는 진작부터 감자를 먹었다. 예전 유럽에서 감자는 철저하게 빈민의 음식이었다. 가난한 벨기에 사람들이 겨울에 강물이 얼어 생선이 잡히지 않자 감자를 생선 모양으로 가늘게 썰어 튀긴 것에서 프렌치 프라이즈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사실 프렌치라는 영어 형용사에는 프랑스라는 의미와 함께 ‘가늘게 썰다’라는 뜻도 있다.
미국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 대사를 지냈고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손님을 초대해 만찬에 감자튀김을 내놓으면서 “프랑스 조리 방식대로 튀겼다(fried in the French manner)”고 소개하면서 그 이름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French fried potato)’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제퍼슨이 사망(1826)하고 나서 한참 뒤인 1894년 오 헨리의 단편소설에서이고, 지금 널리 사용되는 프렌치 프라이즈라는 줄임말은 1918년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제퍼슨 관련설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결론은 프렌치 프라이즈의 진짜 유래는 설만 무성할 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본격화, 감정싸움 진정
어쨌거나 미국과 프랑스의 감정싸움은 이라크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진정됐고, 미국 국회식당 메뉴도 언제부터인가 자유의 감자튀김에서 다시 프렌치 프라이즈로 돌아왔다. 최종 마무리는 2005년 미국과 프랑스 정상회담이었다. 만찬 메뉴로 특별히 프렌치 프라이즈를 준비하면서 감자튀김을 두 나라 화해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얼핏 아이들 장난처럼 보이지만 감자튀김에는 고도로 세련된 미국과 프랑스의 외교술이 녹아 있다. 프렌치 프라이즈를 이용해 불편한 심기를 표현했을 뿐, 원색적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상대방에게 화를 내면서도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는 고도의 테크닉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마무리 역시 감자튀김 하나로 슬쩍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개인이나 단체, 국가 모두 화를 낼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