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馬房)집>
토속음식 한상이다. 차림새도 찬이 아닌 상이 들어온다. 공간형 한상, 어릴 때 엄마가 정지에서 끙끙거리며 가져오시던 밥상이다. 앙증맞은 찬그릇에 곱게 담은 각종 소채들이 줄줄이 사열하고 있다. 찬은 따로도, 비벼서 같이도 먹을 수 있다. 반찬 가짓수가 많아 한 순배 돌면 어느새 양이 차는 느낌, 나머지는 양보다 맛으로 먹는다. 개운함에 포만감을 잊는다.
1.식당얼개
상호: 마방집
주소 :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 674(천현동 428-4)
전화 : 031) 792-2049, 791-0011
주요음식 : 한정식, 된장찌개
2. 먹은날 :2021.2.9.저녁
먹은음식 : 한정식 15,000원(1인), 소장작불고기 18,000원
3. 맛보기
상이 통째로 들어온다. 두 사람이 앉으면 밥상은 꽉 차는 느낌. 이도령이 받았음직한 개다리소반보다 월등 화려한 상이지만, 수수하고 토속적인 느낌이 소반처럼 수수해 보인다.
밥상에 가득한 찬들이 먹기도 전에 포만감을 주지만, 정갈한 소채들은 개운한 포만을 기대하게 한다
채소찬만으로는 혹여 허전할까 하여 소장작불고기를 추가했다.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화롯불처럼 안에 불이 지펴져 있어 먹는 동안 내 뜨거운 불맛을 함께 할 수 있다. 고기를 다졌지만, 떡갈비와는 다르게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다. 양념맛이 제법 나지만 고기맛을 죽이지 않는다. 오롯이 느껴지는 한우의 육즙맛이 고급지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게 결국 메인디쉬가 된다는 거다. 이런 특별요리 시키지 않고도 마뜩하게 먹었다는 느낌이 들게 할 수 는 없을까. 꼭 나물류만 고집한다면 콩고기 등의 타협안도 있을 수 있겠는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소박해보이는 밥상의 밥값이 만만치 않게 되어 하는 말이다.
주메뉴는 된장찌개. 소고기가 들어 있어 부드러운 맛을 내지만, 전체적으로는 강한 전통의 맛이다. 된장의 시원적인 맛이 개운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간장을 뽑지않은 된장, 맛을 진하게 머금은 된장은 진한 된장향도 그대로 품고 있다. 과연 대표메뉴로 내놓을 만하다.
김치가 사근한 게 식감도 개운함도 좋다. 깻잎과 쑥갓무침이 제맛이 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가지무침. 삐득삐득 말려서 볶았다. 가지의 향은 그대로 남고 쫄깃한 식감이 더해져 생가지의 맛을 몇 배 뛰어넘는다.
손이 갈수록 맛이 더 나는 채소나물은 어찌 보면 잔인한 찬이다. 그만큼의 수고를 더하도록 유도하니까. 집에서 하기에는 시간의 무덤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맛있는 찬은 그래서 사치스러운 음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몇 입, 향그럽게 입안을 감싸는 반건조 마른 육질이 남겨주는 호사스런 뒷맛을 음미해본다.
여린느타리버섯무침. 버섯의 식감이 이랬던가, 싶을만치 쫄깃서리는 청량감이 있다. 적당한 간은 기본이고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목이를 새콤하게 무쳤는데도 낯설지 않고 상큼하다. 가지런히 썰어 엷은 초맛이 나도록 묻힌 도라지무침, 고춧가루향이 깊고 고소한 여운을 남긴다.
눌은밥을 따로 끓여 내와 좋다. 구수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런데 이 틉틉한 느낌은 무엇일까.
동시 수용 350명이 가능하다는, 마당도 깊고, 방도 깊은 집이다. 여기저기 방과 복도가 가득하다. 저녁 늦어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특히 무쇠솥과 장독대를 살펴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음식뿐이 아니라 분위기도 전통 분위기와 마방느낌을 살리려 했다.
식당안은 이곳저곳이 박물관 버금가게 토속적인 기물을 많이 장식하여 꾸며놓았다. 마방이라서인지 유난히 바퀴를 많이 쓰고 있다.
언제적 누가 그렸는지 모를 대형 풍속도가 걸려 있다. 마치 중국의 청명상하도같은 느낌이 난다. 그림의 배경인 개봉에 가면 그림 장면을 실제 그대로 재현해놓은 동네가 있다. 2,3년 전 상해에 갔더니 대형 미술관에 거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물소리, 떠드는 소리까지 3차원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발전적 계승이 아니라 전통의 힘을 빌어 현재의 전통 단절을 호도하는 거같다는 느낌이 오히려 강했다.
이 그림 아래 밥을 먹으면서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전통이 그대로, 혹은 자연스럽게 변모하며 계승된다는 느낌이 든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은 음식과 상차림 덕분이리라.
4. 먹은 후
1) 오래된 식당, 주막에서 식당으로 전환하던 시기의 식당
2년만 있으면 100년이란다. 1923년에 열었다는 말이다. 일부 신문에서는 1918년 혹은 2016년 열었다고 하는데, 직접 주인 사장님에게 물어본 말이니 이 말이 맞을 것이다. 형과 동생이 각각 마방과 주막을 길건너에서 나란히 하면서 영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오래된 식당 100선 등의 목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림잡은 연대의 기억에 편차가 있거나,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았거나, 당시에는 식당의 구색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등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다. 1923년이라고 해도 10번째 안에 드는 식당이니 전국에서 역사로만도 꼽을 만한 집임은 분명하다.
1904년의 서울 이문설렁탕이 제일 오래된 식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식당이 100년 전에는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오늘날의 개념의 간판을 건 식당이 없었다는 말일 뿐이다. 옛날에는 이름없는 주막들이 모두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은 주인이 아닌 고객이 편하게 붙여 버드나무집, 감나무집 등등으로 불리웠다. 주막은 술과 음식을 팔면서 대개 숙식을 겸하는 다기능의 영업점포였다.
이 식당은 말과 사람이 함께 쉬고 먹는 마방이었다. '마방'은 마구간, 혹은 마구간을 갖춘 주막을 말한다. 식당 이름으로 마방을 쓴다는 것은 후자의 전통을 이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형과 아우가 길건너서 마방과 주막을 열어 영업을 했었다고 하니, 우리 주막사에서 주시해야 할 집이다.
전통적인 주막이 식당으로 전환하던 시기의 산 증인이 아닌가 한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역사적 전환기의 식당의 역할에 대한 별 인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당시의 주변적인 상황을 말해주지만, 적극적인 자료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다행인 것은 전통을 이으려는 강한 책임감과 음식에 대한 가치관이다. 우리 식당 역사에서도 소중한 집이다.
2) 옛날 주막의 순수한 맛 그대로
100년이 되도록 3대가 운영하면서 식당 전통도 지키고 음식도 지켰다. 1920년경 우마차가 달리던 시절에 문을 열어 우마차 주인도 쉬고 마소도 쉬던 곳이다. 쉬면서 마부는 음식을 먹고 막걸리도 한잔하는 사이 소나 말에게는 여물을 먹였다. 전통적인 ‘마방’이다. 보통 주막보다 크고 본격적인 영업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식당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성업하던 시기는 80년대부터다. 실상 우리 식당이 1970년대 이후 활성화되었다고 보고 있으므로 마방집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성업시기가 맞았을 것이다. 80년대는 아시아올림픽이 열렸던 시기이기도 한다.
조선 시대는 농업사회인데다 상업을 중시하지 않아 이동이 전반적으로 많지 않았다. 숙박과 식당을 겸한 주막은 상업화와 함께 이동이 늘어난 18세기에 자리를 잡고, 19세기 중엽 이후에야 장시의 중심지가 된 것으로 본다. 상업도시의 형성도 늦어져서, 한양에는 술집 위주의 주막이, 지방에는 밥집으로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던 주막 중심으로 식당이 형성되었다. 음식점과 요리점은 1906년에 허가를 받아 영업하도록 조선통감부 하에서 규정되었다. 이후 여러 규정이 세분화되고 강화됨에 따라 주막에서의 숙박업은 분리되어갔다.
마방집은 서울과 지방 주막의 중간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주막에 관한 연구도 매우 희소하고, 마방에 관한 전문적 연구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방에 관한 자료가 이 식당에 보존되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자체로서도 우리 식당사에서 중요한 산 증인과 자료가 된다. 식당의 객실이 20여 개가 되는 거 자체가 주막과 숙박이 하나이던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것이라 할 수 있고, 현재 숙박 기능이나 우마 거처 기능은 사라지고, 식당만 남은 것은 주막에 술집 위주였다는 설에 대한 반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쉼터 기능까지 하면 200년은 된 것이라는 말씀은 주막 역사를 그대로 이어왔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우마가 사라지고 화물차가 짐을 나르게 된 근대에는 화물차가 이곳에서 숙박을 했다. 나는 현대적 의미의 주막이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보는데, 전통적 주막이 현대적 주막으로 바뀐 모습을 이곳에서는 순차적으로 거친 것이다. 하남톨게이트 옆 서울 가는 길목에 있는 위치 또한 이런 영업을 요구하였다.
경영주는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간판 아래 바퀴도 실제 쓰이던 것을 쓰고 있으며, 대문도 오래된 것을 사용하여 하남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 경내 소나무도 100년 정도 되었다 한다. 건물 실내 대들보나 천장은 대부분 소나무를 쓰고 있다. 소나무는 모두 알다시피 국민나무다.
역사성을 지키려는 노력 뿐만 아니라 규모 자체도 평가할 만하다. 20여 개의 객실 수에 350명을 동시 수용할 정도의 규모이다. 규모가 역사를 이은 것이라면 마방으로서도 최대 규모가 아닌가 한다.
거기다 음식의 순수성과 자연성을 지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잘 무르지 않는 수입콩이 우리 된장에 적절하지 않아, 강원도까지 가서 직접 좋은 콩을 사가지고 온다. 간장을 뽑지 않은 된장으로 된장 맛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나물 반찬 위주의 상을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역사의 자료가 되어 주고 오늘날 우리의 건강 수호자 노릇을 하는 이 식당은 요모조모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식당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길 빈다.
<참고문헌>
주영하, 주막의 근대적 지속과 분화-한국음식점의 근대성에 대한 일고, 실천민속학연구11, 실천민속학회, 2008.2.
기타 신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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