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인대회 자체가 ‘여성의 인권신장’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고정된 기준에 맞춰 여성의 몸을 재단하고 그 틀 안에 들어온 여성들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남발하던 때가 있었다. 여기에 더해 ‘000 아가씨 선발대회’라는 이름의 각종 지역미인대회까지 판을 치며 지역의 주요 문화를 알리거나 특정상품 홍보를 명분으로 여성의 몸을 전시 하듯 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까지 무수하게 선발되어 온 00여왕, 00아가씨, 00미...이라는 호명은 공적영역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규정짓는 명칭이었던 것이다.
최근, 30여년을 끌어오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역시 폐지를 요구하는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에 제출되었으며, 미스코리아대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미스아메리카대회에서도 올해부터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는 등 내용 자체가 소멸하거나 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다양한 삶의 형태만큼 몸의 다양성이 용인되는 사회일수록 차별적 상황을 완화시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된 지금, 이제 여성들은 획일화된 기준으로 자신의 외모가 재단당함을 거부하며 성 상품화와 각종 뷰티산업의 광고 수단에 동원되는 몸 품평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조금씩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이러한 황당한 행사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는 6월15일, 미스그랜드코리아라는 행사가 경기지역 예선을 앞두고 있다. 행사주최측에서는 미스그랜드코리아 대회는 ‘뷰티산업 홍보와 한류문화, 방송/문화컨텐츠 선진국을 향한 문화대사·평화를 위한 미의 사절을 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미스그랜드코리아대회의 예선에는 체형심사를 이유로 수영복을 준비하라고 홈페이지에 명시하고 있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위 목적에 부합하고자 하는 참가여성들은 또다시 수영복 입은 몸을 공개적으로 품평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처럼 철 지난 <미인대회>를 부활시켜 내고 있는가? 사람의 몸을 대상화하여 급수를 따지는 일에 즐거워하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직도 문화컨텐츠 산업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꽃’으로, 주체적 인간이 아닌 남성의 보조자로서만 인식하고 있는 결과이며 사회적 역할 속에서의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에서의 성역할분리를 통한 성별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데 다름 아니다. 성평등사회를 지향하는 2019년에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는 미스00 대회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만만찮기에 그저 철지난 지역행사 따위로 치부하기엔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DMZ 홍보에 기여한다는 취지에 비추어보면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유독 수영복 심사만을 과장 홍보하며 영상과 기사를 만들어냈던 2018년 대회를 복기해보면 이 대회가 DMZ평화를 이슈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 어깨띠와 번호표를 붙이고 전시당했던 여성의 성상품화 관습을 고스란히 답습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기에 언론이, 특히 지역 언론들이 나서서 일조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행사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문화컨텐츠를 발굴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비판하고 견제해야 나가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은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왜 좋은 취지의 대회를 비꼬는가? 라고 항의한다면,
왜 여성을 외모로 심사하고 순위를 매겨야만 하는지 되묻겠다.
문화대사, 평화사절 인사를 선발하는데에 노골적으로 성별고정화된 성상품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정말 구태의연하다.
이제 그만 끝내야 할 때다!!
본 대회를 통해 성평등한 문화컨텐츠 발굴에 기여하고, 분단사회에 평화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하는데 여성들의 역할 확대가 일어날 수 있는 대회라면 언제든 대 환영이다. 이분법적인 성 역할을 해체하지 않으면 우리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는데 일보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은 명백하기에 미스그랜드코리아 대회의 경기지역예선을 즉각 중단하기를 요구한다.
2019.06.12.
경기여성네트워크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경기여성단체연합/경기여성연대/경기자주여성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