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과 사모님
제기동 출신인 나는 명문대라 불려지는 학교의 학생들을 질리게 보고 자랐다
지방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나는 경상도 사람이 좋았다
아니 경상도 사람이 좋은 것이 아니고 그곳 말씨에 끌렸으니 그 때부터도 이루지 못할 첫사랑의 조짐이 생겨 난 것이
아니 였을까 생각하니 참 웃기는 일이다.
고려대 맞은편인 제기동은 학생들이 많은 동내라서 남편 없이 집만 있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다는 곳이다
아마 한석봉 어머니도 제기동을 그때 알고 있었으면 여기저기 이사 할 곳을 찾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우리 집은 많이 크지는 않았지만 디긋 자 형태의 집으로 우리가족이 쓰는 안채를 빼고도 남는 방이 세 개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세를 놓게 되였는데 일부러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니 였는데 ,전라도,충청도,경상도,학생들이
입주를 하였다
전라도 학생은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했기에 별로 기억나지 않고 다만 여고 1학년인 나를 마당에서 보게 될 때 허리까지 숙여서 존댓말로 인사를 하기에 당황 스러웠다
군대에도 다녀 왔을 듯한 얼굴인데 한집에 살면서도 내가 제기동 집을 떠날 때 까지 그 사람의 얼굴을 두어 번쯤
밖에 못 본 것 같다
충청도 학생은 국문과라고 하였는데 우리엄마 비위를 잘 맞추기에 밑반찬이나 특별음식을 잘도 얻어먹었다.
어떻게 우리엄마를 현혹시키냐 하면 ,사주 관상,꿈 해몽,등을 잘 봐 줬다.
충청도 학생은 군제대하고 복학했기에 나이도 많았고 처세술이 뛰어나고 말솜씨는 비단결 같았다
내가 우리 집 ,무남독녀인 것을 알고 내 칭찬하기에 침이 마를 지경이였다
나의 사주팔자가 ,천귀와 천녹 을 타고났으며 남에 집 아들 열 하고도
바꾸지 않을 큰 인물이 될 팔자라고 하였다.
그 말에 속아서 우리도 자주 먹지 못하는 돼지 불고기도 나눠주고
그 학생 방에 연탄불이 꺼젔다면 안방 연탄 불하고도 바꿔주었다
그 학생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때 엉터리 점을 처 준 것을 얼마나 미얀해 할까.
처세술이 좋은
충청도 학생은 졸업 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내 엄마의 각별한 예쁨을 받으며 지냈다.
그런데 문제는 경상도 학생이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 학생은 아주 잘생긴 외모에 천진 스러울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천진 스럽다고 하지 아주 뒤숭숭한 사람 이였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는 거부 할 수 없는 무기가 있었으니 뛰어난 외모에 명문대 법대생이란 것이다
거기다가
경상도사람이고 더욱 그의 성이 윤씨였으니 백 점 짜리 맞춤남자였다
나는 윤씨나 민씨 하고 결혼 할 꺼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으니 하늘이 나에게 준 선물 같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학생은 나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고 1학년과 대학 2학년은
나이로 따지자면 교제가 가능 할 수도 있는데 그는 나를 어린아이로 보는 것 같았다.
난 그때 165센치의 키에 우리학교 천 여 명중 제일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살던 자칭 가칭 퀸카 였다
하긴 증명 서류가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소 ,닭 ,보듯 하는 그에게 작전을 바꿔서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어느 날,,공부에는 관심 없는 나였지만 영어책을 들고 학생 방으로 입성했다
벌이 찾지 않으면 꽃이 옮겨 앉아도 되지 않느냐는 발칙한 생각을 하였다.
,”내일 영어 시험인데요 여기
좀 봐 줄래요?
참으로 유치하고 속 들여다 보이는 핑계 답지 않은 핑계를 그는 속아주었다
남자 방에 처음으로 들어와보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고 그는 내 등뒤에 서서 내 귓불이 닫을듯한 곳에서 영어를 가르쳐 주는데 그의 입에서 뿜어내는
뜨거움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그날 그가 알려준 영어공부는 한가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배움이 목적은 절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내 가슴속에 그의 뜨거운 입김이 들어와 그렇지 않아도 화끈 거리는데 그가 갑자기 나를 끌어 안았다
철없고 응큼 했던 나의 속마음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원망스럽게도 내 몸이 강하게 반항하며 그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내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둘러쓰고 좋아 라며 몸부림을 쳤다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를 생각하니 나의 장래 모습은
법관 사모님이 되는 것을 약속 받은 것만 같았다.
,검사,판사,변호사,재판장,,
역시 국문과 학생의 예언이 맞는구나, 엉터리가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학교에 가서는 모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법관 사모님이 되려면 그에 맞는 품위도 갖춰야 하니까 말이다.
즐겁고 희망찬 마음으로 공부를 끝내고 그를 만날 기쁨으로 집까지 날라서왔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 인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 한 가득 이사 분위기다
학생 방의 유일한 가구인 책 걸상이 나와있었고,옷 보따리와
밥도 하고 국도 끓이는 양은 냄비 하나와 un이라는 글이 적혀진 커다란
군용 숟가락이 내 동댕이 처져 있었다.
엄마는 마루 끝에 서서 학생과 물건들을 사납게 쳐다보고 있었고
일하는 언니는 부엌문을 반쯤 열고 끼어서 구경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 방문은 굳게 닫혀져 기척조차도 없는 상황에 심상치 못함을 감지했다
,어제 밤에 경상도 학생과 나의 사건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으니 그 눈은 일하는 언니였고 ,평소에도
손 하나 까딱 않하고 시켜먹기만 하는 나에게 치사 한 복수를 한 것이다.
아침밥을 챙겨주면서도 알고 있는 내색을 않더니 내가 학교 가고 나서 일러 바첬던 것 이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건이고 뭐고 없었지만 ,다만 사건을 만들려는 시도만
있었을 뿐인데 그 학생은 어린 딸을 어째 보려고 했던 괴씸 죄를 물어 쫒겨 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 상황에 그 학생을 구명 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아무 말 없이 마당을 거처서 방으로 들어갔다.
원인 제공은 내가 하고 처벌은 그 학생 혼자 짊어지게 됐으니
난 비겁하고 못됐었다.
눈물이 났지만 엄마에게 들키면 혼이 날까 봐 공부 하는 척 하며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몰래 울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우리 집과 내 곁에서 떠났고 ,시작도 하지 못한 어린
첫 사랑은 수십 년 동안이나 가슴속 깊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텔레비전에서 법조인들이 나오면 혹시 그의 얼굴일까 하는 기대로 나의 두 눈은 반짝인다.
그 사람의 추억에는 내가 없겠지만 내 삶에는 항상 그가 있었는데 어쩌면 사모님이 되지 못하고 여편네로 살고 있는
나의 현실이 구질스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만약 그를 만나게 된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어디론가 숨겨야
할 것만 같다.
첫댓글 추억은 아름답지요?
그러네요. 아름다운 추억 아니면
쓰라린 추억?
언젠가 읽었던 책귀절이 생각나네요.
"옛말에 이르기를 春女는 思하고
秋士는 悲라 하였다. 蕭蕭한 가을바람에 불리어 우수에 젖은 햄릿의
가슴 속에 꽃피는 봄날 그를 그려
애타는 오필리어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춘몽씨는 春夢에 젖어있지
않고 秋夢에 젖어있는 것 같네요.
ㅋㅋ 아니에요 춘몽 맞거든요,,,언제나 멍멍이 꿈을 꾸니까요,,,ㅎㅎ봄 꿈은 개꿈 이라고 하지요?
가을꿈은 아쉬운 꿈인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