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일)
오늘은 여행 와서 세 번째 맞는 일요일이다. 에너지가 충만하고 씩씩한 병산은 오늘도 앙카라 시내를 구경하겠다고 나갔고, 나는 하루 쉬기로 했다. 로자씨와 따님도 밀린 빨래를 하면서 오늘 하루는 쉰다고 한다. 나는 앙카라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사와야 한다. 지금까지는 모든 결정을 병산이 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따라만 다녔는데, 막상 혼자 지하철을 타고 앙카라역까지 갔다 오려고 하니 약간은 걱정이 앞선다. 터키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구글 지도를 찾아서 가까운 역에서부터 앙카라역까지 표시되는 지도를 사진 찍었다. 그리고 출발역과 도착역을 외우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숙소를 나섰다.
<그림34가> 우리 숙소가 있는 조용한 동네
<그림34나> 앙카라의 굴절 버스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우선 표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매표 창구 앞에서 당황스럽게 서성이는데, 갑자기 “May I help you?”라고 말하면서 터키 여인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와 영어로 말하면서 나를 도와 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여인이 자기가 가진 신용카드로 내게 일회용 표까지 사주는 것이 아닌가? 터키 사람의 친절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앙카라 역에서 도착하여 병산이 예매한 시간으로 기차표를 샀는데, 여기서도 또 한 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표를 사려면 여권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내 여권을 살펴보던 직원은 60세 이상은 경로라고 원래 가격 70리라의 반절인 35리라만 받고 표를 준다. 터키 사람뿐만 아니라 터키 정부까지도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정말로 터키는 노인이 여행하기에 좋은 나라이다.
기분 좋게 기차표를 산 후에 다시 지하철역에 도착하였다. 나는 내일도 지하철을 몇 번 이용할 것 같아서 일회용이 아니고 교통카드를 사서 30리라 정도를 충전하여 사용하려고 시도해보았다. 매표소에서 영어로 직원에게 물어보니 직원은 터키어로 대답하고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답답해하고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터키 남자가 달려와서 친절하게 도와 준다. 놀랍게도 그 광경을 보던 다른 터키 남자가 한 사람 더 와서 두 사람이 나를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정말로 이렇게 외국인에게 친절한 사람들은 내 평생 처음 본다. 정말로 터키 사람의 친절은 감동적이다.
숙소에 돌아와 점심은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고, 가까운 공원을 산책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을 여기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국과 터키의 기후가 같다는 뜻이리라. 내가 공원에서 본 나무들 중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무는 플라타나스, 홍단풍, 회화나무, 아카시아, 라일락, 소나무, 뽕나무, 천사의 나팔이었다. 앙카라 거리는 서울의 거리와 비교하면 조금 더 지저분했다. 사거리에 서서 사람들이 신호등을 얼마나 잘 지키나 관찰해 보니 서울에 비해서 신호를 덜 지키는 편이었다. 거리를 걷는 여인들 중에서 히잡이나 차도르는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나 쓰지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쓰지 않았다. 젊은 여성들 복장의 노출 정도는 서울에 못지 않았다. 시내 곳곳에 있는 모스크 외에는 여기가 이슬람 국가라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후 시간에는 호텔에서 쉬면서 안사리의 책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 보았다.
이슬람 세계의 인사 예절에는 과거 유목 생활의 관습과 이슬람의 영향이 남아 있다. 이슬람에서는 부모님이나 나이 많은 연장자, 그리고 손님에 대한 예의를 중시한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도 인사를 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하디스(주: 무함마드의 말씀과 관행을 기록한 것으로 코란에 버금가는 권위로 간주된다)에도 “말하기 전에 인사부터 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문화는 오랜 유목 생활의 흔적으로서 이방인이나 나그네들에게 자신이 적대적이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인사를 먼저 건네던 습관이 남은 것이다.
내가 거리에서 여러 번 보았지만 터키 사람들은 악수나 포옹을 한다. 악수는 깨끗한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악수는 보통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다음에 하거나 악수를 하면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길이나 집을 묻기도 한다. 포옹은 가까운 집안 식구나 친척, 친구 간에 하는 인사로 오른쪽부터 시작해 왼쪽으로 서로 어긋나게 안아주는데, 포옹을 하고 나서 상대의 어깨에 얼굴을 대거나 서로 뺨을 맞추는 인사를 계속하기도 한다. 포옹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인사이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남녀 간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샬라(inshallah)는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인샬라는 “만일 신이 원하신다면”이라고 번역되는데, 무슬림의 약속을 지배하는 철학이지만 때로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오해받기도 한다. 코란 18장 23~24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내일 반드시 이것을 한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단 ‘신의 뜻이라면’이라고 하면 된다.
이 가르침에 따라서 모든 이슬람 교도는 미래에 예정된 행위나 약속에 대해서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자기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신의 허락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신은 만물을 주관하는 절대자이므로 이론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무슬림이 말하는 인샬라가 매우 애매하여서 ‘예’인지 ‘아니오’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불평한다. 무슬림과 사업을 하는 한 상사 직원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인샬라가 예에 가까운지, 아니오에 가까운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무슬림은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오라는 부정적인 말보다는 인샬라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슬림과 어떤 약속을 할 때에 그가 인샬라라고 말하면,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판단하여 인샬라가 긍정인지 부정인지 정확한 해석을 해야 한다. 인샬라라고 말하는 무슬림에게 예/아니오나 분명한 결정을 촉구하는 것은 결례가 된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거룩한 도망(聖遷)을 히즈라(Hijra)라고 하는데, 그 날짜인 서기 622년 7월 16일이 이슬람 달력의 원년 1월 1일이 된다. 이슬람력은 음력에 기초하며 1년은 12개월이고 1개월은 29일과 30일이 섞여 있다. 1년은 354일 또는 355일이 되므로 태양력에 비해 10일 이상 짧으므로 30년의 주기로 11번의 윤달이 존재한다. 원래 아라비아 지방에서는 2~3년에 한번 윤달을 두고 있었으나 윤달을 두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고 신관에 의해 지정되어 종교적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무함마드가 전폐하고 이슬람력으로 고쳤다. 현재에도 이슬람에서는 각 지역에서 초승달을 맨 먼저 본 때부터 달이 바뀌며 다만 1달이 30일을 넘지 않도록 한다. 오늘날 서구화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슬람력과 서양력을 병행하여 사용하며 이슬람력을 알리기 위해서는 년도 뒤에 H 혹은 A.H.(라틴어로 Anno Hijrae, 영어 뜻은 in the year of the Hijra)라고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