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마니산 관광지>
산에 본격적으로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기자기 요모저모 살뜰하게 잘 꾸며 놓았다. 가을 정취와 맞물린 역사의 향기가 아름답다. 간단히 얼체험관을 보고 성화채화하는 모조 참성단을 보면서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서운함을 달랜다.
1. 대강
위치 : 인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411
입장료 : 2,000원
방문일 : 2022.10.19.
2. 둘러보기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산책로 겸 등산 진입로가 예쁘다. 구절초라고도 하는 들국화도 너무 맑고 깨끗하고 귀족스럽다. 아름다운 자연에 역사적 의미도 빛을 더한다. 단군, 저 시원으로부터 이어지는 도타운 뿌리의 느낌도 내 삶을 단단하게 한다.
이곳에 오면 여러가지를 한번에 확인하게 한다. 내가 나만이 아니고, 인간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 역사의 일부이고,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그속에서 너도 똑같이 평범하면서도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 감지된다. 내가 특별하지 않은 내가 유별나지 않은 존재의 확인이 내 삶을 더욱 건강하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니산
높이는 472.1m이다. 마니산은 강화도 서남단에 있으며 강화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의 정상에서 남쪽의 한라산과 북쪽의 백두산의 중앙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마니산은 마리산 또는 머리산으로도 불린다. 마리란 고어(古語)로 머리를 뜻하며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의미한다. 더우기 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이 있어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마리산(摩利山)으로 되어 있고, 그 후 마니산으로 바뀌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얼체험관 외부. 강화도, 단군신화, 삼랑성, 마니산 등 강화도의 유적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특히 단군과 관련해서는 유물 모형물도 만들어 놓고 많은 자료를 모아 놓아 강화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된다.
단군 화상
마니산 참성단 재현물
참성단(塹星壇)
사적 제136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전해오는 곳으로 마니산제천단이라고도 한다.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고, 단은 그 위에 네모로 쌓았다. 아래 둥근 부분의 지름은 4.5m이며, 상단 네모의 1변 길이는 1.98m이다. 동서에 돌층계가 있으며 단의 높이는 약 5.1m이다.
상방하원, 즉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근 것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 쌓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이미 고려시대에 임금이나 제관이 찾아가 제사를 올렸으며, 조선시대에도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고려 후기인 1270년(원종 11)에 보수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1639년(인조 17)에 다시 쌓았으며, 1700년(숙종 26)에도 보수를 했다. 현재 이 제천단에서 매년 제천행사가 있으며, 전국체전 때는 봉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린다. (다음백과 전재)
참성단 조형물
마니산 정상에 가야 볼 수 있는 참성단을 여기서 모조물로 만난다.
강희맹(姜希孟) <마니산 참성대>(摩尼塹城)
海上孤城玉界寒 바다 위의 외로운 성의 옥 세계가 차고,
風吹沆瀣露凝溥 바람이 불어 바다 기운에 이슬이 영킨다.
步虛人在靑冥外 허공을 걷는 사람은 푸른 하늘 밖에 있어,
吟罷瓊章月滿壇 경장을 읊어 마치자 달이 단에 가득하다.
사적 제136호. 면적 5,603㎡. 전통시대 단군 관련 문헌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전해지며, 실제로는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서 고려·조선시대에는 국가제사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즉 단군이 366가지에 이르는 나라 다스린 공을 세우면서 아울러 제천의 대례를 행하고 보본(報本: 생겨나거나 자라난 근본을 잊지 아니하고 그 은혜를 갚음)의 뜻을 드높였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 제천의식은 1955년 전국 체전의 성화 채화를 계기로 부활되어 개천대제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매년 양력 10월 3일 개천절에 거행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민족 제1의 성적(聖蹟)으로, 마니산 제천단(摩尼山祭天壇)이라고도 한다.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고려 때의 문헌 여러 곳에서 이미 나타난다. 고려 후기에 이암(李嵒)이 엮었다는 단군조선의 연대기인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이 분이 단군이다. …제천단을 쌓고(강화도 마니산에 있음.) 삼랑성(三郎城)을 쌓으시다(성이 강화 전등산에 있고 세 아들을 보내어 쌓았기 때문에 삼랑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시대 학자 이종휘(李種徽)의 시문집인 『수산집(修山集)』의 「동사(東史)」에는 “제천단은 강화도 마니산에 있으니, 단군이 혈구(穴口: 강화의 옛 이름)의 바다와 마니산 언덕에 성을 돌리어 쌓고 단을 만들어서 제천단이라 이름하였다. 단은 높이가 17척인데 돌로 쌓아 위는 네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위의 네모는 각 변이 6자 6치요 아래는 둘레가 60자이다. 혹자에 의하면 마니는 강과 바다의 모퉁이라, 땅이 따로 동떨어지고 깨끗하며 고요하여 신명(神明)의 집이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제천단에 관한 본래의 연혁을 짐작할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국가제사의 제단으로 활용되었다. 참성단 제사로는 임시제와 정기제가 있었다. 임시제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치러졌고, 정기제는 매년 봄과 가을에 거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정기적 제사의 목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찾아볼 수 없지만, 국가의 안녕과 평안을 비는 것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참성단의 제사는 조선시대의 대부분의 국가의례가 유교식 의례였던 것과는 달리, 도교의례 중 초제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참성단에서 초제가 베풀어진 것은 고려시대부터 확인된다. 1264년(원종 5)에 거행된 것도 국왕의 친초였고, 공민왕 때 문신 경복흥(慶復興)이 마리산 참성에서 초제를 지냈다는 기록과 1379년(우왕 5년) 사신을 보내어 마니산에서 초제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마니산 천부인광장
천부인은 얼체험관에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 있다.
마니산 '치유의 숲' 길
구절초도 예쁘게 피고. 들국화와 구절초가 같은 꽃이란다.
3. 관람후
마니산 정상에 가야 참성단을 볼 수 있다. 거기까지 못 가도 입구 언저리에서만 돌아도 대강 파악하고 한나절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관광지 입구는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훌륭하게 갖추었다. 숲길에, 놀이터에 광장에, 참성단 모형물, 성화체험지에 얼체험관까지 갖추어 박물관적 기능도 함께 가졌다.
넓고 깔끔하고 운치 있는 이곳은 역사에 대해 특히 머나먼 상고사에 대해 깊은 성찰이나 식견 없이도 전달되어 오는 느낌만으로도 흡족한 공간이다. 더 깊이 있는 접근을 위한 실마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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