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안순희
창문 넘어 다가 오는 하늘엔 누구의 솜씨인지 갖가지로 빚어놓은 구름이 예쁘다. 저 깨끗한 힌색과 시리게 푸른 하늘의 조화가 순간 이동을 하듯 시시로 변하는 데 넋을 놓고 바라본다. 사람이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그것이 흩어지는 것이라는 불경 구절을 되새기며 다시 쳐다보니 금방 그 풍경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또 다른 그림이 나타나있다. 인생의 긴긴 여행길이 저렇듯 허망한 꿈인 줄을 몰랐기에 슬프고 억울한 일도 굳세게 이기며 살아 냈다고 나름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추억은 아름답다고, 자랑은 아니어도 부끄럽진 않았다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건너온 세월이 순간의 꿈이었다.
지난해 추석에는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바람이 있어서 객지에 자녀들에게 내려오지 말고, 코로나 사라지면 부담 없이 만나자고 했는데 올해는 더 심각해 져서 난감했다. 설마 코로나19가 이렇게 끈질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무 지친 사람들은 백신의 효능을 기대하며 긴장을 풀기 시작하는지 명절 앞뒤로 쉬는 날이 많아서 미리 왔다며 작은딸 가족이 먼저 내려왔다. 예전 같으면 명절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것을 세상이 좋아져서 마트에서 한꺼번에 다 살 수 있으니 당일에 준비하고 그날은 오랜만에 여행이나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여수 오동도를 거의 30여 년 만에 가니 위치는 같으나 주변 풍경이 많이 변해서 낯설었다 높은 방파제 옆으로 난 도로가 예쁘게 가꾸어져서 걷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산 입구 카페에서 냉커피를 사 들고 산책로를 돌아 나오는데 나무가 우거져서 서늘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아침 저녘으로는 서늘 하지만 한낮엔 여름이 남아있어 햇살이 따가웠다.
신나는 추억 하나는 만들어 가자며 모터보트를 탔다. 기사 아저씨가 재주를 부리며 배가 뒤집힐 듯 흔들어서 비명을 지르면서도 시원한 바닷바람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이랑 오동도 앞바다에 행복한 웃음을 남기고 내리니 배가 고파 길가에 맛있어 보이는 간판이 걸린 집을 찾아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백신 완료 인증을 보여주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음식이 맛있어서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다음 날엔 일찍 서둘러 딸네 가족은 올라가고 막내아들과 둘이서 장흥 토요시장엘 갔다. 추석 차례에 올릴 생선을 고르면서 또 한 번 시절이 좋아진 걸 느꼈다. 간이나 마른 상태가 알맞은 상품이 그리 비싸지도 않아 흡족했다. 모든 것은 분업화가 되어 전문가의 손을 빌리고 내가 잘하는 건 나누면 이렇게 편하니 한결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참 좋았다. 오후에는 큰딸이 막내만 데리고 내려왔다 .큰애들은 저희 볼일 있다며 안 온 걸 보니 다 자랐구나 싶었다.
며칠간의 휴일이 끝나고 김치와 참기름 등을 싸서 실어 큰딸네도 보내고 나니 허전하다기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그 옛날 대가족이 모여 살며 논으로 밭으로 돌아다니며 재료들 구해다 차례 음식 만들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풍성하고 편리해진 지금이 좋다. 그득히 쌓아 올리지 않으면 정성이 모자라는 것 같아 덜 여문 풋과일까지 따 나르던 시절은 늘 모자라서 명절 덕에 누려 보는 호사였지만 영양이 과해 억지로 굶는 세상에 한꺼번에 차릴 필요가 없어서 때마다 필요한 양만 만들어 먹으면 냉장고가 모자라는 일이 없으니 남아서 버릴 일도 없다, 나이가 드니 개을러지고 요령도 늘어 무리하게 일을 벌일 엄두가 안 나서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한다. 또 한 번의 추석이 지나고, 다른 해보다 철이 늦어 들은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꿈처럼 빈들에 눈 이불 덮이면 숫눈길에 발자국 남기며 걸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