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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가나안 땅을 구원의 선택지로 삼으셨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땅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들어간 영토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다. 그런데 땅의 주인 하나님이 그 땅을 바로 주면 될 것인데, 그 약속한 땅(창 15:13~16)을 주기까지(수 5:10~12) 무려 676년이라는 긴 기간이 걸렸다. 그 기간 안에는 유목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유랑생활 206년, 애굽에서 종살이 430년, 광야의 장막 살이 40년이 들어있다.
그러면 이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중심에 두고 주위의 땅을 한번 살펴보자. 예루살렘을 중심축으로 하여 콤파스로 동심원을 그려나가면 주위의 지형과 관련 국가들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예루살렘에서 고린도를 거쳐 로마까지 직선거리가 대략 2,230km이다(평면도에서 본 수작업 계측이라 정확하지 않음). 동심원의 반지름을 로마까지 잡아서 한 바퀴 돌리면 원 안에 세 개의 대륙이 나타난다. 동쪽은 아시아, 남쪽은 아프리카, 그리고 서북쪽은 유럽이다.
동심원 안에 들어있는 각 지역은 그 대륙 전체이 비하면 일부에 속한다. 그러나 그 동심원 안에는 가장 일찍 고대의 제국이었던 이집트가 있고, 그 뒤를 이어서 앗수르,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헬라, 로마가 연대별로 등장하여 제국의 힘을 펼쳤던 광대한 지역이다. 그리고 주후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이 이곳에 진출했다. 모두가 약소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속국으로 삼은 제국들이다.
예루살렘 동쪽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지나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국경까지다. 특히 메소포타미아는 지금 사막화되고 있지만, 고대는 곡창지대이며, 우상숭배가 심하였던 곳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대부분이 이곳이다. 여기서 아프리카 사이는 홍해와 페르샤만, 아리비아는 사막이라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다.
남쪽은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 종살이를 한 애굽을 비롯하여 에치오피아(구스), 리바아(붓)와 수단 등 북아프리카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에치오피아는 간다게 여왕의 내시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고(행 8:27), 솔로몬 시대는 스바(홍해 주변 지역 사바 왕국)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적도 있다(열상 10:1~10). 북아프리카 북쪽은 지중해가 대륙을 갈라놓고 있다.
지중해를 건너면 이스라엘 서북쪽인 유럽의 동남부 지역이다. 발칸 반도가 그 중심이다. 유럽과 아시아는 중간에 흑해, 카스피해, 아랄해, 그리고 산악지대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려면 튀르키 지역을 지나서야 갈 수 있다.
비옥한 초생달 지역
그래서 대륙들 사이 사이에 있는 바다나 사막, 산악지대를 빼면 3개의 대륙은 선풍기 날개처럼 3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에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5대 제국이 시대를 따라 등장했었다. 더 크게는 고대에는 이집트 제국, 가장 최근 15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오스만 제국이 진출하여 모두 7대 제국이다. 7대 제국은 자기 치세를 위한 영토 확장을 위하여 남의 땅을 빼앗으며, 인명을 해하는 침략 전쟁으로 일관하여 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블레셋) 또는 가나안 땅이라고도 하는 이스라엘 영토는 세 개의 날개가 달린 선풍기에 비유하면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중심부라서 좋을 수 있지만, 실상은 이 지역은 제국들이 이곳에서 전쟁을 하게되는 현장이 되거나 전쟁을 하러 가는 원정대의 길목 역할을 하였다. 중동에서는 대해(지중해)로 나아가는 해상 통로이기도 하다. 가나안 땅은 군사적으로는 전략적 요충지, 경제적으로는 사람과 물자가 3개의 대륙으로 오고 가는 나들목이다. 그래서 시대별로 탐욕을 품은 제국들이 출현하여 벌어지는 영토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참혹한 희생터가 되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는 삼각주로 비옥한 곡창지대에 속한다. 제국들이 모두 이집트를 점령한 역사가 있는데, 그들이 이집트로 진출할 때마다 길목인 이스라엘 영토와 예루살렘은 그들의 전쟁터가 되어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일반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고 하면 가나안 땅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나안 땅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 중에 가장 열악한 지역일 뿐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있어서, 또 이집트는 나일강 하류, 삼각주가 있어서 비옥한 곡창지대라는 말이 걸맞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이처럼 비옥한 땅이 아니다. 국토의 60%가 네게브 사막이다. 이스라엘의 대부분 지역은 광야와 구릉지다. 제국들이 땅을 빼앗기 위해 오고 가는 길목이거나 전략적 요충지는 맞으나 비옥한 지역이거나 살기가 좋은 곳은 아니었다. 샤론평원, 해안지대, 요단강이 흐르는 주변 지역은 물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갈릴리 호수는 어업, 대해는 무역으로 상업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리 시설을 하여서 척박한 구릉지, 엔게디 지역처럼 사막이 옥토로 바뀌어 가능 중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지만, 그 땅이 공짜는 아니고 피를 흘린 희생이 있어야 진입이 가능했다. 그 땅을 얻기 위해 애굽에서 400년 넘은 종살이를 하면서 인구수를 불려야 했었다. 이처럼 땅을 주는 대가는 혹독하다. 하나님이 이 땅을 주실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지만(출 3:8,17, 13:15), 실제로 들어가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12 정탐꾼 중 10명이 땅을 혹평하다가 징벌을 받아서 40년 광야살이만 하다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만 보면 아브라함이 비옥한 곡창지대이었던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으면 삶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불러서 가나안 땅을 준다면서 그 후손들에게 이처럼 혹독한 고생을 하게 하는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이 땅을 주시려면 기왕지사 비옥한 땅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주든지, 제국들의 전쟁터가 되지 않는 안전 지역을 주시지, 왜 이렇게 약소국으로 제국들의 희생물이 되기 좋은 장소(취약지)를 택하여 주셨는가 말이다. 또한 김용옥 씨 말처럼 하나님이 남의 땅을 부당하게 빼앗는 "깡패"라면, 7대 제국들이 한 것처럼, 아니면 이 제국들보다 더 넓은 땅을 빼앗아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약소국으로 남게 했고, 영토는 침략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길목을 주어서 제국들의 땅 따먹기 전쟁에 희생물이 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왜 이런 취약한 지역에 아브라함을 불러서 땅을 주고, 세상 구원을 인도하고 있는지를 주의하여 살펴야 한다.
3대륙은 노아의 세 아들과 관련이 있다.
세 개의 선풍기 날개 같은 3대륙은 동심원을 더 크게 늘려보면 동쪽은 중동과 아시아 전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북서쪽은 유럽이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류를 전멸시킨 사건이 노아의 대홍수다. 대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는 셈, 함, 야벳 세 형제를 두었다(출생 순서는 야벳, 함, 셈). 창세기 10장은 이들이 홍수 이후 어디로 갔는지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 지역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성경 연구가들이 대체로 이렇게 추정하고 있다.
장남인 야벳의 아들들은 흑해와 카스피해를 거쳐 유럽 대륙인 바닷가(지중해 연안)로 갔다(창 10:5). 차남인 함의 자손들은 구스가 아프리카에 정착한 후 아라비아를 거쳐 멀리 인도까지 퍼져나갔다(톰슨 성경 창 10:6 주석). 니므롯이 시날 땅, 곧 바벨론 지역으로, 미스라임의 후손과 함의 넷째 아들 가나안은 지금의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된다(창 10:10~19).
노아의 막내 아들인 셈의 후손은 정확한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셈의 후손이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 정착한 것은 확실하다. 특히 셈의 후손은 그의 4대(또는 5대) 손인 에벨에서 벨렉과 아우 욕단이 소개되고 있다. 두 형제는 여기서 나뉘어져 벨렉은 서쪽 시날 땅으로 옮겨가고(창 11:2), 아우는 아들 열 셋을 데리고 메사에서 스발로 가는 동쪽 산지로 가서 살았다(창 10:21~31).
이렇게 홍수 후 노아의 세 아들이 거주한 지역을 살펴보는 것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선풍기 날개처럼 펼쳐진 3개 대륙의 인문, 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3대륙과 노아의 세 아들이 초기에 정착한 지역을 살펴보면, 예루살렘 서북쪽인 유럽은 야벳 후손이 살았고, 아프리카는 함의 후손이 살았다.
그런데 아시아, 특히 중동지역은 가나안 땅을 비롯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노아의 후손들이 서로 섞여 살았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셈의 후손 중에서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벨렉과 나누어져서 그 지명을 확실하게 특정할 수 없는 스발로 가는 동쪽 산지에 살았다고 한다. 욕단은 아들이 무려 13명이나 되는 대가족이다. 에벨의 장남 벨렉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톰슨성경, 창 11:2) 시날 땅에 갔고, 욕단은 동쪽으로 갔으므로 이때 두 형제는 서로 나뉘어졌다.
주) 에벨의 이름이 “넘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두 아들 중 형 벨렉은 강을 건너서 ‘시날 땅'이 있는 서쪽으로 가고, 동생은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서 동쪽 땅, ‘스발’로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에 근거하여 한국인은 성경상으로 에벨의 둘째 아들인 욕단의 후손으로 추정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 노아의 아들 삼형제의 출생 순서와 벨렉과 욕단의 이동 경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유석근, 알이랑민족, 예루살렘] 과 [필자, 성경과 한국문화의 뿌리, 예루살렘]을 참고 하기 바람.
아무튼 3대 대륙으로 나누었을 때 유럽은 야벳, 아프리카는 함의 후손이 살아서 인문, 지리적 특성이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아시아, 특히 중동지역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과 셋째 아들 셈의 후손들이 서로 섞여서 살고 있는 인문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3대륙은 3대 종교도 얽혀있다.
이 3대 대륙은 고대부터 태양신과 월신, 그리고 잡신들을 섬겼던 우상숭배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지역이 유일신을 믿고 있는 세 개의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유럽은 기독교, 그리고 아프리카의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지역 그의 대부분은 종교가 이슬람이다.
그런데 삼대 종교는 모두 신이 하나인 유일신을 믿고 있다. 유대교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한 분이다. 이슬람은 “알라”라고 하는데 이 알라의 기원은 성경에 뿌리를 둔 유일신이었다. 물론 지금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신의 정체성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그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아브라함을 혈통적 기원으로 보면 태생적인 동기는 같다. 이들 3대 종교는 이슬람과 유대교, 이슬람과 기독교 간에 오랜 기간 격한 대립과 투쟁으로 인하여 앙금이 깊고, 숙적이 되어 있다.
지금도 지리적 동심원을 그리면, 그 중심축에 자리를 잡은 이스라엘 땅은 주위에 이슬람으로 에워싸여 있다. 그러면서 종교 문제와 생존이 걸려있는 땅 문제로 양보 없는 대립을 하고 있다. 서로가 공존하기보다 사라져야 할 대상자로 여긴다. 이것이 오늘날 중동의 복잡한 종교와 영토 문제로 커져 있다. 지금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이런 환경에서 터져버린 하나의 사건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르쳐 준 땅의 소유와 관리 방식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지리적 특성이 있는 중동지역, 그것도 3대륙에서 인문적, 지리적 상관성과 이해관계가 가장 민감하게 얽혀질 수 밖에 없는 가나안 땅을 선택하여,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많은 지역을 두고서, 왜 하필 지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질 수 밖에 없는 가나안 땅을 선택하였고, 또 아브라함을 지정하여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맡겼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며, 아브라함의 후손을 따라서 메시아가 출현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땅을 다스릴 자를 두기 위해서 사람을 창조했다(창 1:26). 하나님이 땅의 관리자, 곧 청지기인 사람을 지을 때는 하늘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협력하여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땅을 맡겼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맡기면서 한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나머지 모든 행위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자율권(자유 의지)을 부여해 주었다. 이것이 토지주인 하나님과 그 관리자인 청지기 사이에 맺은 언약이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땅의 관리를 위탁받은 사람은 첫 사람부터 탐심을 이기지 못하는 태생적인 약점을 보인다. 그리고 그 탐심을 채워주는 행동을 하거나 우상을 섬기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불러 세우고, 그 한 사람의 후손들을 통하여 창조의 목적인 땅의 관리를 직접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이때 토지주인이 선택한 지역은 바로 3대륙의 중심부, 3대륙의 교차로, 제국들의 전략적 요충지(희생지)가 되는 가나안 땅이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 지역은 앞으로 애굽은 물론이고,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그리고 오스만 제국들이 말굽으로 짓밟을 땅이고, 백성들은 그 제국들의 군대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비극의 땅이다. 1차 대전에서 영국과 프랑스도 이곳을 분할통치를 밀약한 적이 있던 지역이다(사이크스-피코 비밀협약). 이 지역은 동심원을 더 넓게 그려보면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강국들이 땅(석유와 지하자원)을 탐내고 있어서 미래에도 다시 각축전이 벌어질 수 있는 지역이다. 여기에 3대 종교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 격돌하는 장소다. 하나님은 이런 지역에 그 미래를 내다보면서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을 선택하였다.
주) 애굽과 이스라엘은 적대 관계만은 유지한 것은 아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이 기근이 있을 때마다 구원지가 되어주었다. 특히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로 공헌 바가 크다. 예수님 출생 당시 헤롯의 위협으로 애굽으로 피신한 적도 있다. 하나님은 애굽에도 구원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사 19:20~22). 그러면서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삼고 자녀 출생을 막았으며, 요시아 왕 때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므깃도 전투에서 왕이 전사하기도 한 양면성을 가진 국가다. 이집트는 앗수르 제국이 쇠퇴하여 비잔틴, 이슬람, 영국 의 식민지로 있다가 주후 192년 다시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좁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생존의 터전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가나안 땅은 지구촌 인류가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영토 분쟁을 보면서, 자국의 영토와 자신들의 삶도 배워야 하는 생활경제의 교육장이다. 토지주인 하나님과 관리자인 사람 간에 지켜야 할 생활 방식을 배우고 익히는 훈련장이다. 이곳은 종교도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3대 종교의 발생지로 서로가 얽히고설킨 종교 전쟁의 본산지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지리적, 인종적, 종교적인 이해관계가 가장 밀접하게 얽혀있는 지역이다.
토지주인 하나님은 이런 장소이기에 가나안 땅을 선택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는 직접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고 선민의 자부심을 가진다. 그러나 넓게 보면 이스라엘 땅은 주인의 토지를 다스리는 관리 방식을 지구촌 인류가 배우고, 실습하는 하나의 교육 장소 또는 실험 장소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구촌 모든 인류에게 땅의 관리자로 훈련을 받아서 삶의 모습으로 성공과 실패를 보여주어야 할 실험 대상자들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고 긴 구원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역사이고,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속사다. 여기서 토지 관리자에 대한 실험에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데 적용될 기준이 성경이고, 희년법이었다. 그리고 토지주인의 상속자, 예수 그리스도가 희년법을 따라서 이 땅에서 태어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가나안 땅의 주인과 청지기에 대한 구속사의 정리
지금까지 가나안 땅에 대한 소유자와 관리자의 바른 관계와 이를 어긴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아담의 선악과, 가인의 살인, 노아시대의 음란 행위, 바벨탑 축조, 메소포타미아(갈대아 지역 우르)와 가나안 땅에서의 우상숭배가 사람의 생명을 제물로 드릴만큼 사악했었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 탐심을 이겨내지 못하며, 그 탐심의 결과는 인명을 살상할 만큼 잔인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 일곱 족속(또는 10여 족속)을 쫓아내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을 맡기려고 한 것이다. 토지주인은 자기의 땅을 사람에게 맡기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한 내용을 잠정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하라고 한 이유>
① 홍수 후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중에 함의 후손 가나안에 대한 예언에서 이들의 범죄가 미리 예언되어 있다(창 9:25).
② 가나안 족속은 시날 땅에서 니므롯을 비롯한 함의 후손들이 바벨탑 쌓기를 주도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은 반역하고 자기 이름을 내었다(창 11:4). 사람은 지구촌에서 인구를 분산시켜 땅을 채우고 다스리며, 농경문화를 발전시켜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서 범죄에 취약한 도시문명을 일으키고, 땅을 독점하고, 황폐하게 하였다.
③ 가나안 족속은 토지주인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긴다. 우상은 토지를 인간의 자기 소욕대로 다스릴 수 있게 방치하기 때문에 탐심을 채우기가 쉬운 신이다.
④ 가나안 족속은 우상을 섬겨 타락하니 사람의 생명까지 제물로 희생시키는 사악한 종교 집단으로 변한다(신 12:31).
⑤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의 땅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서 땅이 사람의 탐욕을 채워주는 점유, 침략, 매집의 대상물로 전락하였다.
⑥ 가나안 족속은 자기 탐욕을 위하여 쾌락, 음란, 전쟁, 살상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는다.
⑦ 가나안 족속은 생존의 필수재인 땅을 독점하며, 이웃과 사회(공동체)의 공존보다 힘으로 지배하는 강자 지배, 약육강식의 사회를 만들어 간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야 할 이유>
① 이스라엘은 노아의 셋째 아들 셈에게 그 미래가 예언되어 있다(창 9:25,26). 하나님이 볼 때 셈족이 계명을 잘 지키며 주인의 땅을 위탁 조건대로 경작할 청지기직의 합당한 수행자로 본 것이다.
② 하나님의 부름에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미래에 지시할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③ 사악한 가나안 족속을 대신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관리할 청지기를 바꾸려고 한다. 이것은 토지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적(통치권) 의지이고, 권리행사다.
④ 그러나 아브라함 후손들은 유목민 생활로 수적 열세에 있었고, 토지정착에 대한 의지가 약하였다. 그래서 야곱 일가족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400년 종살이를 하게하며, 인구수를 늘리고, 영적 훈련을 시킨다. 땅이 없는 400년 종살이를 통하여 땅이 생존과 자유를 보장해 주는 필수재라는 것을 실제 경험으로 체득하게 하였다.
⑤ 때가 되어 모세를 불러서 종살이에서 해방을 시키고, 약속한 땅을 다시 맡기려고 한다. 이때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제사법과 생활법)도 제정하여 주었다. 율법에는 땅을 다스리는 실무적인 방법으로 희년법도 들어있다.
⑥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줄 때에는 약속을 어기면, 그 땅을 황폐하게 하거나 잃을 수 있다는 경고성 언약을 수차례 하였고, 그 언약의 결과를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⑦ 토지주인은 아브라함의 족보, 특히 누가복음 족보를 통하여 약속의 땅을 지키고 관리하여 온 청지기의 계보로, 구세주가 그 계보를 따라 오게된 역사적 증거를 성경에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다.
<가나안 땅, 우리가 그 땅을 주목해야 할 이유>
① 지구촌의 모든 인간은 친지창조부터 지금까지 땅의 다스림, 곧 청지기 역할을 제대로(성경 말씀대로) 하지 않고, 인간이 임의로 점유와 소유, 찬탈과 매매 행위로 반역하고 있다. 남의 것을 제 것이라고 여기는 인간의 집단 반역이다. 지구상에서 이러한 반역은 창세기 12장 이전까지 5회나 반복하였다.
② 그럼에도 토지주인 하나님은 범죄한 지구촌 인류를 모두 멸하지는 않고 살려 두신다. 그리고 한 사람을 불러서 특정 지역의 청지기로 다시 세우고, 인류를 다시 살리려는 구원 계획을 세우셨다. 여기서 우상숭배지 갈대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가나안 7족속을 쫓아내는 일꾼으로 사용하였다(창 15:18~21).
③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은 지구상에서 3대륙의 중심지이며, 3대륙을 오고 가야 하는 길목(연결지역)이다. 하나님은 이곳을 택하여 지구촌 모든 인류에게 토지 관리자의 성공가 실패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힘을 가진 제국들이 자기 땅을 다스리기보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빼앗고, 수탈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몰락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며 지구촌 모든 인류를 구원할 구속사를 인도하고 있다.
④ 유일한 생존자 노아의 여덟 가족에서 삼형제가 지구촌 여기저기를 옮겨 살며 땅을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도시를 만들어 모여 살기 좋아하고, 탑쌓기, 음란 행위, 살상 등의 범법을 저지른다. 여기에 힘을 가진 자가 사람들을 규합하여 큰 제국을 이루어 타국의 땅과 백성들을 빼앗고 지배한다. 땅과 사람을 자기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다. 하나님은 개인과 왕, 그리고 제국들이 하는 행위들을 짐승 같은 짓으로 규정하고, 경고하며, 그들이 패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단 7장, 8장, 계 13장 등).
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이스라엘 땅을 터전으로 하여 토라와 복음, 선지자의 강령과 말씀을 주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살아가는 도리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은 세계의 문헌들 중에서 가장 권위가 있고, 올곧은 말씀이며, 사람을 살리고, 자유하게 하는 유일한 책이다. 지금까지 발행된 문헌 중에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이며, 풍부한 내용을 가진 유일 구원의 종교 책이다. 그러면서 가장 정확한 역사(구속사)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생활경제에도 필수적인 경제책이라는 뜻이다.
⑥ 성경은 토지주인이 이스라엘 땅과 포도원을 관리하는 방식을 소개하여 주고 있고, 그 땅의 관리와 경작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모두 들어있다(레 25장, 신 15장, 마 20장, 21장). 사람을 가장 온전하게 하고, 자유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세상 어느 책이나 경제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법이 들어있다.
⑦ 성경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토지를 관리, 경작하여 온 하나의 계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역사를 증거한다. 모든 인류는 그 계보를 선택하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며, 토지 상속자로 인정하여 그에게 열매를 내면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는다(마 21:43)
--7대 제국의 가나안 땅 점령과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연대기 비교--는 추후에 표로 올릴 예정입니다.
가나안 땅의 미래는?
지금은 가나안 땅에서 전쟁 중이며, 이 전쟁은 멈추어도 그 지역의 종교 분쟁과 영토 분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가나안 땅과 중동,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성경이 예언한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성경과 세계사를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아도 성경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진위를 파악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다가오는 미래도 성경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예를 한두 가지만 들면 이 땅에는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 전역에서 이루어질 토지분배와 희년법이 아직 성취되지 않고 남아있다(겔 40장~48장). 물론 신약시대에 성전 재건이 구약처럼 건물을 말하고, 분배할 땅은 실제로 이스라엘 영토를 뜻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그래도 그 말씀은 이루어진다고 보면, 우리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성취가 될지 살펴보아야 한다.
또 스가랴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서 해마다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한다(슥 14:16).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명절 초막절에 대해서는 인식이 둔하다. 그런데 초막절은 매년 돌아오는 토지 무르기 또는 7안식년 다음 해 오는 희년을 지켜야 제대로 맞을 수 있는 명절이다. 지구촌 모두가 초막절을 지키는 날이 와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멸하라고 했던(신 7:1) 그 가나안 족속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슥 14: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서자손인 이스마엘의 후손에게도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복을 주고 있다(창 21:18). 이스라엘의 12지파도 따지고 보면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과 다를 것이 없다. 야곱에서 난 12지파는 야곱의 서자 출신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성경은 상속에서 적자와 서자를 차별하지 않으며(신 21:15~17),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구별되고 차별화 될 뿐이다.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미래는 이렇게 우리 지구촌 모두의 미래로 남아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이스라엘의 영토 문제와 지금 세계 각국이 가진 토지문제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사람이 땅에 대한 각종 문제와 그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책과 시장적 해법도 아직 미궁으로 남아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은 탐심을 채워주는 우상숭배에 있으며, 그 대표적 우상이 구약시대는 재물신 바알이고, 신약시대는 제물신 맘몬이다(마 6:24). 신약에서의 우상은 탐심이다(엡 5:5). 이러한 우상숭배의 중심에는 청지기로 지음 받은 사람이 토지주인을 어떻게 믿고 있으며, 주인의 땅을 어떻게 관리를 하는가에 달려있다. 지금의 가나안 땅, 이스라엘의 영토 문제도 이에 결부되어 있다. 이것이 신앙 문제와 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희년법의 준수다.
** 가나안 땅의 미래와 해법에 대한 글은 다음 시간으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