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향기 / 이미옥
절기를 무시한 더위가 이어지던 8월 말, 포항에 갔다. 남편은 휴가를 내고 나는 수업을 조정했다. 뒤늦은 여름휴가는 아니었다. 친구 아들의 훈련소 입소에 동행하고자 시간을 냈다. 어렸을 때부터 봐서 남다른 마음도 있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호기심도 일었다. 딸만 둘인 데다 조카들도 여자애들이라 앞으로도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히 거리가 멀어 집안 어르신들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 월요일 오후 두 시 입소였지만 우리는 일요일 오후에 출발했다. 아이에게 회도 먹이고 포항도 구경시켜 주자는 이유였다. 그러나 순수하게 그런 의도만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다녀온 후 사진을 보니 여름 밤바다를 즐긴 건 입대와 상관없는 어른들이었다.
전날 친구들과 마신 술이 덜 깬 아이는 가는 내내 잤다. 30년 전에 군대를 다녀온 두 남자는 그 시절 얘기로 열을 올렸고 친구와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지루한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남편이 제대한 후에 만나서 훈련소까지 동행한 여자친구도 내가 아니었고 편지로 이별을 고한 사람도 당연히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군대 가는 동기나 선후배는 있었으나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경험이 없어서 이 모든 상황이 즐거웠다. 심란한 아이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그날 밤 30년 선배들과 입소 예정 훈련병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천일야화와 맞먹는 군대 얘기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입소가 천일 후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을 검색했다. 점심으로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갈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남편이 포항에 왔으니 이 지역 음식을 먹자며 ‘모리국수’ 어떠냐고 묻는다. 다들 처음 들어 본 음식이었다. 그게 뭐냐고 하니 칼국수 같은 거란다. 면을 좋아하는 남자들이라 생소한 음식이지만 국수가 국수겠거니 하며 먹자고 한다.
카카오 맵을 켜고 골목을 빙빙 두 바퀴 정도 돌았을 때 정말 조그맣게 간판이 보였다. 골목 여기저기 번듯한 간판을 단 모리국숫집이 많았지만 남편이 가고자 하는 집은 현지인이 인정하는 곳이었다. 골목 입구부터 즐비한 낡은 의자를 보니 믿음이 갔다. 그런데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대기 의자가 많은 이유가 꼭 맛 때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가 세 개밖에 없었다. 벌써 한 가족이 에어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입구에 가까운 곳에 앉았다.
방 앞 쪽마루에 앉은 할머니는 우리가 메뉴를 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미닫이문에 에이쓰리(A3) 정도의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모리국수 2인분 15000, 3인분 20500 ….’ 메뉴는 모리국수 단 하나였다. 우리가 5인분을 주문하자 할머니가 일어선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허리까지 ㄱ자로 꺾여 있어 더 왜소해 보였다.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친구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선반을 눈으로 가리킨다. 거기에는 즉석밥이 상자째로 쌓여 있었다. 오로지 국수만 끓이겠다는 집념처럼 보였다. 밥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그 메뉴판 아래로 허영만 만화가의 방문 인증 사인이 붙어 있었다. 여느 맛집 인증 사인 판과는 달랐다. 보통은 사인한 종이가 찢어지거나 바래지 않게 코팅하는데 그 사인 판은 종이 위에 테이프를 바로 붙여 놓았다. 그런 인증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고수의 향기가 났다. 앉은자리에서 주방이 보였는데 일을 하는 사람은 할머니 한 사람이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모리국수가 뭔지 찾아봤다.
모리국수 이름은 생선과 해산물을 ‘모디’(‘모아’의 사투리) 넣고 여럿이 모디(모여) 먹는다고 ‘모디국수’로 불리다가 ‘모리국수’로 정착됐다고 보는 해석과 음식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도 모린다.’고 해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그곳이 일본인 집성촌이어서 ‘많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모리’를 써서 모리국수가 됐다는 말도 있었다. 설도 재료도 다양한 음식이었다.
먼저 온 손님 음식이 나오고 뒤이어 우리 것도 나왔다. 할머니가 커다란 냄비를 실은 카트를 밀고 옆으로 왔다. 냄비 크기에 놀라고 있는데 친구 남편에게 탁자로 옮겨 달란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일어나 단단히 잡고 옮겨야 할 무게였다. 냄비 안 재료는 별거 없어 보였다. 빨간 국물 안에는 대가리를 딴 콩나물, 면, 아귀 그리고 명태가 들어 있었다. 그냥 생선 매운탕에 칼국수 면을 넣은 거였다. 아침도 잘 먹지 않는데 거기다 생선 매운탕이라니. 마늘 맛이 많이 나는 칼칼한 국물을 몇 숟갈 뜨고 말았다. 재료가 싱싱하기도 하고 원래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들이 아니어서인지 맛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침으로 먹기는 부담스러웠다. 예비 훈련병이 잘 먹어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아침부터 시작된 빨강은 해병대 훈련소까지 이어졌다. 800여 명의 까까머리 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함성을 지른다. ‘남의 아들, 건강하게 잘 다녀와.’ 코가 시큰해지더니 이내 빨개진다.
첫댓글 포항가서 모리국수 먹은 글이 왜 이리 아플까요. 기역자 할머니, 남의 아들.
우리 아들도 내년쯤 입대합니다.
훈련소에 같이 가 줄 수 있어요?
하하하.
센스쟁이 선영씨!
제 차례까지 안 올 거 같은데요. 하하
'모리국수' 처음 듣는 음식 이름이네요. 친구 아들 훈련소 입소 핑계삼아 어른들이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은데요?
저도 그날 처음 들었어요. 네, 반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어요. 하하.
단편 드라마처럼 진행되네요. 모리국수가 엄청 맛있지 않았다는 반전이 재밌고요.
군대가는 우리 아들들! 모두 고맙습니다!
너무 슬퍼서 딸로 만족하기로 했어요. 강제 이별은 안 당하니...
입소했군요.
우리 아들 입대할 땐 코로나로 입소식도 없이 그냥 "잘 다녀와!" 로 끝났는데요.
국방부 시계는 열심히 돌고 있을 겁니다.
코로나때는 좀 썰렁했을 거 같아요. 입대하는 아이들 마음이 더 추웠을 듯요.
우리 아들 입소할 때는 하필이면 운동장 공사 중이라서 800명의 우렁찬 함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당연하게 빨강도 없었고요.
글이 찰지게, 입에 감깁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뭉클했습니다. 모리국수에 빠져 훈련소 분량이 거의 없지만요. 하하.
친구 아들 군대 입대하는 데 동행한 의리 부럽습니다.
30년 선배와 갓 훈련소에 입소하는 훈련병 남자들의 대화가 무르익는
그날 밤 쏴아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선생님 생각처럼 그렇게 낭만은 없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코도 시큰, 눈알도 까칠하고요. 제 두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주변 지인들에게 목 놓아 외쳤습니다.
그대들이 어젲밤 편히 잔 것은 순전히 우리 아들이 나라를 철통같이 지키기 때문이다. 날마다 감사해라. 하하
참고로 장남은 집에서 출퇴근 하는 동 예비군 중대에서 복무했고, 차남은 집에서 20분거리 지산부대 1호차 기사라서 집에 자주 왔더랍니다. 크크.
네, 갓 스물 넘은 아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안전하는 게... 어제 군사 우편도 받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남편에게 보낸 거지만. 하하.
처음 듣는 모리국수는 이름만으로는 예측이 안되네요. 삶은 닭을 찢어서 넣은 초계국수도 한자를 몰랐다면 생소한 국수였더랬어요. 여튼 국수 먹으러 가보고 싶은 글입니다.
글 쓰려고 모리국수 다시 찾아보니 해산물 다양하게 넣어준 데가 많더라구요. 제가 간 곳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 번은 드셔 보셔도 좋을 듯요.
친구 아들 입소도 동행할 정도이면 두 분이 아주 친한 사이이겠죠? 그런 찐친이 있다면 참 든든할 것 같습니다.
네, 든든한 친구입니다. 가끔 속을 뒤집어 놓을 때도 있지만요. 하하.
입영소에서 아들의 어깨들 다독여 주는 것과 전역을 광주역에서 배웅하는 것으로 끝을 맺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코로나에게 빼았겨 버렸어요. 글 고맙습니다, 작가님.
아, 아쉬웠겠네요. 남자들은 아들 입대에 의미가 크던데요. 무사히 잘 다녀온 거 늦게나마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