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1
류인혜
* 베니스에서 보내는 편지
유럽여행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오랫동안 지어진 성당 건물입니다. 모든 볼거리 중에 으뜸인 그곳이 그 시대의 가장 화려한 장식과 첨단의 공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오후 늦게 밀라노에 도착하여 밤중에 중요한 몇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둠 속에 우뚝 솟은 밀라노 두오모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걸림돌은 우리가 방문한 유적이나 중요한 건물 대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한 점입니다.
그래도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만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칼라 광장의 중심에 서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이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았지요. 르네상스의 중심에 서 있던 그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답니다. 더 많은 예술적인 작품을 창조해내기 위해 고민하였을까요.
밀라노의 근교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하여 베니스로 왔습니다. 요즘은 다 ‘베네치아’라고 통용되지만, 여기에서 굳이 ‘베니스’라고 고집하는 것은 이미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입력된 이 도시의 이름이 베니스이기 때문입니다.
베니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만났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입니다. 약속대로 살 한 근만 베어내고 피를 절대로 흘려서는 안 된다는 명판결에 손뼉을 친 희곡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개성상인처럼 베니스의 상인들도 유능한 상술로 부를 누렸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배를 타고 들어오는 중에 바라보이는 도시는 아름답습니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풍경들입니다. 오래되었지만 정갈한 집들로 고풍스럽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면 미로처럼 나 있는 좁은 골목길과 묵어서 초록빛으로 변한 좁은 수로가 냄새를 풍기지만 그것도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니 정겨움으로 다가옵니다.
외부의 침략을 피하여 섬으로 이주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끈질긴 삶의 의지를 가진 민족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조건에 베니스의 상업이 발전한 것은 수로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찌감치 도시 국가로 번성하여 배를 타고 나가서 행하는 무역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겠지요.
옛날부터 선박을 가지고 여러 나라와 교역을 했던 나라가 식민지도 많았고, 산업의 발달이 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목축도 할 수 없었던 베니스에서는 쉽게 내다 팔 수 있는 수공예가 발달했나 봅니다. 유리공예는 그 기술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극도의 비밀스러운 환경에서 이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상점에 진열된 공예품들은 아름답고 정교해서 꼭 가지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듭니다.
베니스에 가게 되면 곤돌라를 타고 수로를 누비겠다, 소리 높여서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하며 노래를 불러보겠다, 등등의 낭만적인 기대는 간 곳이 없어졌습니다.
그저 이곳에 와서 산마르코 광장을 날아다니는 관광객만큼이나 많은 비둘기를 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여행자의 고단함 때문인지, 그 많은 비둘기의 집이 어딘지 궁금해집니다. 많은 연주자가 모여 앉아 직접 연주하는 광장의 카페입니다. 그곳에 앉아 볼 여유도 없이 베니스 비엔날레를 구경하러 다시 배를 탔습니다.
이번 여행은 너무 아쉽다는 생각만 듭니다. 방문이 평생에 한 번뿐일 듯한 곳에 와서도 그저 시간에 쫓겨서 몰려다니기만 하고, 제대로 보고 싶었던 것은 어이없이 지나쳐 버리면서 몸만 피곤합니다. 그리고 워낙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일행이 되어 각자의 주장이 뚜렷합니다. 지나치게 긴장이 된 상태에서 대하는 사물들이라 그 이면의 것을 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 시선이 좁아집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얻는 것은 즐거움이기에 피곤함에 지치면서 많은 것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솔직히 지금의 심정을 무엇에 비유한다면,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갑자기 만나게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얼굴만 붉히고 있는 꼴입니다.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헤어져 버릴 것만 같아서 제자리에 서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쉬운 마음을 정리하여 가까운 사람들에게 줄 여행 선물을 이곳 베니스에서 사기로 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어서 가족들에게 좋은 기념이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혹시 앞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곳 베니스를 절대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 무라노섬의 유리공예 장인들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취사 중 소다가 사막의 모래와 섞여 고열에서 무색투명한 새로운 소재(유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베네치아는 해상왕국으로서 13세기경 지중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동방무역을 독점하여 거대한 부를 쌓았다. 그 무역품의 하나가 이슬람 유리였다. 이슬람의 화려한 에나멜 채색 유리그릇이나 부조 커트 안경 등은 유럽인이 탐내는 물건이었고 베네치아는 그것을 독점적으로 수입하여 공급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는 바로 그 1330년경 정치적인 대혼란이 일어나 시리아 해안의 유리 산지는 일시적이긴 하였으나 궤멸 상태에 빠졌다. 그 때문에 베네치아는 귀중한 수입원이었던 이슬람 유리를 수입할 수 없게 되었다.
베네치아 당국은 아마도 그 같은 사태를 훨씬 이전에 예상하여 일찍이 그에 대처하려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었다. 즉 동방 유리의 수입 대신 자급생산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1291년에는 유리 산업의 보호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모든 유리기술자를 베네치아 앞바다의 작은 섬 무라노(Murano)에 강제 이주시켰다. 거기에서 장인들의 생활을 보증해줌과 아울러 섬 밖에 나가는 것을 금지한 규율을 지키게 하여 유리 기술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았다.
베네치아의 유리 기술은 금방 그 수준을 높여 15세기에는 아무리 오랜 전통을 가진 이슬람 유리의 중심지라고 해도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정도의 명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궁전에 베네치아의 테이블 글라스를 갖추고 천정에는 샹들리에, 벽면에는 거울을 붙이는 것이 유행했다. 당시 베네치아가 독점하는 이익이 얼마나 컸는지, 명화와 같은 크기의 거울은 그림의 두 배, 세 배 되는 고가로 팔렸다.
그와 같은 낭비를 각국의 군주가 말없이 보고 지나칠 리가 없었다. 각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유리 산업을 일으키는 계획이 세워졌고, 무라노섬의 유리 장인을 빼내는 일도 더 심해졌다. 베네치아에서는 기술의 비밀유지를 위해 섬 밖으로 도망치는 자는 극형에 처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으나, 비밀리에 제시되는 신분 보장과 엄청난 대우에 이끌려 섬으로부터의 도망을 계획하는 자도 많았다.
------------------
류인혜
1984년 『한국수필』 봄호 수필 「우물」로 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사무국장, 한국수필작가회 제9대 회장 역임.
현) 한국수필작가회 고문,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계간문예 기획위원, 한국식물연구회 이사.
작품집: 수필집 『수필이 보인다』, 수필선집 『불러보고 싶은 이름』 외 9권
수상: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제23회 펜문학상, 제11회 한국문협작가상,
제9회 송헌수필문학상, 제8회 한국문학인상
첫댓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과 베니스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만났습니다 베니스의 상인도 대했다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