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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강 사도행전 개관 안용성 목사 그루터기 교회
26.03.14(토)
안녕하세요. 그루터기 교회 담임목사 안용성입니다. 오늘부터 사도행전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목적은 두 가지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하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물론 두 가지 목적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선별해서 그 의미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배열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지요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사도행전이 그 일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함께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먼저 오늘 강의의 포인트입니다.
먼저 오늘은 사도행전이 어떤 책인지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이름을 잘 살펴보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또 알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사도행전을 복음서와의 관계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서 바로 다음에 사도행전이 나오지요 복음서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들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특별히 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사도행전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죠.
그래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오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번째 사도행전 전체 내용을 한번 개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의 내용을 먼저 개괄하는 이유는 우리가 나무를 보기에 앞서서 숲을 한번 보는 거죠.
숲의 구조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하나의 나무를 살펴보게 되면 그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전체의 구조 속에서 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전체 구조와 함께 전체 내용을 한번 개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어떤 책인가
사도들의 행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책입니다. 사도행전이라는 우리말 이름은요 한자어를 그대로 옮겨 쓴 것인데요.
여기에는 영어 이름이나 헬라어 이름에는 없는 내용이 한 가지 더 들어가 있습니다. 영어 이름이나 헬라어 이름은 사도들의 행적인데 사도들의 행적에다가 전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요.
이 전이라는 말은 이 책의 문학 장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전자 들어가는 문학 작품들이 있습니다.
심청전 춘향전 토끼전 홍길동전 이런 문학 작품들이 있죠. 이런 작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게 뭘까요? 그것은 모두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심청전 심청의 이야기 홍길동 전 홍길동의 이야기라는 문학 장르입니다.
조금 전문적인 용어를 쓰자면 서사 영어로는 내러티브라는 문학 장르라는 거죠. 사도행전이란 무엇이냐하면 사도들의 행적을 서사라는 양식을 동원하여 담아놓은 작품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강의를 시작하면서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역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역사도 서사 문학 장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 우리는 이 사도행전을 복음서와 함께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예수의 이야기인데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이야기죠 아 이렇게 두 가지가 이제 이야기로 연결이 되는데요. 이야기를 읽는 방식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모든 이야기에는 줄거리가 있거든요.
사도행전에도 줄거리가 있습니다. 퓰롯이라고 하죠.
사도행전을 흘러가는 그 중심 줄거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사도행전을 읽어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도행전에 앞서 있는 복음서를 우리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두 이야기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의 이야기에 등장했었죠. 예 그래서 복음서는 사도 행전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시는 것은 곧 사도 행전의 이야기를 미리 준비시키는 것이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은 그냥 제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께서 사도행전의 이야기 속에 들어와서 활동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또 예수의 자리에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두 이야기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나가면서 아 이 이야기가 또 복음서의 예수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함께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먼저 사도행전의 맨 앞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3절에 나오는 서문인데요. 서문을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저자가 먼저 쓴 글이 있다고 하네요. 그 먼저 쓴 글이 뭘까요?
그 먼저 쓴 글의 내용은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 예수님과 사역과 말씀을 담은 어떤 글을 먼저 썼다는 겁니다.
그 글이 무슨 글일까요?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담아 놓은 글 그게 뭘까요? 그게 바로 복음서죠 아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행전을 쓰기에 앞서서 먼저 복음서를 썼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어떤 복음서일까요? 신약성경에는 복음서가 4권만 들어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복음서들이 기록되었어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외에도 무슨 뭐 베드로의 복음서 유다의 복음서 도마의 복음서 마리아의 복음서를 비롯해 가지고 수많은 복음서들이 쓰여졌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일 텐데요.
그 가운데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는 사복음서이니까. 사복음서 가운데 혹시 사도행전의 저자가 쓴 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볼 수 있겠죠.
그렇게 읽어보다 보면 어 사도행전의 저자가 쓴 복음서인 것 같다 하는 중요한 단서를 하나 주는 책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면은요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여 하는 말로 시작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누가복음은 쭉 내용이 진행되어 나가다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하는 말이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아 누가복음도 동일한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써보낸 책이네요. 어 그러면 누가복음이 사도행전의 저자가 쓴 그 복음서가 아닐까 하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비교해 보면 두 책에는 많은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데오빌로라는 동일 수신자에게 보낸 책이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리고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면요 두 책에 사용되는 어휘와 문체를 포함해서 이런 문학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닮아 있어요.
우리가 보통 이제 일반적으로도 어떤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어 이거 누가 쓴 글인 것 같다 하고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 여기에 사용되는 어휘나 문체들 이런 것들을 보면 이제 글을 쓴 사람의 체취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두 책의 어휘와 문제가 상 문체가 상당히 유사합니다.
세 번째로 두 책에 담겨있는 신학 사상이 유사합니다. 통일된 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적인 구조가 또 유사합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누가행전은 동일 저자의 작품이다. 하는 것을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인정합니다. 여기 누가행전이라는 용어가 나왔네요.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횡전을 합쳐서 영어로는 룩 데쉬하고 액츠 우리말로 누가행전 보통 이렇게 부릅니다.
데오빌러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냥 성경에 데오빌로 각하라는 이름만 나오니까요?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인제 알 수 있는 만큼 추론을 해보자면 이 각하라는 말은 그 당시에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데오빌로 각하라는 말은 로마의 상당한 수준에 있었던 관리가 아닐까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데요. 근데 정말 실존 인물인지 누가복음을 쓸 때 정말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쓴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을 위해 썼더라도 이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본명인지 아니면 가명인지 뭐 이런 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론들이 있어요.
우리가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책을 쓰면서 서문에 그 책을 어떤 사람에게 헌정하는 일들은 많이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도 우리가 책을 쓸 때 보면 이 책을 누구에게 바칩니다. 하고 헌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헌정을 한 것이고요.
이 경우에 아마도 이 데오빌로라는 사람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술을 후원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경비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시간도 상당히 많이 들고요. 요즘처럼 컴퓨터로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모바일 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책을 쓰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고 그럼 그 시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하니까 그 기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비용도 있어야 되고 또 책을 기록하는 그 자체 자체에도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고 돈이 있어야 된단 말이죠.
본인이 돈이 있든지 아니면 누가 돈을 후원해 주든지 해야지 책을 쓸 수가 있는 건데 아마도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누가복음의 저술을 후원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추론하기도 하고요.
또 이름이 재미있는데요. 헬라오로세오필루스라는 이름인데요. 이 이름은 하나님을 뜻하는 데오스와 친구를 뜻하는 필로스를 합친 말입니다. 하나님의 친구 이런 뜻이에요. 이 이름이 심상치 않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 이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거다 아니면 누가행전이 목표로 삼고 있는 어떤 특정 독자들의 그룹을 가리키는 예 그런 이름이다. 하고 추론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고요.
데오빌로는 이 이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점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행전의 언어와 신학의 통일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사용되는 헬라어는 신약성경 저자들 가운데서도 매우 특출난 헬라어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가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헬라어를 모국어로 한 사람들이 쓴 것이 아니라 헬라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들이 쓴 책이다. 이렇게 판단되거든요.
그런데 누가행전 만큼은 아 이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헬라어를 모국어로 배운 사람이다. 이렇게 성서학자들이 판단을 합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책만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두 책의 특징이 또 아주 눈에 띄게 드러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이제 공부해 가면서 사실 어휘와 문체 신학 이런 내용은 사실 너무 어려워서 우리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만 실제로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지만 이 구조에 대해서는 우리가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직접 우리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여러가지 가운데 두 가지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한 가지는 두 책이 모두 성령으로 시작된다는 겁니다.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지요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둘 다 성령으로 시작돼서 성령의 이야기로 이끌려져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고요.
뒷부분을 보면은요 두 책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수난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은요 누가복음 9장 51절부터 19장 44절까지가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요. 여행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에는 붙잡히시고 또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하는 수난 이야기가 이어지죠 사도행전도 비슷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은요
사도행전 13장부터 21절까지 바울의 전도 여행 이야기가 길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붙잡히고 투옥당하고 수난을 당하게 되지요 네 이런 공통점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사도행전 1~2강 사도행전 개관
자 그럼 이제 사도행전의 내용을 한번 간략하게 개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요 맨 앞에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이 요약되어 있어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이 사도행전 전체의 요약입니다.
여러분들 사도행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라 그러면 뭐라고 요약하실 수 있겠어요.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이야기가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사도행전 내용 가운데 혹시 요약에 안 들어가는 내용 생각나는 거 있습니까? 1장부터 28장까지가 모든 내용이 여기 다 들어갑니다. 기가 막히게 요약해 놓은 거예요.
자 이 내용을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겠는데요.
사도행전 전체를 1부와 2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제1부는 1장부터 12장까지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제1부 가운데 전반부는 예루살렘 안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1부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8장부터 12장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1부 전체는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요.
제2부는 사도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이 3차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가운데 제1차 전도 여행이 끝난 후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회의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수난당한 후에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이야기가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을 읽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조금만 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부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를 조금만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제1부 가운데 전반부는 예루살렘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1장에는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요.
2장에선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에 이은 베드로의 설교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3 4 5장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가운데 수많은 박해가 이루어집니다.
그 박해의 주역은 산헤드린입니다.
성경에서 공회 또는 의회라고 기록되는데요. 유대인들의 자치의회입니다. 최고기관입니다.
그 산헤드린의 박해가 이어지지만 그 박해를 견디면서 꿋꿋하게 교회가 서가는 모습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박해를 잘 이겨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 갈등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교회내에 특히 히브리파와 헬라파라고 부르는 두 그룹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6장 초반부에 기록이 되고요.
그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인 스데반이 순교하게 되는 이야기가 또 제1부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제1부의 후반부에는 예루살렘에 일어난 박해로 말미암아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순교를 기화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 박해가 일어나거든요.
그 박해로 말미암아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흩어짐을 통해서 비로소 이방인 전도가 시작이 됩니다.
8장 맨 앞 부분에는 예루살렘의 대 박해로 흩어지는 그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요. 그 흩어진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갑니다.
예 8장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요. 이쪽으로 흩어진 사람들 이쪽으로 흩어진 사람들 이쪽으로 흩어진 사람들 사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가운데 빌립이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고 또 최초의 이방인 전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디오피아의 네시를 전도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요.
그 다음에는 사울이 회심하고 전도자가 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 다음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을 전도하는 이야기
그 다음에는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는 이야기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교회의 중심 교회거든요.
유대인 교회가 교회의 중심이 예루살렘이라면 이방인 교회의 중심이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12장에는 다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게 되고 그 박해를 주로 주도했던 헤롯 성경에는 헤롯이라고 나옵니다만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가 제 2부의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2부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전반부는요 바울의 전도 여행 이야기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1차 전도여행 제1차 전도 여행의 결과 수많은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율법과 할례를 요구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열립니다.
그에 이은 제2차 전도 여행과 제3차 전도 여행 그리고 모든 여행을 마치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2부의 후반부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이 붙잡혀서 투옥되고 또 가이사랴로 이송돼서 또 다시 투옥되고 심문당하고 그 가운데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하게 되죠.
그래서 그 항소가 받아들여져서 로마로 후송되고 마지막으로 로마에 구금된 채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로 사도행전의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지요
이 전체를 사도행전 1장 8절로 요약할 수 있는 겁니다.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요약을 중심으로 사도행전을 다시 살펴보자면 여기서 크게 세 가지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행전은 성령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로 말미암아 사도 행전의 모든 이야기들이 이어져 나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사도 행전을 읽을 때 한 가지 우리가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사도 행전이 어떻게 성령의 이야기가 되는가 하는 관점으로 우리가 사도 행전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산되어 나가는 지리적인 구조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을 때 이 사도행전의 지리적인 구조를 잘 관찰하면 거기에서 또 재미있는 또 의미 있는 포인트들을 많이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그 결과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하나는 무엇을 증언하는 증인들이 되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어떤 모습으로 증인이 되는가 하는 겁니다. 사도행진의 제자들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둘로 요약하자면 한편으로는 성령께서 어떻게 사도행전의 모든 이야기들을 이끌어 나가시는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치고 예수의 길을 성령의 길을 하나님의 길을 따라 나가는가 하는 두 관점으로 사도행전 전체를 읽어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 강의의 제목을 성령의 이끄심과 십자가 제자도 이렇게 잡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사도행전을 계속해서 읽어나가면서 어떻게 성령께서 이끄시는가 그리고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따라가는가 이 두 가지 관점으로 사도행전을 관찰하며 읽어나갈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의 적용은 단지 오늘 하루만을 위한 적용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사도행전을 계속해서 공부해 나가면서 유념해야 될 점들을 한번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목표가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므로 나의 이야기가 성령의 이야기가 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공부하시면서 이 질문을 염두에 두시고 어떻게 하면 나의 이야기도 성령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어떤 기대를 가질 것이냐 하는 문제예요. 이것은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쯤인데요.
사도행전에는 교회가 정말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아 우리 교회도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갔으면 참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사도행전을 읽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읽어왔습니다.
예 그러나 이제부터는 기대를 좀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국 교회 성장이 중지되지 않았습니까?
물론 계속되는 성장을 우리가 바랄 수 있습니다만 이 시점에는 우리가 교회 성장이라는 관점보다는 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사도행전은 진정교회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보여주거든요. 바른 교회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사도행전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나가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우리도 사도행전교회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물론 좋지만 그것보다 더 앞서서 교회가 무엇일까?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또 그런 기대를 가지고 사도행전을 함께 읽어나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사도행전을 공부할 수 있을까? 사도행전에 보면 베뢰아 교회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 이하에 나오는데요.
우리가 베뢰아 사람들로부터 아주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을 보면은요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자 여러분 강의를 들으면서 무조건 아멘하지 마시구요.
강의를 들은 다음에 정말 그런가 하고 사도행전을 한번 읽어보실 수 있기를 바래요. 사도행전을 읽어보면서 아 그 내용이 정말 그런가 하고 확인해 보실 수 있기를 바라고요.
또 나아가서 이 내용이 정말 맞나 예 오늘 사도행전 강사가 거짓말한 건가 뭐 이런 질문만 던지지 마시고 예 나의 삶이 정말 그러한가 사도행전이 이렇게 말하는데 나의 삶도 그러한가 하고 물으면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함께 읽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강의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은요, 아까 사도 행전 1장 8절이 사도 행전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데
거기에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말씀드렸죠
첫 번째는 어떻게 사도행전이 성령의 이야기가 되는가 둘째는 어떻게 지리적인 어떤 지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셋째 제자들이 어떤 복음을 증언하며 또 어떤 제자들이 되는가 이 세 가지 포인트에 따라서 앞으로의 세 강의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다음 강의는 성령께서 사도행전 전체의 이야기 어떻게 이끌고 나가시는가 하는 이 포인트를 중심으로 다음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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