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공원
황성공원 맥문동꽃밭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스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서 잠 못 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1928년 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으로 순회극단 ‘연극사’가 개성공연을 하면서 불러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던 노래다.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를 찾아 부른 노래이지만 천년왕국 신라의 터전에서 더 애절하게 불려 조선총독부는 이의 유행을 방지하기 위해 금지시켰으나 지금도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경주는 신라 천년황성의 옛터이다. 천년 또 천년이 흘렀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경주 곳곳에 남아 노래를 부르게 한다. 월성, 동궁과 월지,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이 대표적인 황성옛터로 찾는 발길이 넘쳐난다. 이어 황성공원도 이름에서부터 신라의 고전을 애잔하게 그립게 한다.
황성공원은 지금 경주시민의 공원이자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민들의 쉼터로 발전하고 있다. 신라시대 고성숲으로 불리며 사냥터이자 화랑들의 심신수련의 장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삼국유사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들에서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지금 황성공원은 아름다운 숲, 운동장, 문학비와 각종 기념비, 동상 등으로 꾸며져 백일장, 축구대회, 태권도대회, 테니스대회, 궁도대회, 뮤직페스티벌 등등 다양한 전국규모의 행사와 축제가 벌어지는 힐링의 중심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숲속의 산책로는 경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 기능을 넘어 스포츠인들의 훈련,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도 크게 활용되고 있다.
◆황성공원의 역사
시계탑
경주시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도시이다. 신라시대 초창기로부터 2천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도시의 형태와 문화는 크게 변화했다. 경주지역 전체에 신라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조금씩 보존되고 있다. 황성공원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형태는 신라시대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간직한 곳이라 짐작된다. 나무가 우거진 숲이기 때문이다. 숲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새로움을 추구해 현대적 문화의 옷을 껴입고 있는 곳이다.
황성공원은 경주의 중심에 있다. 토함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덕동댐, 보문호를 지나 황성공원 남쪽을 감싸 흐르고, 서쪽 경계도 토함산에서 발원한 남천이 형산강으로 합해 포항 바다로 이르는 강줄기가 현곡과 다리로 잇게 한다. 동쪽과 북쪽이 동천동, 황성동으로 연결되는 경주시 중심으로,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허브 기능을 한다.
황성공원은 경주시 황성동 산1-1번지 약 90만m² 부지에 소나무, 참나무 등 60여종의 나무 1만2천여 그루가 심어져 사철 푸른 동산이다. 신라시대 고성숲으로 불렸다. 사냥터이자 화랑들이 심신단련을 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시민들이 심신단련을 하고, 활 시위를 당기고, 백일장을 하는 등으로 그 기능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황성공원 동쪽 입구에는 1970년대에 세워진 시계탑이 있다. 경주사람들의 “황성공원 시계탑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넓은 주차장을 마련하고, 경주시립도서관이 위치해 경주시민들의 정서를 함양하는 창고가 되기도 한다. 황성동주민센터가 옮겨가고 노인회관과 어린이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등의 고목들이 울울창창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만들고, 사이사이 산책로가 나있다. 곳곳에 허리비틀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하는 철봉 등의 운동기구가 설치돼 시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허파가 되고 있다. 산책로 곳곳에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들도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이제 막 보라색으로 피어나는 맥문동은 최근에 자리 잡은 새로운 볼거리다.
새로운 경주의 천년을 들여다볼 타임캡슐공원, 예술의 전당, 청소년수련관, 경주경찰서 황성지구대, 실내체육관과 종합운동장, 화원 등의 시설이 하나씩 추가되면서 경주시민은 물론 세계인들의 축제장이자 힐링센터로 리모델링되고 있는 곳이다.
◆호원사지
경주는 예부터 숲의 도시였다. 황성공원도 고성숲으로 불리던 곳이다. 고성숲에는 신라시대 호랑이와 사랑을 나누어 벼슬을 얻은 김현 이야기, 진평왕에게 충언으로 간하다 죽어서도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하는 신하 김후직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신라시대 김현과 호랑이가 사랑을 나누어 은혜를 주고받은 호원사 전설은 황성공원을 무대로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신라 원성왕 때 김현이라는 청년이 밤이 깊도록 흥륜사 전탑을 돌고 있는데 한 처녀가 염불을 외며 따라 돌다가 서로 눈길이 맞아 정을 통했다. 처녀가 가는 길을 김현이 따라가니 처녀는 “호랑이인 오라버니들의 죄악은 하늘이 이미 미워해 온 가족이 당할 재앙을 제가 홀로 당하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 손에 죽는 것보다 낭군의 칼날에 죽어 은덕에 보답코자 합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내일 시내로 들어가 사람을 해칠 터이나 나라사람들이 나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며 김현이 공을 세울 방도를 알려주었다.
다음날 호랑이가 난동을 부리자 원성왕이 “호랑이를 잡는 자에게 이급의 벼슬을 주리라”고 방을 내렸다. 김현이 칼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니 호랑이가 낭자로 변하여 김현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넘어지자 다시 호랑이로 변했다.
김현은 벼슬에 올라 서천가에 절을 지어 ‘호원사’라 하고 호랑이를 저승길로 인도하고 자신을 입신양명의 길로 인도한 호랑이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황성공원에는 지금도 호원사 절터로 짐작되는 곳에 탑과 절에 쓰였던 석재들이 흩어져 있어 전설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김현이 지었다는 호원사 절터의 유물로 추정되는 석재가 공원내 민가의 장독대로 쓰이고 있다. 더러는 축대와 기초석으로도 쓰이고 있다. 호원사를 새로 짓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석탑이라도 복원해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하지만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또 황성공원은 신라시대 진평왕과 충신 김후직에 대한 전설이 지금까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성격이 호방해 당시 황성공원 일대에서 사냥을 즐겼다. 병부령 김후직이 정사를 돌볼 것을 간청했지만 왕이 받아들이지 않아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후직이 나라를 걱정하다 죽음에 이르러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임금이 사냥을 다니는 길가에 묻어라”고 유언해 황성공원에 묻혔다.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무덤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물으니 신하가 “김후직의 무덤에서 나는 소리”라며 유언까지 전해 올렸다. 왕은 눈물로 뉘우치고 “살아서 충신은 죽어서도 충신”이라며 사냥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풍물지리지에 전한다.
◆체육시설과 기념물들
황성공원은 신라시대부터 사냥터, 화랑들의 훈련장 등으로 시민과 함께 호흡해온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도 그 기능은 이어지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황성공원에는 경주종합운동장과 경주실내체육관이 가운데 횡단도로를 사이에 두고 우뚝 서있다. 경주시민체육대회를 비롯해 한국실업축구대회, 세계태권도대회, 영호남태권도대회, 청소년어울림마당 등의 크고 작은 대회와 행사들이 열린다.
에어로빅광장은 시민들의 건강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생활체육시설이다. 씨름장이 별도로 규모있게 지어졌고, 국제대회도 유치할 수 있는 궁도장으로 호림정이 황성공원 가운데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축구공원은 알천, 북천강변에 1~6구장까지 천연잔디와 인조잔디구장으로 시설돼 화랑대기전국청소년축구대회를 비롯 많은 대회를 유치하고 있다. 나이트시설이 있어 생활체육인들도 야간에 축구와 풋살경기를 즐기고 있어 시민들의 건강을 견인하고 있다. 풋살구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롤러스케이트장도 황성공원을 구성하는 시설이다.
경주종합운동장에는 경주시체육회와 가맹단체들의 사무실, 환경단체사무실, 황성공원을 관리하는 부서가 자리잡고 있다. 운동장에서는 체육경기는 물론 어린이날 행사가 매년 열려 어린이들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청소년수련관에서는 연중 청소년들의 끼를 키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들의 기량을 연마하게 한다. 시낭송대회를 포함한 각종 세미나도 유치하고 있다.
경주예술의 전당은 서쪽 경계지역에 우뚝 서 경주시민들의 문화예술을 적극 지원하는 보물이 되고 있다. 전시, 공연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경주시민들의 문화예술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삶의 질을 한층 윤기나게 하는 인프라로 시민들에게 인기다.
◆동상과 기념비
월남전,6.25전쟁 참전기념비
김유신장군 동상
최시형동상
충혼탑
이경록시비
황성공원에는 문학비와 시비, 다양한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져 종합적인 공원의 기능을 한다.
세계적인 문인의 반열에 오른 박목월, 김동리 선생의 문학적 토양도 이곳에서 익어갔다. 이를 기념한 목월의 송아지 노래비, 동리 김시종 선생 문학동산 기념 현대문학 표징이 당연히 자리하고 있다. 목양 오세재 선생 문학비, 이경록 시비 등도 황성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경주문인협회가 매년 목월백일장을 열어 전국에서 청소년을 비롯한 대학, 일반 문인들이 몰려들어 문학의 꿈을 키운다.
임란의사 추모비, 박무의공비, 무공수훈자전공비, 6.25전쟁 참가 기념비, 월남전참가 기념비도 역사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도 임란의사 기념 백일장을 비롯한 백일장과 사생대회, 기념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 근대 사상적 보루로 손꼽히는 동학의 계보를 이은 최시형 선생 동상이 있고,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김유신 장군 동상은 유일하게 황성공원에서 동산을 이루는 곳 정상에 말을 몰아가는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충혼탑이 황성공원 숲 가운데 깊숙한 곳에 세워져 새소리가 이어지고, 다람쥐, 어디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은 인디언 추장새 후투티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전문사진작가들의 카메라가 황성공원에 삼발이를 고정하고 있는 장면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스포츠, 문학과 예술이 자연과 함께 숨 쉬는 황성공원은 경주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경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힐링공간으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보물섬과 같은 곳이다.
첫댓글 황성공원은 신라시대부터 시민들 가까운 곳에서 허파기능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