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9일 목요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김미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가 정직하다, 훌륭하다는 뜻이다. 나는 요즘 이 속담이 현실적으로 나에게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1년은 취업을 위해 탐색을 하고 준비하기로 아들과 약속했다. '알아서 준비하고 있겠지' 자다가 화장실을 가다보면 아들 방에서 새벽에도 불빛이 새어나온다. 내가 일어날 즈음 그제야 불빛이 꺼진다.
도대체 뭘할까? 책을 읽을까? 영어공부를 하나? 인터넷으로 정부를 검색하나?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니 안심하지만 매일 궁금하다. 뭘 했냐고 먼저 묻지 않고 그냥, 잘 잤냐? 반갑게 인사하고 아들이 다음 말을 꺼내기 전에는 아무말을 안한다. 어쩌다 맛난 반찬이 있을 때 점심 먹자고 꼬신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밥맛이 없어요. 알아서 할께요' 그 말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하루에 한번 저녁에 남편과 함께 식탁에 앉는다. 물론 오후에는 자전거 타고 운동도 가고 쇼핑도 하고 책을 하나 들고 근처 카페에 가기도 한다. 특별히 내가 묻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듯 거의 왼벽하게 수행해 준다. 그래서 나는 든든하고 자랑스런 아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가끔 아들이 내 곁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혼자서도 너끈히 살아가는 걸 희망하지만, 요즘 그 일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특별히 스펙이 많다거나, 사회적으로 넓은 관계망을 갖었다거나, 내가 이어줄 작은 사업체가 있다거나~~ 막연하게만 지내다보니 갑갑하고 속이 상하기까지 했다. 작년에 딱 한번 교육행정직 시험을 본 적이 있다. 한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행정직 과목에서 미끄러졌다. 다른 사람들은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었으나, 단숨에 그 시험을 접어 버리고 공무원을 줄인다는 걸 얘기하며 또 하는 말, '제가 알아서 할께요'
작년 12월 하순에 LH 청년보금자리 주택을 꺼냈다. 이미 많은 정보로 들어갈 아파트 분양시기와 입주 조건을 검색해 두었다. 계약하러 갈 날짜도 받아놓았다는 것이다. 장소는 인천. 국비지원 프로그램이 많으니 한 육개월에서 일년 쯤 배우고 취업자리도 알아본다고 하였다. 경력을 쌓아서 여수나 순천으로 내려온디고 하였다. 그래서 직접 가서 방도 정하고 3월 입주만 하면되게 일을 처리했다. 정말 황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겆도 안 하고 세월만 죽였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휴~ 다행이다. 하지만 무슨 일? 폴리텍대학 같은 기술일까, 궁금하기만 하였다. 묻기도 어색한 게 '알아서 하겠다는
말로 대화의 끝을 알리니 그렇게 기다릴 수밖에~
사실 아들의 능력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설득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대학때 부전공이었던 심리학을 살려 상담 일을 하였으면 하는 게 우리 부부의 꿈이었다. 심리학 대학원이나 못해도 인터넷 강의로 상담자격증을 따서 취직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말을 그제까지 했다. 퇴근을 한 남편이 밥을 먹으면서, 고깝게 듣지 말아라, 아빠의 생각인데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건지 아들의 생각을 물었다. 아무말도 안하니 다시 남편이, 순천대학에 사진학과가 있으니 이제라도 진학을 하는 게 어떠니, 나도 스튜디오 겸 카페를 하면 좋을 거다, 음식을 잘하니 우선 조리사자격증을 따는 게 어떠냐고 여러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남편이 자신이 젎었을 때 겪어야 했던 일들을 장황하게 내밀었고, 아들은 호응하먼서 적극적으로 응대했다. 말이 길어진다 싶었는지 아들이 작정한 듯 얘기했다.
" 저는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요. 목수가 되는 거예요".
"뭐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들이 집에 오고 내가 집, 건축에 대한 최신 정보를 많이 들었던 걸 상기했다. EBS 프로그램 중에 건축에 대한 게 있다. 한욱, 목조 건축, 콘크리트 주택, 상가, 전원주택, 조립식 주택, 외국 주택을 정해서 터잡고 건물을 올리고 내부 인테리어까지 세세히 알려준다. 매 시간 유명한 건축가들이 등장하여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고취시킨다. 나도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마당도 넓고 밖이 내다보이는 서재에서 음악을 들으며 착을 읽는 생활, 글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주위 뒷산 오솔길을 천천히 산책하는 나!
건축은 예술이다. 아들이 바로 건축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다닐 때였다. 나무로 만든 네모 상자를 만들어 달라고 보챘다. 대패질하는 걸 보여달라면서~ 아이고~ 나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위 목공소를 검색했다. 2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목공소가 있었다. 아스팔트가 끝나는 언덕배기에 아주 작은 목공소, 목수아저씨는 아들의 요구대로 대패질하고 사포로 우둘투둘한 겉을 매끄럽게 하여 네모 상자를 만들어 주었다. 어렸을 때 한 체험 중에 그게 제일 좋았을까, 그 상자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들 방에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켰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사라졌지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들의 손 작업은 중학교 때 방과후 수업으로 이어졌다. 도자기 수업, 한지 공예에 꽂혀 지금도 작품이 남아있다. 하루 중 내가가장 많이 생활하는 식탁, 그 위에 사각 티슈를 넣는 통, 서재의 책장 틈에 네모자기 작은 상자, 조그마한 다용도 접시, 꽃 한 송이가 들어갈 꽃병은 두어 개가 나무막대기 향수를 꽂는데 쓰고 있다. 최근에는 작년 내 생일 선물로 5단 나무묵주를 만들어 주었다.
부평에 장인 목수가 있어서 그곳에 다니고 싶다고 한다. 집을 짓는 목수가 최종 목표지만 작은 소품도 가능하다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피럭했다.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는 교육육해정직 공무원이 되겠다, 스마트팜 농부가 되겠다, 병원 업무과 직원이 되겠다, 상담클리닉에서 고객 접수와 수납을 책임지겠다, 수제맥주 제조를 해보겠다며 술집에서 직원을 모집는데 응모를 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고민 목록을 나열 하였다. 그때마다 서두르지 말자고 나를 다둑였다. 확신을 가진 생각이 야닌 것 같아서, 생각이 자주 바뀔 수도 있어서~
아들의 생각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고, 남편은 벌써 나주채반 무형문화재 장인을 소개했다. 친구의 아버지인데 눈빛이 맑고 꼿꼿하고 바른 외향에서 근엄함을 느켰다는 것, 집에 가면 나무와 다양한 공구, 예쁜 상들이 즐비했다는 추억을 마치 지금 상황인 듯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들도 사진 동아리 친구들이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적은 임금받으면서 일을 배우고 있다. 나전칠기를 연습하며 예술가를 꿈꾸는 친구도 있다고 밥자리를 풍성하게 했다. 지금 그들은 수제 맥주를 팔면서 커피도 함께 취급하는 카페에 갔다. 언제 올지는 모른다.
이이엄 세컨하우스를 지어본 남편이 전원주택을 지어보고 싶다며 자주 얘기 하는데, 이젠 그 꿈을 아들이 이루어 줄 것 같다. 그게 나의 꿈이기도 하다.
떡잎이 비와 바람, 천둥도 다 이겨내고 크고 실한 잎을 피워내는 나무가 되기를 열렬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