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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12.<불로장생을 꿈 꾼 사람들-도석인물화전(2)>:간송미술관 전시회
무진당 추천 0 조회 697 09.11.08 12:1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불로장생을 꿈 꾼 사람들-도석인물화전(2)>:간송미술관 전시회

 

                            김건종, <호리건곤:잔 속 하늘과 땅>, 종이에 담채, 39.0×30.5cm, 간송미술관

 

-불교의 신과 신선들

불교의 인물화는 절에서 불상 뒤에 그려진 정통적인 불화가 아닌 선종(禪宗)계통의 인물 등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선종의 조사인 달마대사를 비롯하여 포대화상, 한산과 습득, 관음보살과 나한상입니다. 물론 각 인물의 신분을 입증할 수 있는 지물과 함께 그려집니다.

평생동안 지팡이에 자루를 매달고 다니며 중생이 원하는 물건을 내주었던 포대화상. 스님도 아니면서 속인도 아닌 비승비속의 한산, 습득의 모습도 볼만합니다. 더불어 스님이 좌선하고 염불하고 탁발하는 틈틈이 장기를 두고 이를 잡는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 유교, 불교, 도교의 세 종교를 화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삼소도(三笑圖)’도 도석인물화의 소재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삼소도’에는 유불선의 대표격인 공자, 노자, 석가모니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웃는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김건종의 <호리건곤>도 같은 소재를 그린 그림입니다. 높은 경지에 오른 성인이나 신선들은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기 위해 핏대 올리며 싸우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싸움이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맞붙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옳다는 생각에 핏대 오를 때마다 한번씩 <삼소도>를 떠올려봐야겠습니다.

 

① 달마도해: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다

불교 인물화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 ‘달마’입니다. <달마도>는 일필휘지로 그린 김명국의 작품이 유명한데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소림굴에서 면벽수행하고 있는 달마와, 팔을 끊어 자신의 구도심을 보인 혜가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 <혜가단비도>도 화가들이 즐겨 그린 달마 관련 그림입니다. 일본의 셋슈 토오요오의 작품이 볼 만합니다.

이번 간송전에서는 축연의 <달마대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금강산 유점사 화승이었던 축연이 그린 <달마대사>는 아무런 배경 없이 댓잎자리 위에 앉아 수행하는 달마의 모습이 간결하게 그려졌습니다.

 

                                    축연, <달마대사>, 비단에 수묵, 28.5×33.8cm, 간송미술관

 

달마대사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으나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습니다. 520년경에 전법을 위해 중국 양나라로 왔으나 공덕을 과시하려는 무제를 피해 숭산 소림사에 건너가 9년 동안 면벽수도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후 달마대사의 선법은 2대 혜가스님한테 전해졌고 달마대사의 모습은 수행자의 표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달마대사의 얼굴은 서역 출신답게 검은 피부와 부리부리한 눈, 큰 코와 덥수룩한 수염 등 이국적인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달마와 관련된 그림 중에서 화가들이 가장 많이 사랑했던 주제는 <달마도해>일 것입니다. 갈대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넜다는 고사를 그린 <달마도해>는 시대를 뛰어넘어 오랫동안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양자강을 건넜기 때문에 그림 제목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달마도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강’이라는 좁은 틀이 ‘바다’에 가 닿아 <달마도해>가 되었습니다.

 

                              심사정, <달마도해>, 종이에 수묵, 27.6×35.9cm, 간송미술관 

                                  김홍도, <절로도해>, 종이에 담채, 58.3×105.5cm, 간송미술관 

                                      조석진, <달마도해>, 비단에 채색, 40.7×154.0cm, 간송미술관 

                                   김은호, <달마도해>, 비단에 채색, 19.6×32.5cm, 간송미술관 

                                 정언신, <달마도해>, 종이에 담채, 47.5×124.0cm, 간송미술관

 

이번 간송전에서도 역시 <달마도해>가 많이 나왔습니다. 심사정, 김홍도, 이수민, 조석진, 유숙, 김은호 등 많은 작가들이 달마를 그렸습니다. 같은 인물을 그렸기 때문에 비교해서 보시면 각 작가들의 개성이 느껴져 즐거운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달마대사를 조선 사람으로 그린 김홍도의 작품과 중국 화가 정언신의 작품을 비교해 보시면 비슷하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한국과 중국의 미감 차이가 아닐까요?

 

② 좌수도해:앉아 졸면서 바다를 건너다

달마도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달마의 모습을 어린 아이가 졸고 있는 모습으로 변형시킨 <선동도해>까지 그려졌습니다. 심사정, 김홍도, 이수민, 유숙 등 이 번 전시회에 출품된 <선동도해>만 해도 여러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심사정의 <선동도해>는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거품이 일고 있는 바다 위에서 갈대 위에 쪼그리고 앉은 어린 아이가 살풋 잠이 들었습니다. 무섭지도 않을까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잠이 들었습니다. 갈대 위에 앉아 있기만 하면 아무리 깊은 바닷길이라도 건널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편안하게 자는 걸까요. 아니면 인생은 어차피 어린아이가 홀로 망망대해를 건너 가듯 혼자 가야 된다는 고독한 진리를 얘기하는 걸까요. 무릎을 세우고 잠든 어린아이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만약 내게 인생의 바다를 헤쳐 나갈 그 무엇이 있다면 풍랑 속에서도 잠들 수 있는 저 어린아이처럼 넉넉한 믿음으로 건너가고 싶습니다.

 

                           심사정, <선동도해>, 종이에 담채, 27.3×22.5cm, 간송미술관

 

심사정의 <선동도해>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어린아이의 숨결소리가 들린다면 김홍도와 이수민의 <좌수도해>는 밤중에 듣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금새라도 빠뜨릴 듯 시퍼런 물결이 보는 사람을 자꾸 불안하게 합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저 아이를 깨워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빨리 일어나야 할 텐데.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저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물에 빠지지 않고 육지에 도달한다 해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찾아 들면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또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은 아닐 지.

 

                              김홍도, <좌수도해>, 종이에 담채, 38.4×26.6cm, 간송미술관

                       이수민, <좌수도해>, 종이에 담채, 26.0×20.5cm, 간송미술관

 

<선동도해>는 아니지만 선배들의 작품을 보고 힌트를 얻었을 법한 작품이 유숙의 <오수삼매>입니다. 유숙은 바다니 갈대니 하는 소품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리고 오직 잠 든 스님의 모습만 그렸습니다. 만약 잠에 빠진 아이가 그려진 <선동도해>가 빠지고 <달마도해>와 이 작품만 있다면 두 작품상의 연관관계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작품은 시대와 작가에 따라 변형되고 새롭게 창조됩니다. 때론 그 원형이 무엇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변주가 심한 작품도 많습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변장한 작품의 원류를 찾아가는 작업도 상당히 재미 있습니다. <오수삼매>가 그런 예입니다.

눈썹까지 세밀하게 그린 얼굴과 먹의 농담변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승복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태산 같은 잠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스님은 지금 천지가 파열한다해도 끄덕없을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졸릴 때 눈꺼풀의 무게를 느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잠입니다.

 

                           유숙, <오수삼매>, 종이에 담채, 28.0×40.3cm, 간송미술관

 

③ 포대화상

포대화상은 달마대사만큼 인기가 많았던 분입니다. 지금도 절에 가면 둥근 배를 내밀고 자루를 맨 채 넉넉하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포대화상은 누구일까요?

법명이 ‘계차’인 포대는 당나라 말 오대 때 사람인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항상 지팡이 끝에 달린 포대자루 속에 온갖 물건을 가득 담고 다니면서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포대화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포대자루를 가지고 다니는 스님이라는 뜻입니다. 지팡이 끝에 포대자루를 들고 있거나 혹은 둥근 포대자루곁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포대화상은 재물과 복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조각상과 그림으로 수없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재물과 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은 끝이 없는 듯 합니다.

 

               김득신, <포대흠신:포대화상이 기지개를 켜다>, 종이에 담채, 27.2×22.8cm, 간송미술관 

                  안중식, <환희포대:즐거운 포대화상>, 비단에 담채, 62.0×139.8cm, 간송미술관 

                        노수현, <포대화상>, 비단에 담채, 28.0×20.2cm, 간송미술관

 하루 종일 중생들에게 자루 속에 든 물건을 주고 나서 잠시 쉴 때의 넉넉함. 그것은 베풀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평화일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여유입니다. 포대화상의 얼굴은 누가 그리더라도 항상 웃는 모습입니다. 불룩한 배가 포대만큼 부풀어있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넉넉함으로 기억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언젠가는 먼지로 사라질 몸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마음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포대화상님. 당신은 멋진 남자입니다.

 

④ 호랑이와 스님

 부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인게다 존자는 호랑이를 길들여서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한 생각의 차이로 맹수가 되었지만 짐승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재는 선종화나 문인화의 소재로 크게 환영받았는데 『고씨화보』에도 그 도상이 담겨 있습니다. 정선의 <송암복호:소나무 밑 바위에서 호랑이가 엎드리다>는『고씨화보』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경산수화가답게 그림 속에 등장하는 스님과 호랑이는 물론 소나무까지도 조선적입니다. 소나무 아래에서 스님이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는 그림으로는 서울대 박물관에 소장된 장승업의 작품이 뛰어납니다.

양기성의 <사자와 나한>은 인게다 존자를 그린 것인 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보면 항상 이런 숙제가 남습니다. 전시회에서 돌아와 그 숙제를 푸는 과정이 제게는 공부입니다. 사자는 성스러운 동물로 불화에서 자주 등장하는만큼 여기서는 수행자를 지켜주는 동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들 때까지 비슷한 그림을 자주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김홍도의 <고승기호:고승이 호랑이를 타다>에서는 스님이 호랑이를 길들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호랑이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인게다 존자일까요?

 

                           정선, <송남복호>, 종이에 담채, 51.0×31.5cm, 간송미술관 

                                양기성, <사자나한>, 종이에 수묵, 34.5×28.0cm, 간송미술관 

                         김홍도, <고승기호>, 종이에 담채, 35.7×31.8cm, 간송미술관

 

⑤ 수행자 스님

허필이 그린 <나한>을 보면, 소나무 아래 노스님이 향을 피우고 앉아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화보를 참조한 듯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담백한 붓질로 수도자의 생활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최북의 <관수삼매>에서는 종려나무와 태호석이 있는 계곡에서 한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두가 잘 잡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스님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봄날일 수 있겠습니까.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해가 뜨는 날도 있겠지요. 다만 쉬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힘내세요, 스님. 저도 힘내겠습니다. 이제 이 글을 마칠 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허필, <나한>, 종이에 수묵, 23.2×30.5cm, 간송미술관 

                  최북, <관수삼매:물을 보며 삼매에 들다>, 비단에 담채, 11.0×31.6cm, 간송미술관

 

지칠만 하니까 역시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김홍도의 작품은 다 좋지만 만약 그의 작품에서 두 작품만 고르라고 하면 저는 주저없이 <남해관음>과 <염불서승>을 고르겠습니다. <염불서승: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가다>는 수행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는 서쪽에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서방정토라고 합니다.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열 번만 염송하면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에 귀의했던 김홍도가 이대로의 모습 그대로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발원이 담긴 작품입니다. 두광 바깥을 파르라니 물들인 표현방식도 좋고 구름과 연꽃이 뒤섞인 모습도 좋습니다.  

                                김홍도, <노승염불>, 종이에 담채, 19.7×57.7cm, 간송미술관

 

염불로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바램이 담긴 작품이 또 있습니다. <노승염불>입니다. 담묵으로 노스님과 시자를 그린 이 작품은, 잘 그려야 되겠다는 화가의 마지막 욕심마져 비워 낸 작품같습니다. 저도 이런 글 한 편 쓰고 싶은데 아직은 욕심이 덜어지지 않습니다. ‘단원 늙은이’라는 뜻의 ‘단로(檀老)’가 적힌 것으로 봐서 <염불서승>과 마찬가지로 단원 김홍도의 만년작입니다. 제시를 보니 ‘입으로 항하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외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항하는 인도의 겐지스강을 뜻합니다. 겐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외우고 싶은 염불. 그것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⑥ 일상생활 속의 스님

스님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조영석의 <노승헐각:노승이 다리를 쉬다>와 <노승휴장:노승이 지팡이를 짚고 가다>, 그리고 이인문의 <나한문슬:나한이 이를 떨어내다>와 김득신의 <송하기승:소나무 아래에서 장기 두는 승려>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고려 시대라면 그려지지 않았겠지요. 고려시대까지 왕의 스승을 하던 스님들은, 조선시대가 되면 사대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천민으로 전락합니다. 자연히 고려시대같이 뛰어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될 수 없었을뿐더러 사대부들의 천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김홍도의 <염불서승>같은 뛰어난 작품보다는 스님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제작된 듯 합니다.

 

                                   조영석, <노승헐각>, 비단에 담채, 17.2×26.8cm, 간송미술관

 

조영석의 <노승헐각>은 노스님이 지팡이를 짚은 채 소나무 등걸에 앉아 쉬고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목에는 염주를 두르고 머리에는 송낙을 쓴 노스님은 먼 길을 걸어온 듯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맑은 담채로 과장없이 풀어낸 조영석의 문인취향이 느껴집니다.

 

                          김득신, <송하기승>, 종이에 담채, 27.0×22.4cm, 간송미술관

 

그런가하면 김득신의 <송하기승>은 인물만 스님일 뿐이지 완벽한 풍속화입니다. 소나무 아래서 장기 두기에 여념이 없는 스님들의 모습을 풀어내는 방식에서 김홍도의 영향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야묘도추:병아리를 물고 가는 고양이>처럼 김득신의 풍속화는 대상에 최대한 접근하여 순간적인 장면을 잡아내는 생생함이 담겨 있습니다.

스님의 생활을 다룬 그림으로는 신윤복의 <이승영기:비구니가 기생을 맞이하다>와 <노상탁발> 그리고 <문종심사:종소리 들으며 절을 찾아가다> 등이 출품되었습니다. 여인의 모습이 담긴 풍속화를 주로 그린 신윤복답게 역시 세 작품 모두 화사한 여인들이 주인공입니다.

 

                        신윤복, <노상탁발>, 종이에 담채, 35.6×28.4cm, 간송미술관

 

그런데 이쯤해서 과연 ‘도석인물화’가 무엇인가, 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도교의 인물상들은 그 그림이 비록 감상화라 할지라도 그 안에 장수, 다남, 재물, 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인물화는, 절에 걸기 위한 불화가 예배대상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한 반면 도석인물화로 분류되는 나한, 승려 등의 인물상은 순수한 감상용으로 제작된 것 같습니다. 신윤복의 <노상탁발>이 예배용이나 축수용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⑦묘길상

묘길상은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입니다. ‘문수보살’의 다른 이름인 묘길상은 그 높이가 15m로, 얼굴 크기만 3미터에 달하는 거불입니다. 같은 장소를 그린 세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림을 풀어내는 작가의 시각과 개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홍도의 작품이 마애불을 향해 절하는 두 스님을 그려서 풍속화의 느낌이 짙다면, 이한철의 마애불은 하단과 옆면을 여백으로 비워두어 마치 높은 벼랑 위에 떠 있는 듯 합니다. 그런가하면 김홍도와 이한철이 서 있던 위치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서 붓을 들면 김은호의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김은호는 묘길상이라는 마애불보다는 그 불상이 놓여진 주변의 가을 풍경에 더 매료된 것 같습니다.  

                                 김홍도, <묘길상>, 종이에 담채, 18.2×23.6cm, 간송미술관

 

                            이한철, <묘길상>, 종이에 담채, 28.0×24.6cm, 간송미술관

 

                      김은호, <묘길상>, 종이에 담채, 45.2×33.3cm, 간송미술관

 

⑧호계삼소: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

드디어 이번 간송미술관 전시회에 대한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처음에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전시회 동향이 어떠했는 지 간략하게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레포트를 받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전시회를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라고 했더니 거의 인상비평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림속의 인물이 누구이며 왜 그렸는지에 대해 거의 알 지 못하더군요. 그만큼 도석인물화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상과 지물을 설명하는 식으로 글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최북의 <호계삼소>입니다. ‘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란 뜻인데 유, 불, 선을 대표하는 세 사람이 서로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최북(1738-1786)이 살던 시대에는 유, 불, 선이 동양의 대표적인 종교였으니까 각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서로 자기 종교가 우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요하지 않고 서로 웃고 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모름지기 사람 사는 세상이 저래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교가 틀리고 정치적인 견해가 틀려도 함께 어울려 웃을 수 있는 세상.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틀려도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사회. 나와 다른 색깔로 살아가도 비난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 관계. <호계삼소>가 지향하는 세상이 제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조금만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금새 화를 내고마는 저같은 사람한테 꼭 필요한 그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랫 동안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관용’과 ‘배려’에 대해 고민해보겠습니다.(조정육)

 

                               최북, <호계삼소>, 비단에 담채, 21.0×29.7cm,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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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08 13:08

    첫댓글 선경이 달리 없을만큼 넉넉한 얼굴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무진당님

  • 09.11.09 09:45

    간송 전형필 님을 그리는 간송미술관, 지금도 성북동 그 언덕에 있는지 ..... 무진당님의 넉넉하신 가슴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 09.11.19 15:0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좋은자료 감사합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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