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 임명과 함께 '담대한 구상'은 폐기됐다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파국이다. 정전협정 70년을 맞으며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의 파국을 스스로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8일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북한 체제 전복을 주장하는 극우 인사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하였다. 같은 시간 외교부 출신 통일부 차관은 통일부 조직개편을 통해 통일부 지우기에 나섰다.
이 글은 윤석열 정부의 독단적인 남북관계 파국 선언이 어떻게, 왜 가능했는지를 규명하고 민주주의의 통제하에 남북관계의 재건을 제안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의 거짓말, ‘담대한 구상’은 폐기됐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대북정책으로 내놓았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우리의 경제‧정치‧군사적 조치의 동시적‧단계적 이행을 통해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제안”이다. 윤 정부는 또한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기 위해 상호 호혜성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를 정립하고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단계별 대북 경제협력과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관련기사: 윤 정부 '담대한 구상', 말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https://omn.kr/21uj0).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담대한 구상’은 거짓이었다. ‘담대한 구상’은 ‘실세’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통일부 장관 교체를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를 ‘대북지원부’라 비판하고 통일부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스스로 만든 ‘담대한 구상’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새롭게 임명된 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은 북한체제의 붕괴를 꿈꾸는 극우 인사이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기본 장전으로 존중되고 있는 <남북기본합의서>는 제1조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명시하였다. 김영호 장관의 임명은 기존의 남북 합의를 부정하고 남북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김영호 장관이 임명된 날 외교부 출신 ‘실세’ 차관은 행동에 나섰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남북대화와 교류 협력을 담당하는 부서들, 즉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등 4개 조직을 통폐합하고 통일부 구성원의 15% 이상을 재편(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해체가 회자돼 온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제외됐지만 해체에 가까운 조직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대북정책의 파국
필자는 지금의 파국이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난 대북정책이 만들어낸 비극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행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핑계로 민주적 통제를 거부한 배타적 권력을 행사해 왔다(관련기사: 정부의 남북관계 '독점'... 과연 정당할까, https://omn.kr/1zc5n).
먼저 행정부는 남북대화 창구를 독점하고 있으며 사회구성원의 북한 방문과 북한 주민 접촉을 엄격히 통제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자국민의 북한 방문을 허용한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롭게 북한을 여행하지 못했다. ‘신변보호’를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남북관계 독점을 견제해야 할 국회는 어떠한가? 우리 국회 또한 정부의 통제하에서만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 다만 국회는 우리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정부의 대북정책을 매우 제한적으로 견제해 왔다. 국회는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에 따라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제21조 3항). 다만 2006년 이 법률이 제정된 이후 국회의 동의를 거쳐 공포된 남북합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는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에 따라 5년마다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보고해야 하며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해 이 역시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기본계획에 예산이 수반될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제13조 1항, 2항, 5항)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정부는 2022년 <남북관계발전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올해 수립되어야 하는 제4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과 2023년 시행계획은 정기국회가 한 달여로 다가온 상황에서 아직까지 수립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법률이 규정한 국회의 권한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이번 정기국회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시민사회의 참여 또한 매우 제한적으로, 정부의 입맛에 따라 예산지원을 무기로 통제되고 있다. 헌법기관으로 정부의 통일정책을 자문해야 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는 관변단체로 전락해 버렸다. 남북관계에서 정부의 배타적 대북정책 권한은 군부독재의 억압을 뚫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왔던 1980년대보다 더 민주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국민은 통일부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 나설 것을 요구
북한은 정전협정 70년 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고위 관리들을 주석단에 세워 북-중-러 삼각동맹을 과시했다. 한미동맹에 대응한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한반도 분단체제에서 안보는 국가의 핵심적인 의무이다. 그러나 평화는 튼튼한 국방에 기반하되 대화를 통해 달성돼야 하며 이 과정은 민주주의의 통제하에 진행돼야 한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민주적 통제장치 없이 ‘그래 한번 붙어보자’는 극단적 모험주의로 폭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어떤 대응을 요구하고 있나? 지난 5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발표한 통일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와 같이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해 어떤 방향의 대북정책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지속적인 남북대화 제의’가 34.7%, ‘국제공조 강화’가 21.1%,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북한 설득’ 11.2%, ‘대북제재 완화’ 7.1% 등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해결이 74%로 나타났으며 ‘군사력 대응강화’와 ‘대북경제제재 강화’ 등 강경책은 23%를 밑돌았다.
다음으로, 통일부의 역할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가? 지난 7월 7일 <뉴스토마토>가 전국 성인남녀 1,0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0.2%는 통일부가 '북한과의 대화, 교류, 협력 추진에 매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30.4%는 '인권 등 북한의 문제점을 알리고 체제 우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보수진영의 강세 지역인 영남에서조차도 절반 이상의 국민이 통일부가 '대화·교류·협력에 매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 특히 통일부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남북관계에서 행정부의 배타적 독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통제하에 남북관계를 재건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통제하에 남북관계 재건해야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의사와는 반대로 역주행하고 있다.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난 대북·통일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의 독단적인 대북정책, 남북관계 재편을 막고 민주적 통제하에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남북관계를 재건해야 한다.
우선 국회가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필요하다면 법개정을 통해 폭주를 막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수립하는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과 그 시행계획에 대해 국회가 동의권에 준하는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통일부가 대화와 교류·협력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해당 조직 또한 제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시민사회가 남북관계의 행위자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교류·협력에 관한 정부의 배타적 권한을 제한하는 법 개정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유명무실해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실효적인 자문기구로 재편하고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 필자는 오랫동안 진보와 보수 정부를 떠나 대북정책에 있어 야당의 역할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야당의 의견을 최소한으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정권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뒤바뀌는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설사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을 일부 후퇴시키더라도 야당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구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