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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 우뚝 솟아 오른 한국 절 대성석가사(大聖釋迦寺)
1 <Let's go Lumbini>
2 룸비니 용왕못가에서 그림삼매에 빠져있는 드림팀
3 완성된 드림팀의 대성석가사 그림
4 웅장한 한국사찰 대성석가사
5 성된 드림팀의 대성석가사의 대문
6<Himalayan Buddha>Alisha Tamang
7<World peace> by Bishal Capai
8 <World peace stupa>in Lumb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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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웅장한 대성석가사는 국제사원구역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원구역은 현재에도 진행중에 있는 <룸비니 개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러 불교국가들이 자체적으로 건설한 사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이 된 버마 출신 우탄트의 호소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1967년 4월 폐허상태로 남아 있는 룸비니를 방문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생각 끝에 네팔정부와 국제사회에 룸비니개발을 제안하였다. 이에 13개 불교국가들이 이에 호응하고 나섰고 네팔정부도 화답하여 1970년 2월 <룸비니성역개발위(L.D.T)>를 구성하여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짜서 국제적인 자금모집에 들어갔다.
구체적인 개발계획은 인근의 바이라와(Bhairahwa) 공항으로부터의 룸비니에 이르는 21㎞ 달하는 도로를 확포장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룸비니의 상징나무인 무우수(無憂樹)로 그린벨트를 조성하여 성지구역과 외부를 구분하고, 순례자촌을 조성하여 각국의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시설 및 이 지역 주민의 주거지를 수용하는, 큰 틀의 설계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사원들이 들어설 <국제사원구역>에는 그간 고고학적 발굴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할 박물관과 샤카모니 붓다의 일생을 보여주는 자료를 보여주는 도서관 및 전시관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또한 무게중심이 몰리는 핵심 룸비니성지는 싯다르타 붓다의 탄생을 기리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기게 정원을 꾸며서 연차적으로 시행하게 안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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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 배낭여행객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인도대륙 곳곳에는 한국사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불교의 성장세를 대변하는 외형적인 증거인데, 그중 룸비니의 대성석가사가 가장 성공적이고 대표적인 케이스로 손꼽힌다. 현재 룸비니에는 ‘룸비니개발계획’에 따라 유네스코(UNESCO)의 주도로 <국제사원구역>을 지정하여 나라마다 고유의 절을 짓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네팔정부는 각국에게 100년간 사원부지를 임대해주었다. 이에 현재 중국, 일본,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독일, 미국 등 20여개 나라가 각각 자기 고유의 사원을 속속 건립하고 있는데, 그중 우리나라 사원이 규모면에서 가장 웅장하다.
대성석가사는 1995년 4월 8일 착공하였지마는 언제 완공될는지는 모른다. 그 규모가 과거, 아니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경주 황룡사 대웅전을 모델로 하여 그것을 불교의 첫 새벽이 열린 룸비니에 다시 우뚝 일으켜 세울 계획이라 한다. 대성석가사 경내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인사 말씀>
대성석가사(大聖釋迦寺)를 찾아 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곳은 ‘룸비니개발위원회(L.D.T)’ 소속 국제사원 구역 내에 있는 대한민국 사찰인 대성석가사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이신 불심도문(佛心道文) 큰 스님께서 1995년 2월 27일 네팔정부와 99년 동안 부지사용 임차를 하셨습니다. 임대료는 현재 매년 840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주지 법신스님은 불심도문스님의 제자입니다.
공사는 한국에서 지원해 주신 지원금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한국의 전국 각지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한 등 한 등 십시일반으로 보시한 시주금에 의하여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사 착공일은 1995년 4월 8일이었으며 완공예정일은 공사가 모두 끝난 후 발표할 예정입니다. 국민의 성원에 따라 공사기간이 정해지겠습니다.
대웅전의 규모는 옛 신라의 서울인 경주 황룡사 대웅전의 규모와 거의 같습니다. (솔거의 소나무 벽화로 유명했던 황룡사 대웅전입니다.)
여러분, 이곳에서 편안하게 쉬시고 불편한 사항이 있으시면 사무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오시고 가실 때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하더라도 서로 양해하시면서 값진 여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대성석가사 주지 법신(法信) 합장
정리하자면 대성석가사는 백용성스님(1864-1940)의 유훈에서 비롯되어 1993년부터 <룸비니 개발프로젝트(L.D.T)>가 시작될 때 한국의 도문(道文)이 한국을 대표해서 제일 큰 땅을 배정받아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도문스님의 상좌인 법신(法信)스님이 이어받아 20여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웅전의 규모가 솔거의 소나무 벽화로 유명한, 경주 최대의 신라사찰 황룡사(皇龍寺)의 대웅전과 같다는 하니, 외형면에서는 룸비니에서 최대를 자랑할 만하다. 석가사의 법당은 기단(80m×80m)을 빼고도 3층[42m]인 웅장한 규모이다. 보통 건물로 치면 12층 높이가 된다는 대웅전 3층 테라스에 서서 황혼녘에 물들여 가는 드넓은 떠라이 평야를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이 ‘최고 최대’로 인해 약간의 구설수가 생겼다고 한다. 긍정적인 편에서는 우리나라 국력에 대한 비례로 이해하면 가슴 뿌듯하다는 편이고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외형적 자랑거리에 치우치는 감이 있어서 뜻있는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불교의 민얼굴이 건물이 내건 자랑거리처럼 과연 “동양, 아니 세계 최고인가?” 라는 자문자답은 한 번 곱씹어 볼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대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생각해볼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외형적으로 세계 최고의 건물이라도 현재 사용함이 이름 그대로 ‘대성적(大聖的)’ 또는 ‘대승적(大乘的)’이지 않다면 건물주나 그 주변 인물들의 최고병(最高病)이란 애고만을 빛내줄 자기들만의 자랑거리밖에 안 될 것이다.
새삼스럽게 부연설명이 필요 없지만, 한국불교는 이타행과 보살행을 지향하는 대승불교권에 속한다. 대승, 즉 마하야나(Maha)의 진정한 구경처는 자기해탈에 있지 않고 이타행에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해탈하게 도와 주여야 하는 의무를 가진 것이 진정한 대승불교도가 걸어야할 보살의 길이다. 그런 면에서는 대승불교를 지향하는 우리 불교계의 현실은 어떤가?
이 문제에 대하여 먼저 티베트불교사를 연구한 일본의 한 불교학자의 글을 읽어보자.
티베트불교가 중국, 한국, 일본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있다. 이 3국의 불교가 ‘성불’이라는 말로 자기완성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 것에 비하여, 티베트불교는 무한히 이타를 바라며 일체지자(一切知者)로의 길로 나아갈 뿐 결코 스스로를 위하여 열반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된 이타행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완성이 필요하다”라는 논리는, “자기완성을 위해서도 이타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어, 마침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불교”로서의 보살행이 “스스로가 구원받는 불교” 로 어느덧 변질되어서 “대승이 어느 사이엔가 소승으로 되돌아 간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티베트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비교한 위의 글처럼 즉 우리 한국불교가 ‘대승의 길’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자기성찰이 필요한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은 평소 나도 동감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잣대만을 가지고 석가사의 최대최고 논쟁을 보자면 나는 물 마르고 배고 푼 사람에게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석가사는 본래의 제 기능, 즉 대승의 보살행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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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는 저녁나절이면 생김새가 다른 온갖 국적의 나그네들이 하루 밤의 잠자리를 위해 찾아든다. 이미 외국의 가이드북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룸비니의 <Korea Buddhist Daesung Shakya Sa Temple>은 마치 사기꾼이 반 같이 느껴지는 인도나 네팔에서의 심신이 극도로 지친 온갖 나그네들에게 잠자리와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내가 수십 년 역마살 풀이 방랑 중에서 이색적인 경험을 한 곳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시크교(Sikh)의 총본산인 인도 암릿차르의 황금사원(Golden Temple)이다. 물론 여기도 재워주고 먹여준다. 오래전 그곳에서 며칠 공짜로 자고 먹은 일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시크교와 황금사원에 대한 좋은 느낌이 가셔지지 않고 있다. 오직 내 주머니만을 노리는 인도와 네팔에서 하루 밤의 잠자리와 보잘 것 없더라도 한 끼의 먹거리 제공은 그 만큼 효과가 큰 것이다.
여기서 석가사의 객관적인 평가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로써 대신한다.
대성석가사는 세상 모든 여행자들에게 열려 있다. 인도여행으로 지친 순례자나 배낭여행자들은 이곳에 와서 심신을 쉰다. 숙식, 식사 등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며 한 방에 4명 정도 기거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 와서 오랜만의 여유를 갖고 여행의 흔적이 묻어있는 옷들을 빨아 널고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으로 허약해진 몸을 추스른다. 국, 김치, 나물, 볶음, 쌈 외에도 칼국수, 수제비 등이 특식으로 제공되며 보리차나 결명자차도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다.
여기서 외국인들이 밥과 김치를 먹는 모습도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또한 커다란 통에 현미, 통밀, 보리, 콩 등을 갈아 만든 미수가루나 눌린 현미 튀김 등을 담아 놓아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히말라야 등반에 필요한 미수가루를 가지러 일부러 이곳에 들르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만큼 보시함에 돈을 넣으면 된다. 돈을 받으러 지키는 사람도 없고 왜 그냥 가냐고 무언의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왔다가 자유롭게 머물고 그리고 자유롭게 떠난다. 이곳에서 모든 여행자들은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땅 룸비니에서 만큼은 우리 모두 부처로, 그 완전한 존재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불사를 통해 온 겨레 전 인류 만 중생 다 함께 성불인연 짓는 불교의 대중화를 염원했던 용성대종사의 뜻이기도 하리라.
처음에는 한국사찰의 전통대로 목재로 건물을 지었다는데, 자꾸 화재가 나서 결국 한국식의 절을 짓기보다는 현지에 맞는 절을 짓기로 괘도수정을 하여 시멘트와 철제로 골조로 사용하여 건립했다고 한다.
나도 그 막대한 재원이 궁금하여 알아보니 국가나 종단차원의 후원도 없이 십시일반으로 모여지는 불사금으로 자원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원력이 아닐 수 없다. 석가사의 주수입은 석가탄신일 연등달기와 방문객들의 보시금이 전부인데, 모든 수입금을 12달로 나누어 매달 절에서 쓰고 남은 돈으로 공사를 하는데, 돈이 부족할 때는 주변 정리, 나무심기, 내부 수리 등 부담 없는 일을 하고 그러다 여유가 되면 인부들을 더 고용해서 공사를 진행하여 20여년 만에 완공단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결핵과 문둥병 환자가 반이 넘는 열악하고 가난한 환경에 있던 현지인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자신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공사 현장에서 손수 광주리에 돌을 담아 나르는 등 함께 막일을 하면서 절을 지어가는 법신스님을 성인으로 우러른다. 불자라면 누구나, 아니 굳이 불자가 아니라도 마음에 큰 광명 하나 밝히며 살고 싶은 사람은 석가사에서 하루 밤을 꿈꿀 일이다.
만약 시절인연이 되어 석가사에는 하루 밤을 지내게 된다면 새벽 5시에는 청아한 아침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와 목탁소리에 맞추어 들려오는 구성진 화음의 예불소리를 들을 수가 있고, 한 끼 아침을 얻어 으려면 아침 6시에 1층 공양간으로 가야 한다. 네팔현지식 이외에도 밥과 국, 기본반찬과 무엇보다 반가운 김치를 곁들인, 전통적인 한국식 아침밥상을 맛 볼 수 있다. 식사를 끝내고 일정이 바쁜 순례객이나 배낭여행객은 행장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일정에 여유가 있거나 휴식이 절실한 이들은 하루 더 머물러도 된다. 물론 모든 것이 공짜지만 그래도 성의껏 불사후원금을 보시함에 넣는 것이 기본 예의일 것이다. 대성석가사의 붙어 있는 안내문의 마지막 구절이 백미이다.
“여러분, 이곳에서 편안하게 쉬시고 불편한 사항이 있으시면 사무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오시고 가실 때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하더라도 서로 양해하시면서 값진 여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대성석가사 주지 법신(法信) 합장“
주지스님!
고맙습니다. 하루 밤 잘 쉬고, 어제 저녁 공양에, 오늘 아침 밥까지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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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pal P.O. Box 37. (Korea Buddhist Mahabodhi Society Daesung Shakya Sa Temple) Siddhartha Nagar Rupandehi Lumbini Nepal
Tel: 977-71-580123 Fax: 977-71-580125R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뤘던 용성스님은 출옥 후 불교 정화에 주력하는 한편, 불교의 대중화를 촉진했다. 용성스님의 이런 정신은 열반 직전 맏상좌인 동헌스님에게 남기신 유훈에 잘 나타나 있다.
* 우리나라 불교 전래지의 성역화, 경전 100만권 번역과 배포, 100만 명에게 계를 줄 것, 부처님 주요 성지에 한국사찰을 건립할 것 등 10가지. 유훈을 이루기 위한 사업은 동헌스님의 제자 불심도문스님에게 이어졌다. 도문스님은 백제 불교전래지인 서울 서초구 우면산의 대성사, 신라 불교 전래지인 경북 구미 도개면에 아도모례원 등의 사찰을 건립했다.
* 야마구찌 즈이호(山口瑞鳳)외 , <티벳불교사>, 이호근외 번역, 민족사간, 1990
* 15세기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의 바크티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이 융합되어 탄생한 종교로서 현재 신도만 전 세계적으로 2천3백만에 이르는 세계 5대 종교 중의 하나이다. 교조 나나크(Nanak)와 소의경전인 <구루 그란스 사힙(Guru Granth Sahib)>를 따른다. 머리에 터번을 둘러 쓴 모습으로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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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곳에 들렀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오랫만에 석가사 소식을 듣게 되어 반갑네요.
세수대야에 모래 한삽 분량을 머리에 이고 느릿느릿 움직이던 공사장 인부들을 보면서 빨리빨리 일하는 우리들의 습성에 그 모습이 참 달리보여서 한참을 바라보며 언제 완공될수 있을까 걱정했던 생각이납니다.
주지스님이 묵묵히 외국인들에게도 무량한 보살행을 하시는 모습에 숙연한 마음으로 예불을 함께한 기억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