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도보 대행군 기행록(9)
9. 뜻깊게 걸은 광복절(계룡- 논산 관촉사 27km)
8월 15일(토), 75주년 광복절이다. 아침 6시 반에 숙소 인근의 식당에서 조반을 들고 7시에 걷기에 나섰다. 첫 행선지는 1.2km 떨어진 계룡면 행정복지센터, 전날 마지막 도착지점인데 숙소와 역방향이어서 오늘 거쳐 가기로 한 것이다.
계룡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의 도로변에 가지런히 게양된 태극기가 광복절을 일깬다.
계룡면사무소에 도착하니 7시 20분, 면사무소 입구의 영규대사 정려비가 눈에 띤다. 정려비의 요지, 영규대사는 일찍이 출가하여 계룡산 갑사에서 수행정진 하던 중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승병장이 되어 금산전투에 참여 중 부상을 입고 갑사로 돌아오다가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경내에 비치된 스탬프를 날인하고 7시 반에 논산방향으로 출발하였다. 참가자는 15명, 처음으로 본대원만 참여하였다.
조용한 시골길을 두 시간여 걸어 당도한 곳은 논산시 경계의 무동정(舞童亭)이라는 마을쉼터, 이곳에서 휴식 중 10시부터 시작하는 광복절 기념식에 맞추어 그 시간에 광복절 노래를 부르자고 의견을 모았다. 모두들 광복절 노래 부른 지 오랜만, 스마트폰에서 노래를 찾아 예행연습도 하였다.
정자를 나서 몇 발자국 걸으니 공주 시계를 벗어나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접어든다. 도로 양편에 활짝 핀 무궁화가 일행을 반기네. 잠시 후 노성천이라는 하천이 나타난다. 하천을 따라 제방을 한참 걷다가 차량들이 질주하는 차도 옆의 소로로 빠지니 10시가 가깝다. 10시 정각, 통행이 뜸한 길에서 한데 모여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고 힘차게 만세를 불렀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광복절 가사(1절)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한적한 도로에서 부른 광복절 노래
잠시 후 노성면사무소에 들렀다. 경내에 비치된 스탬프 날인 후 잠시 휴식하며 간식 먹기, 충무공이 백의종군 길에 노성현 동헌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은진으로 향했다는 기록을 새기며.
10시 반에 면사무소를 출발하여 광석면 향월1리 초포(풋개마을)로 향하였다. 풋개 마을은 당일참가자로 계속 동행한 김명중 씨의 고향마을, 예전에는 참게가 많이 잡히고 지금은 딸기가 주산인 농촌으로 한 때 6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던 큰 마을이었는데 현재는 60여 호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해마다 농한기인 8월 15일을 두레 먹는 날로 정하여 마을잔치가 열린다고. 오늘은 특별히 백의종군 길에 나선 일행들의 이 마을 통과를 환영하는 행사를 겸한다는 전언이다.
풋개 마을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지났다. 마을의 중심지에서 동네잔치를 벌이던 주민들이 일행을 맞아 대형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박수로 환영, 기념촬영을 하고 잔치마당 바로 아래에 있는 김명중 씨의 옛집에 차린 점심장소로 향하였다. 동네잔치의 음식에 들밥을 별도로 준비하였다는 김명중 씨의 설명, 지금은 노모 혼자 기거하는 시골집이 반듯하다.
풋개마을에 도착하여 기념촬영
푸짐한 식사 후 한 시간여 휴식하는 동안 일부는 피로를 푸는 낮잠을 즐기기도. 그 사이 세종시의 세종일보에서 백의종군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신문사 측의 연락, 오후 2시 가까이 도착한 취재진의 기획이 마을잔치와 겹쳐 더 고조된 분위기다.
오후 2시 넘어 풋개마을을 출발, 2018년에 개통한 풋개 다리를 건너니 논산시 부적면에 접어든다. 논산은 예부터 평야지대, 그 넓은 평원의 이름은 가마뜰로 벼들이 풍년을 기약하고 특수작물 딸기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생산지다. 가마뜰 한 시간 걸어 부적면소재지의 공원에서 잠시 휴식 후 은진면의 관촉사 주변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가깝다. 걸은 거리는 27km, 내내 충실한 이벤트가 이어지는 뜻깊은 8‧15 백의종군 대행군이 보람 있다.
저녁식사는 숙소 인근의 전원 식당, 떡갈비를 곁들인 다양한 메뉴가 깔끔하다. 호스트는 배준태 단장, 성찬을 베푼 호의에 대원 모두 감사의 박수. 서울과 중부지역은 마지막 장맛비가 내리는 날, 쾌청한 날씨에 충실한 이벤트가 겹친 이날처럼 참된 광복과 온전한 평화의 기운 길이길이 뻗쳐라.
* 3년 전 풋개마을을 지날 때 품격 있는 마을인 것은 살폈지만 깊은 속내는 알지 못한 터, 그때 차량 지원하던 동료가 ‘내 고향 풋개’라 새긴 시비의 글을 전해주어 이를 기행록에 적었다. 그때는 별다른 느낌 없이 기록한 인연이 3년 후 알찬 결실로 연결될 줄 어찌 알았으리. 일행과는 별도로 마을이장 김권중(김명중 씨의 동생) 씨의 안내로 ‘내 고향 풋개’의 시비를 찾았다. 김명중 씨에게 시비의 작시과정과 그 의미의 맥락을 전해 들으니 감회가 새롭고. 제대로 새긴 ‘내 고향 풋개’를 다시 옮겨 적는다.
내 고향 풋개
계룡산 바위 빛이 하얗게 변할 때면
초포 앞뜰 금강 물엔 배가 뜬단 그 전설이
아직은 두 냇물 모여 풋개 들을 적시고
신도안 새 도읍지 물색하던 무학대사
산태극 수택이 이 마을로 이었으니
풋개란 이름도 좋다 부자 터라 일렀다
한양길 선비들이 묵어가던 초포원에
왕건이 출정 길에 쌓았다는 다리 하나
이몽룡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가던 길
산신제 장승제로 마을 안녕 축원하며
풍년을 기원하던 원풍산 기우제는
초포들 단비로 적셔 노적으로 쌓았다
일제에 항거하던 염상호의 애국 혼은
잘 사는 새마을로 다시 가꿔 꽃 피우고
오늘은 딸기마을로 그 이름도 높아라
나라엔 충성하고 부모에겐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도와 사는 마을
그 전통 오늘로 이은 두레마을 우리 풋개
풋개마을 외곽의 내고향 풋개를 새긴 시비
첫댓글 응원합니다
더위에 건강관리 잘하시고 완보하세요.
교수님의 기행문을 읽으면 함께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끝까지 건강하게 완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