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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해설 (사무엘상)
묵상을 위한 사무엘상 개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에 어떻게 왕이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러나 사무엘상의 관심은 왕정 출현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왕이 일반 세상 왕과 어떻게 다른지를 탐구한다. 다시 말해 사무엘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정 통치의 본질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순히 왕의 출현이 아니라, 특정 왕의 출현이 사무엘상의 초점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즉 사무엘상은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사무엘상을 다윗 왕권에 대한 변증으로 이해한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사울 왕의 아들이 아닌, 평민 출신인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통치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더구나 시므이의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당시 사울을 지지한 많은 백성들은 다윗이 유혈 쿠테타를 통해 왕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거라,가거라, 피를 흘린 자야….여호와께서 사울 집안의 모든 피를 네게 돌리셨다…..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했구나”(삼하16:7-8).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윗 왕의 정당성은 위협받게 된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사무엘서가 기록되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사무엘상에서 이런 변증적인 관심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무엘서 저자는 더 많은 지면을 신학적인 문제-예를 들어, 다윗 왕이 영원한 왕조를 약속받은 이유, 다윗 왕정이 일반 왕정과 어떻게 다른지 등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할애한다. 그리고 이런 설명은 단순히 다윗 개인을 변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 모든 이스라엘 왕이 따라야 할 통치 철학을 정립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무엘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은 ‘순종하는 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통치 철학의 관점에 있어서 모순 어법이다. 왜냐하면 왕은 정의상 명령하고 의지하는 자이지, 타인의 명령이나 의지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에게 요구되는 핵심적 자질은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순종하는 왕이 다시리는 왕국에는 일반 왕국처럼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왕은 일반 왕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다른 형제들을 섬기는 형제일 뿐이다(신17:20).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교훈이 아니다. 사무엘상이 가르치는 왕과 왕정의 본질은 보편적 통치 철학에 중요한 통찰을 준다. 즉 인간이 다른 인간을 통치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준다.
1.구조
사무엘상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선지자 사무엘의 출생과 소명, 사사 통치를 다루는 1-7장이 그 첫 단락이고, 사울의 왕위 등극과 폐위를 다루는 8-15장이 둘째 단락을 이루며, 다윗의 왕위 등극 과정을 다루는 16-31장은 온전한 문학 단위가 아니다. 이것은 사무엘상이 사무엘하와 본래 한 권의 책이라는 사실과 관계있는데, 다윗의 기름부음을 다루는 16장에서 시작된 다윗의 등극 이야기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 취임하는 사무엘하 5장까지 이어진다.
Ⅰ.왕정 ‘전야’(1-7장)
1.사무엘의 출생과 소명(1-3장)
2.궤 이야기(4-6장)
3.사무엘의 사사 통치:미스바 집회(7장)
Ⅱ. 사울 왕의 등극과 폐위(8-15장)
1.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함(8장)
2.사울 왕의 등극 과정(9-12장)
3.사울 왕의 폐위(13-15장)
Ⅲ.다윗 왕의 등극 과정(16-31장)
1.다윗의 기름부음 지명(16장)
2.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름 : 증명(17장)
3.사울 왕궁의 다윗 : 고난의 시작(18-20장)
4.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는 다윗 : 고난(21-31장)
1)블레셋 망명 시도와 실패(21-23장)
2)쫓는 사울과 쫓기는 다윗 : 광야 생활(24-26장)
3)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27장)
4)사울의 죽음 : 고난의 끝(28-31장)
(1)블레셋과의 전투 전야 :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는 사울(28장)
(2)다윗의 길보아 전투에 참여하지 않게 된 경위(29-30장)
(3)길보아 전투 :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31장)
2.주요내용
1-7장은 사사 시대 말을 배경으로 한다. 사사 시대 말은 사람들이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시대로, 영적, 도덕적 어둠이 매우 깊던 때다. 이 영적 어둠을 거두어줄 사람이 ‘왕’이라는 사실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로 시작하는 마지막 구절(삿21:25)에서 암시된다. 이 때문에 1-7장은 두 초점을 지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시 시대가 얼마나 어두운지를 엘리 제사장 가문의 행실로 설명하는 것이고(2장), 둘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한나-사무엘 가문을 사용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1,3,7장)이다. 한편 5-6장에는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에 7개월간 머물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음의 재앙을 가져다준 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대 근동의 왕이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 궤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줌으로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에 중요한 신학적 배경을 제공한다.
사울의 왕의 등극과 관련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8장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찾아와 “모든 민족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서 우리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에 개이적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한편 9-12장의 내용은 왕위 등극 과정인 ‘지명-증명-확증’의 관점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평민이 왕이 되는 과정은 보통 신의 지명으로 시작된다. 사울의 경우,9:1-10:1에 기록된 내용이 지명 사건에 해당된다. 사울의 경우,9:1-10:1에 기록된 내용이 지명 사건에 해당된다.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다니다가 사무엘 선지자의 마을을 방문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장차 왕이 될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 이 기름부음의 사건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지명하시는 사건이다. 한편 왕으로 지명받은 사울은 자신의 왕 됨을(전쟁) 현장에서 증명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대관식을 통해 온 백성 앞에서 왕으로 확증받게 된다. 그러나 10:2-16의 내용에 따르면 사울은 자신의 왕위를 증명하고 확증하는데 실패한다. 사울의 숙부가 그에게 물었을 때, 사울은 ‘사무엘이 언급한 나라의 일’, 즉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자신을 왕으로 지명하신 것과 사무엘에게서 자신의 왕 됨을 증명하고 확증할 두 가지 명령을 받았음을 말하지 않는다, 즉 첫 번째 ‘지명-증명-확증’으로 이어지는 왕위 등극 과정이 실패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울이 다시 왕으로 지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제비뽑기를 통해 이스라엘 왕으로 지명된다(10:17-27). 그리고 11:1-13에서 사울은 이스라엘 땅을 침범해온 암몬 사람들을 물리침으로써 자신의 왕 됨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곧 사울은 사무엘이 주재하는 길갈 집회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공식 취임한다(11:14-15). 그 취임식에서 선지자 사무엘이 왕과 그 백성에게 한 연설은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사울은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왕이 된다.
13-15장은 사울이 왕이 된 이후의 행적을 요약한다. 대부분이 사울의 군사적 업적에 관한 에피소드들이지만, 성경 저자는 철저히 ‘사울이 왜 버림받았는가?’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3-14장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묘사하고, 15장은 아말렉에 대한 이스라엘의 헤렘 전쟁을 묘사한다. 이 두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사울 왕의 결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의 핵심적 덕목이 순종이기 때문에 사울의 지속적인 불순종은 그를 하나님께 버림받도록 만들었다. 사무엘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15:26).
사울 왕에 대한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이새의 집에 보내어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다(16:1-13). 사울의 경우처럼 다윗의 왕위 등극 과정도 ‘지명-증명-확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것은 지명 사건에 해당한다. 다윗에게 있어 증명 사건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17장)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적인 블레셋으로 하나님도 이스라엘 왕의 사명을 ‘블레셋을 격퇴하는 일’로 말씀하셨기(9:16) 때문에, 다윗이 블레셋의 최고 장수 골리앗을 무찌른 것은 자신의 왕 됨을 증명한 최적의 사건임 셈이다.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친 후 최종적으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확증될 때(삼하5장)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이것이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이 사울을 포함한 일반 왕들의 그것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다윗이 경우, 증명과 확증 사이에 ‘고난’이 첨가 된다. 즉 다윗은 왕으로 확증되기 전에 오랜 고난을 거쳐야 했다 하나님이 다윗을 오랜 기간 동안 고난 속에 주신 이유는 그를 ‘순종하는 왕’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다윗도 처음부터 순종하는 왕은 아니었다.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왕이 된 것이다. 18-31장은 다윗이 보낸 고난의 세월에 관한 기록이다. 다윗이 사울의 궁에서 생활할 때(18-19장)와 궁에서 나와 도망다니던 초기(21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는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블레셋 망명에 실패하고 아둘람 굴로 들어온 다음부터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다윗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마다 즉각 응답하신다. 다윗도 그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다. 이처럼 다윗은 고난을 통해 점점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이 되어간다.
다윗의 고난은 사울의 사위가 되어 사울과 함께 궁정 생활을 하던 시절(18-20장), 궁을 빠져나와 유다 광야에서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시절(21-26장), 마지막으로 블레셋으로 망명하여 아기스 왕의 용병으로 생활하던 시절(27-31장)로 구분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무엘상 저자가 다윗의 망명 생활을 묘사하면서 사울에 대한 다윗의 특별한 태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을 처단할 힘이 있는 인물이지만(참조, 25장), 사울의 생명만은 철저히 존중한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얻지만 그때마다 사울을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라는 이유로 살려준다(24,26장). 또 아기스의 용병으로 사울과 전투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는 다윗의 충성심을 의심한 블레셋의 장군들 때문에 사울과 직접 교전하는 일을 면한다.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전투할 때(30-31장)도 다윗은 그곳으로부터 3일간 길이나 떨어진 유다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우고 있었다고 보고 함으로 다윗이 사울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강조한다. 한편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죽은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매달았는데, 길르앗 야베스인들이 사울의 시체를 거두어 화장하고 그 뼈를 에셀 나무 아레에 묻어주었다.
3.핵심 메시지
사무엘상은 신학적으로 매우 풍성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무엘상의 여러 일화들은 하나님 나라의 큰 역사가 삶의 작은 도잔들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녀를 낳을 수 없던 한나는 하나님마저 자신을 버린 듯한 절망 속에 있었지만, 그 절망에 머물지 않고 일어나(1:9) 여호와 앞에 서는 믿음을 보인다. 한나가 이렇게 믿음으로 얻은 사무엘은 단순히 한나 개인적 축복에 머물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축복의 통로가 된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킹 메이커가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나의 문제는 개인적이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그 문제에 진실한 마음을 사용하셔서 거대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신다. 우리는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는 과정과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는 장면에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이 삶의 문제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또 하나의 신학적 메시지는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하루 아침에’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을 호령하는 ‘전국구’ 선지자가 된 것은 아니다. 3장의 신현 체험 이후, 사무엘에게는 오랜 영적 성장의 과정이 있었다. 사무엘이 약 20년 동안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성실히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칠 때, 하나님이 그의 말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함으로 그의 영적 권위를 조금씩 조금씩 키워주셨다. 7장에서 사무엘을 통해 전국적 회개운동이 일어날 수 있던 이유는 지난 20여 년간 사무엘의 꾸준한 일상적 목회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은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 기간디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소명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의 길고 긴 고난의 세월이지만 다윗은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지도자로 훈련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다. 사울이 버림받고 다윗이 영원한 왕조를 약속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울은 처음부터 ‘모든 나라와 같이 되고 싶은’ 백성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왕이다. 그들은 힘 있는 부자로 살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세속 왕의 종이 되기로 자처한 것이다. 그런 백성들의 기대처럼 사울은 주변국의 왕들처럼 백성들을 다스렸다. 이는 그가 선지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반면 다윗은 오랜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왕’의 개념을 체화한다. 하나님이 사울이 아니라 다윗에게 영원한 왕국을 약속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순종의 왕은 고대 근동의 정치 철학에는 없는 개념이다. 왕은 정의상 ‘신성’을 지니며,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반면 순종의 왕은 자신이 신이 아니며 백성들의 ‘형제’임을 자각하는 왕이다. 그는 백성보다 자신을 높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자신을 높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일하는 존재다.
사무엘상이 교훈하는 ‘순종하는 왕’의 개념은 보편적 정치 철학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인간이 인간을 통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인간 통치자의 본질적 직무가 무엇인지를 교훈한다. 모든 인간 통치자-그를 ‘왕’, 대통령’, 혹은 ‘총리’ 로 부르든지-는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을 형제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통치 목적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롭고 선한 뜻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통치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며 그것을 교훈 삼아 더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성경적 용어로 말하면 ‘순종’, 즉 자기 뜻을 버리고 자기보다 높은 존재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유다가 ‘왕의 지파’로 축복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남 르우벤은 성적인 죄로 ‘정치적 리더’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시므온과 레위는 과격성과 폭력성 때문에 왕의 지파가 될 기회를 놓쳤다. 어떤 의미에서 요셉이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인 듯하나 성경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성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왕은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유다가 리더로 선택된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능력과 그 경험을 통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령 유다가 처음에는 동생 요셉을 팔아버리는 데 앞장서지만, 훗날 동생 베냐민을 대신해 스스로 인질이 되겠다고 자원하며, 성적인 죄를 저질렀을 때에도 가부장의 권위로 다말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룬다.
이처럼 사무엘상이 말하는 ‘순종하는 왕’은 단순히 다윗의 개인적 덕목에 머물지 않고 모든 이스라엘의 리더, 나아가 모든 세상 통치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덕목히다. 이 개념에 따르면 통치자의 핵심 덕목은 자신의 뜻을 꺾고 자신보다 높은 존재의 뜻을 따르는 능력, 환언하면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여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능력이다. 이런 덕목이 특히 통치자에게 중요한 이유는 통치자에게 그런 ‘순종’의 능력이 없을 때 그는 곧 하나님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순종의 통치자와 대처되는 신적인 통치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용납할 수 없는 개념인 동시에, 통치의 보편적 가치에도 위배되는 개념이다.
김구원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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