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생태학
발제 김지은
1.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
P17 나는 요리조리 여러 경로를 걸어보고 나만의 도보 출근길을 몇 개 마련했다… 모든 풍경은 내게 말을 건다… 지난 십년 가량 나는 그 대화를 즐기고 있다.
=> 일상 속 나만의 도보길이 있나요? 있다면 그 길에서 풍경과 어떤 대화를 나누곤 하나요.
땅이 메마른 이유
길을 나서며 자연에게 동네의 안부를 묻다
P 19 출근길에 만나는 나무들의 어려운 처지는 (….) 이어지는 길을 걸어보면 단박에 보인다. 그곳엔 같은 시기에 심은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세 줄로 서있다. 그 가로수 줄기의 굵기는 도로의 왼쪽과 오른쪽, 중앙분리대 순이다. (…) 이곳의 나무는 대부분 물 사정이 열악할수록 느리게 자라고 가물 때 잎이 빨리 시들며 가을에 단풍이 빨리 든다.
P20 중앙분리대의 사방은 아스팔트로 덮여 비가 올 때 물이 땅속으로 침투하기 어렵다. (,,,) 1번 가로수들은 (…) 숲 비탈에 내린 빗물이 땅속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려 1번 보도의 가로수의 뿌리를 적셔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웃한 세 줄의 가로수에서도 나무들의 행복도가 나뉘었다.
=> 풍경 속 자연물들을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이 있나요? 보도블럭, 중앙분리대, 배수로의 위치 등에 따라 식물의 생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껴본 적이 있다면 함께 공유해요.
느릅나무와 팽나무를 만나 되살아난 추억
현재와 과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다
P22 느릅나무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를 이어주던 끈이 되어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날 갑자기 내 오른쪽 허벅지가 부어올랐다. (…) 어른들은 가래톳이 섰다라고 진단을 내렸다. (…) 의사가 처방한 약을 할머니께서 정성껏 발라주셨으나 (…) 오히려 옆 부분을 살짝 누르면 상처에서 고름이 솟았다. 할머니는 나를 (…) 재너머 할아버지 의사에게 데려가셨다. (…) 그리고 빻아 바른 느릅나무 껍질이 효능을 발휘하여 상처도 어느새 아물었다.
=> 자연물, 나무와 얽힌 추억이 있다면 함께 나눠요.
=> 그리고 산 속에서 대체의학 지식으로 상처를 지유하고,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소박한 손길을 느끼는 즐거움
동네 풍경에는 사람들의 세월이 묻어 있다.
P26 내 발걸음은 차량과 소음을 피해 작은 길을 찾는다. (…) 허름한 판자들을 잇댄 깔판 위에 화분들을 늘어놓은 풍경이 푸근하다. 저렇게 꽃을 가꾸는 손길의 주인공은 얼마나 여유로운 마음을 지녔을까? (…) 어떤 연유로 보잘것없는 공간에도 흙을 마련하고 식물을 가꾸는 소양과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생기는 걸까? (…) 경험이 있기에 자투리땅에 채소나 화초를 심고 가꾸는 일이 쉽지 않겠는가. (…) 경험이 전수되지 않으면 풍경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 핵가족 구조에서는 가계를 통한 임무 이양 또는 대를 이은 저들만의 은밀한 가르침도 어렵다는 말이겠구나.
=> 동네마다 식물 혹은 텃밭을 잘 가꾸는 주민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중년 이상, 노년층 여성 분들이 가꾸고 있거나 중국집,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난초 등의 화초들을 멋지게 가꾸는 것 같아요. 그런데 2대로 물려 받고 나서는 화분을 몽땅 치워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구요. 도시에서, 세대를 이은 식물 가꾸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도시의 싱싱한 기운, 우리집 꽃밭
도시정원의 시작을 작은 화분에서
P32 메마른 도시를 수놓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가정집의 작은 화단 가꾸기 사업에 예산을 책정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실뿌리 같은 작은 공간들이 모여 조화로운 도시를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 수없이 작은 화단과 화분에서 물이 수증기가 되는 동안 도시의 열기를 식히고 공기와 땅의 오염물질을 제거할 것이다. (…) 하루하루 내 집 녹지를 가꾸고 즐길 수 있는 삶이 있다면 녹지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당연히 늘어나지 않을까? (…) 그 감성의 소유자가 주말에는 가까운 공원을 찾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더 큰자연으로… 위계적 경험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 저자는 녹지위계와 환경 회복탄력성이란 주제로 글을 발표했습니다. 뿌리의 위계성을 언급하며(굵은 뿌리는 실뿌리가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여건을 굳건히 지켜주는 소임이 있음. 인간세상에서 연륜이 쌓인 노인이 자식과 손자손녀 세대의 길을 닦아주는 이치와 비슷한 면) 비슷한 형식의 위계를 우리의 몸과 삶에서 찾았습니다. 저자의 주장과 상상에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