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지난주부터 기온이 선선해지고 들녘은 완연한 가을이다.
이달 초순에는 일들이 많아서 트레킹을 나오지 못하였다가
이번주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장흥구간을 걸어 볼 생각으로 출발했다.
오늘 구간은 26.5km으로 제법 먼거리이긴 하나 날씨가 시원하고
높은 산행구간이 없으니 사박사박 걸어 볼 요량이다.
-걸었던 날 : 2026년 9월 19일(토요일)
-걸었던 길 : 장흥구간 79코스(원등마을~상발마을~정남진전망대~회진면버스터미널)
-걸었던 거리 : 21.5km( 32,000보. 6시간)
- 누계거리 : 1,216.5km
-글을 쓴 날 : 2026년 9월 19일.(일요일)
이른 아침 아내를 깨우고 삶은 계란과 사과 그리고 식수를 챙기고
장흥군 회진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장흥군 읍내를 지나고 남녘으로 더 내려가는데 천관산(天冠山 723m)이 능선이 선명하다.
천관산은 내장산과 변산, 그리고 두륜산, 월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중 하나이다.
산의 정상부에 삐쭉삐쭉 솟은 바위의 모습이 천자(天者)의 면류관을 닮았다 하여 천관산( 天冠山)이라 부르는 산이고
가을이면 천관산 연대봉 주위로 가을 억새가 장관이어서 많은 등산인들이 찾는 멋진산이다.
나는 오래전 김정윤 선배와 하얀꽃이 만발한 억새평원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여
잠시 차를 멈추고 옛 기억를 꺼내 멀리서 산을 바라 보았고 사진 한컷을 찍었다.
천관산은 전라남도 도립공원이다.
장흥군 회진면에 도착하여 골목길을 걷는다.
오늘은 평소에 걸었던 순방향이 아니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농촌마을의 면단위 마을은 조용하고 사람이 드문데 회진면은 제법 소도시 다운 모습이다.
마트와 정육점,당구장과 다방,그리고 철물점과 농약상회,치킨과 호프집등의 친숙한 간판들과 아기자기한 옛 건물들이 정다웁다.
천관산 아래 넓은 간척지의 농토와 바다와 회진항구를 안고 있어서 작은 상가들이 유지되고 있는 면단위 소도시이다.
낮에 일을 하고 들어 온 사람들이 이 골목에서 친구를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상권이 더 이상 초라해 지지 않기를 바라며 골목을 지나갔다.
골목 외곽에는 추석 명절을 맞아 선출직대표들이나 지역 의원님,그리고 그 미래의 정치인들이 게첨한 현수막들이 현란하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 해 있는 회진항을 뒤로 하고
어느새 낙엽이 떨어져 가을이 한 없이 깊어가는 고개를 거슬러 올라 걸었다.
한재 고개는 국내 최대의 할미꽃 자생 군락지 가 있다.(현판글 참조)
할미꽃은 이른봄에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꽃이어서 흔하게 볼 수가 없는데
이곳에서는 군락 형태로 볼수 있는 곳이라 하니 봄철에 와 보고 싶기도 하다.
한재 고개는 할미꽃 형상의 조형물과 한승원과 이청준의 시비(詩碑)가 있어
작가들의 문학길 공원이기도 하다.
이 고개를 넘으면 회진면 대리 마을에 한승원 작가의 생가가 있다.
대리 마을 담장에서 작가의 언어를 읽는다.
누군가가 한 작가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바람을 이야기 했다고 했는데
담장의 짧은 글에도 바다와 파도.비늘 등의 단어가 눈에 띠었다.
어떤이의 말씀이 맞는 말이다.
한승원 생가의 모습인데 생가는 마을의 맨 윗집이엇다.
마당에서는 바다가 내려다 보였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파도를 보았을 것이다.
집이 맨 윗집이니 지나는 바람도 많이 느꼈을것 같았다.
그래서 나고 자란 환경이 숙명적 문학적 소재가 되고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슷한 환경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같은 감정을 갖는것은 아니니
한 작가의 내면적 언어들이 시(詩)가 되고 소설이 되었던것으로 생각된다.
생가 양철 지붕의 물받이가 녹이 슬고 무너져 내려 초라하고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남진 방조제 위를 걸었다.
바람이 몰고 온 밀물은 철썩이는 소리를 내고
파도와 같이 온 바람은 모자가 날라 갈 정도로 쎈 바람이다.
그러나 바람은 차갑지 않았고 온화했으며
오늘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반도의 정 남쪽 정남진(正南津)을 상징하는 정남진 전망대에 도착했다.
정남진은 서울에서 정 남쪽의 나루터라는 의미여서 해남군 송지면의 땅끝 마을과 의미는 다르다.
정남진 타워의 서사는 통일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조형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을 할까? 의문이다.
정남진 타워 9층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쉬어 간다.
원형 타워의 카페는 아담하지만 죽여주는 전망이다.
"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
" 오늘 정남진에 오길 참 잘 했다 "
"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이다"
이런 글귀들이 곳곳에 쓰여져 있어 기분이 좋았다.
어린 숙녀의 얼굴이 살짝 잡혔고(미안시리)
바다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섬은 금당팔경의 금당도이다.
상당한 시간동안 쉬었다가 다시 간척지 제방위의 길을 걸었다.
이 길은 지나는 차량도 없고 걷는 사람도 없으며 오롯이 우리 둘 뿐이다.
거리는 가늠 할 수 없지만 제방길은 상당히 길었다.(2~3km)
그러나 손님으로 오는 해풍은 기분좋은 친구였고
한 없이 깊은 창공은 기분을 째지게 해서 좋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중 절반쯤 걸었을 것이다.
정남진 해안도로 동두항에서 회진 택시를 콜하여
은여사는 승용차를 회수 하러갔고 나는 계속 걸어 사금해변을 지난다.
옛날 금을 채취했던 해변이엇을까?
해변 주위에는 굴 구이 하우스가 여러동 있으나 제철이 아니니 굳게 닫혀진 모습이다.
어느 해안도로 쉼터 모습인데 전망이 끝내준다.
맞은 편에서 홀로 걸어오는 중년 남성분을 만났다.
좀전에 안양에서 온 젊은 친구는 인사만 나누고 지나갔고 이번에는 인천에서 걸으러 온 중년분이시다.
길가에 서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보다 네살이나(현 70세) 많은 분이셨고 홀로 다니시며
오늘이 6일째 걷는중이라고 했다.
본인의 직업은 은행원이셨으며 퇴임후 걷기 시작하여 동해와 서해 그리고 동서 평화의 길(DMZ)을 다 걸으셨고
마지막으로 금년 4월에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오늘 이곳을 걷는중이라고 하신다.
그분은 대중교통을 타고 오셔서 7~8일씩 내리 걸으며 수시로 두개의 코스도 걷는다고 하셨다.
나는 오늘 또 한분 중원의 고수를 만나고 배운다.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프랑스) 를 닮은분이시다.
그분은 젊은 시절에는 등산조차 하지 않았고 걷는것도 좋아하지 않았으나
고질적 허리 디스크(비숫한)를 이겨내는 것은 걷는것이 유일한 치유라고 믿고
걷기 시작하여 국내의 온갓 둘레길을 걸으셨고 이제는 코리아 둘레길이 완보 단계에 도달하셨다.
생각과 신념이 중단없이 몸을 움직이게 했고
어느 순간 근육이 만들어져 고질적 디스크 통증이 많이 사라져서
그렇게 긴 시간동안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었을거라 생각된다.
길에서 인생 스승 한분을 만난 기분이다.
사진이라도 한컷 찍자고 할 걸 말하지 못한것이 조금은 후회스러웠다.
혹여 내일 마량으로 가는 길에 만나면
차라도 한잔 나누고 싶다.
5월 고흥지역을 걸을 때 벼 모내기가 한참이엇다.
그런데 이제 들판은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녘이다.
세월은 빠르고 생명은 그렇게 반복적으로 윤회하는 것이니
조급해 할 필요가 없으며 순리대로 살아가야 할 일임을 느낀다.
들녘의 벼는 잘 익어가고 있었고 쓰러진 벼가 없어 다행이다.
차를 회수하여 돌아온 아내를 만나고 상발마을에 도착하여 오늘 트레킹을 끝내기로 한다.
오전 8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하여 6시간째 걸었다.
걸으면서 두곳에 남파랑길 리본깃발을 케이블 타이로 메어 주었고
몇곳은 나무가 자라서 리본이 가린 가지를 정전 가위로 가치치기를 하고 걸었다.
미국의 PCT에는 수 많은 엔젤분들이 계신다고 들었다.
그분들은 평범한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천사라 부른다고 했다.
나의 정전가위질이 뒤를 따라 걷는 누구나에게
선명한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바램이다.
나는 코리아 둘레길이 명품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래서 지역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갖기 바라고 걷는 트레커들도
엔젤의 마음가짐으로 길을 사랑하며 걷기를 바래 본다.
그리고 장흥 수문항으로 이동해서 점심식사 할곳을 골랐다.
시골에서는 식당이 많치 않으니 선택지가 많지 않아 깨끗한 건물을 골라 들어갔다.
마침 전어철이어서 전어 회무침으로 밥을 쓰싹 비벼 먹으니 부러울것 없는 맛난 점심이다.
그리고 맥주를 두어잔했더니 속이 시원하고 피로가 싹 가신다.
수문항 "장흥 갯마을 식당"의 음식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광주로 돌아왔으며 내일 다시 출발하여
장흥 회진마을에서 강진 마량항까지 걸을 예정이다.
2026년 9월 19일 걷고 저녁에 글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