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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無湖南 ~~~~是無國家
이순신장군 말씀을 정치에 활용한 김대중 전대통령 호남사람들이 "호남이 없으면 나리가 없다"는 말을 자주인용한다. 若無湖南 ~~~~是無國家 아무리 호남이 정치에 매몰되었다해도 정치인의. 정치적수사와 군사전략가의 멘트정도는 구분할 줄알아야한다. 6.25때 맥아더장군은 낙동강전선이 무너졌다면 인천상륙작전도 없었다고 했다 장개석은 변두리 동북3성을 차지하면 중국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히틀러는 영국을 굴복시키려면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본토를 공격하는것보다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끊으면 인도로부터 물자가 끊기면서 영국은 저절로 굴복한다는걸 알기에 롬멜을 아프리카전선에 투입하는 전략가적 기질을 보였다. 제갈공명도 기산을 점령하면 위나라의 뒷덜미를 잡는거라고. 범인의 눈으로 쓸모없는 산악지대의 전략적 요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듯이 이순신장군도 곡창지대로서 호남의 보급과 군량미를 강조했건만. 어디서 덜떨어진것들이 이순신장군을 팔고있다 제발 호남 사람들은 억지좀부리지마라 자존심도 없나? 이순신장군을 정치인으로 격하시키면서까지 고향 호남을 띠우고싶니? 이 꼬라지를 보고있는 덕수이씨 후손들이 어이없어한다 장군께서는 지역갈등조장 이나 하는 더러운 속물 정치인이 아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위대한 군사전략가이며 망조가든 조선왕조에 충성을 맹세한 충신일뿐이다 자신의 잇속을 차리기위해 특정 지역 주민에게 아부하거나 왕이 무능하다해서 배반을 밥먹듯하던 소인배가 아니다 호남인들은 이순신장군을 더이상 왜곡하고 모욕하지마라 김대중 전대통령이 2006년 10월 29일 전남 도청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는 말을 적었다. 그는 잠시 후 “방명록을 다시 가져오라”고 한 뒤 ‘이 충무공 왈(曰)’이란 말을 추가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이 말의 의미를 [호남이 없었으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란 뜻으로 해석했으며 이후 많은 호남인들이 이 말을 즐겨 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충무공의 이 말씀은 그리 해석되는 문구가 아니다. 약무호남시무국가의 정확한 해석 약무호남시무국가의 정확한 뜻은 [호남이 없었으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가 아니라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호남을 잘 방어해야 한다)일 뿐이다. 주지하듯이 충무공은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가 아니라 정확하게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라고 했다. 이 말의 출처는 ‘발해고(渤海考)’의 저자 유득공(柳得恭)이 1795년(정조 19년) 왕명에 따라 편찬한 이순신 장군의 문집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끝부분 서간문 모음집에 실려 있는 충무공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낸 날짜는 1593년(선조 26년) 7월 16일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의 글을 보자. 서애 유성룡의 서애문집에 나오는 말이다. 이 문장은 조선왕조실록 선조 30년(1597년) 9월 20일 기사에 아래와 같은 원문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然其小邦形勢所在, 則全羅、慶尙二道, 最爲關重, 蓋慶尙門戶, 而全羅府藏也。 無慶尙則無全羅, 無全羅則雖有他道, 小邦終無所資以爲根本之計。 斯乃賊所必爭, 而我所以守之。 또한 같은 사이트에 이렇게 국역되어 있다. "그러나 소방의 형세를 말하다면 전라•경상 2도(道)야말로 가장 중요하니, 경상도는 문호(門戶)이며 전라도는 부장(府藏)이기 때문입니다. 경상도가 없게 되면 전라도가 없게 되고 전라도가 없게 되면 다른 도가 있어도 소방은 끝내 의거하여 근본을 삼을 만한 계책이 없게 되니, 이곳이야말로 왜적이 반드시 쟁취하려는 곳으로서 우리가 그곳을 지키려고 하는 까닭입니다." 이 글을 보면 무경상즉무전라(無慶尙則無全羅)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나? 무경상즉무전라(無慶尙則無全羅)와 같은 구조 서애문집과 조선왕조실록의 이 구절 하나만 달랑 떼 놓고 해석하면 "경상도가 없었더라면 전라도도 없었을 것이다" 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도 없을 것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둘 다 가능한 풀이이고 틀린 점은 없다. 한문은 그 자체에 과거형이니 현재형이니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문은 문맥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만 그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경상도를 잘지켜야 전라도를 잘 지킬 수 있고, 전라도를 잘지켜야 나라를 잘 지킬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하는 게 전체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게 올바른 한문의 해석 방법이다. 약무호남시무국가는 단순히 호남을 방어하지 못하면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말일 뿐이다. 이 문장은 "호남이 없었더라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가 아니라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을 것이다" 라고 해석해야 한다. 무경상즉무전라(無慶尙則無全羅)가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가 없다, 즉 전라도를 보전하기 위해서 경상도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이듯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는 전라도가 없으면 국가가 없다, 즉 국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전라도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일 뿐인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말은 호남의 우국충절을 표현했다든가 호남의 공로를 예찬했다든가 하는 등의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제대로 된 원문 해석글 ]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전체 원문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편지 원문을 문맥에 따라 모두 읽어 보도록 하자. ...... 竊想湖南國家之保障(절상호남국가지보장) 若無湖南是無國家(약무호남시무국가) 是以昨日進陣于閑山島以爲遮海路之計(시이작일진진우한산도이위차해로지계)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是以)어제 한산도에 진을 옮겨서 진치고 이로써 바닷길(海路)을 차단할(遮) 계획을 세웠습니다.... 약무호남시무국가 다음에 나오는 是以란 단어는 "그래서, 그러므로, 그런 까닭에"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즉 앞의 말이 뒷말의 근거가 되는 연결 접속사이다. 예를 들면, 兪得罪, 笞常痛, 今母之力, 不能使痛. 是以, 泣 (죄를 지어 매를 맞을 때 늘 아팠는데, 지금 어머님의 기력이 아프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인 것은 아래에 처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是以 欲上民 必以言下之 (그런 까닭에 백성들 위에 서려고 하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하고) 欲先民 必以身後之 (백성들 앞에 서려고 하면 반드시 몸을 뒤에 두어야 한다) 是以라는 연결사가 붙는 문장의 해석상 이순신은 호남마저 잃으면 국가를 지키지 못할 것이란 판단을 했으며 "그래서"호남을 지키기 위해 한산도로 진을 옮겨 가서 바다를 차단할 생각을 했다고 보는 것이 분명히 옳다. 문장의 바로 직전의 내용은 "저는 괴로운 진중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여 지위가 정헌(正憲)에 오르고 보니 감격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등의 약무호남시무국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귀여서 고려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이순신이 이 편지를 썼던 1593년 7월 16일은 같은 해 6월 29일의 제2차 진주성 전투의 결과 진주성이 무너진 직후의 시점이다. 왜적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전라도로 물밀듯이 진격할 계획이었으며 이순신은 견내량을 앞에 두고 해로를 막아 전라도로 향한 왜군의 진격을 막을 계책을 세웠던 것이다. (이순신은 한산도로 진을 옮겨 왜적이 호남으로 가는 길을 차단할 전략을 세웠다) 이순신장군의 이 서간문은 "충무공 이순신 전서"(박기봉 편역, 비봉출판사) 제2권 78페이지에 그 전문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전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 전하께서 쾌차하시게 된 것은 신하와 백성들의 경사(慶事)이므로 기쁜 마음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난리를 치른 후 그리운 마음 간절했는데, 뜻밖에 이번 하인 편으로 이달초에 띄워 보낸 편지를 받아 급히 뜯어서 읽어 보고 위로 받음이 평상시보다 배나 되었는데, 하물며 종이에 가득히 실린 말씀이 정중하기까지 하니 오죽하겠습니까.가을바람이 들판으로 불어드는 이때에 살피건대 기거(起居)에 한결 더 조심하고 계시는지 일일이 다 말씀 여쭐 길이 없습니다. 저는 괴로운 진중(陣中)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여 지위가 정헌(正憲)에 오르고 보니 감격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 그래서 (호남을 지키기 위해) 어제 한산도로 진을 옮겨서 치고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런 난리중에도 옛정을 잊지 않고 멀리까지 위로해 주고 또 겸하여 여러가지 선물까지 받고 보니, 모두가 진중에서는 진귀한 물건 아닌 것이 없어서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에야 전쟁을 끝내고 평소퍼럼 따라서 같이 놀고 싶어하던 정회를 싫컷 풀어볼 수 있을는지요. 막상 편지를 쓰려고 종이 앞에 앉으니 공연히 슬픈 생각만 간절해집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마음이 산란하여 이만 씁니다.』 -계사(1593년) 7월 16일 -<답지평현덕승서(答指平玄德升書)> 위 원문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이순신 장군은 호남을 지키는 것은 전략상 매우 중요하므로 호남을 지키기 위해서 한산도로 진을 옮겨서 쳤다고 말을 하고 있다. 저 문장 그 어디를 보아도 전라도 덕분에 국가를 지켰다는 뜻은 아니다. 약무호남시무국가는 전략상 요충지로서 지정학적으로 호남 방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 그 이상의 의미는 결코 아닌 것이다. 경향신문 조운찬 문화1부장의 지적 경향신문 2006년 11월 28일의 기사는 이 잘못 알려진 해석을 분명히 지적하며 문장의 왜곡을 경계하고 있다. 경향신문 조운찬 문화1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 삼가 생각건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장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어제 한산도에 진을 쳐 바닷길을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400여년 전, 충무공이 진중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말은 ‘호남 예찬론’도 아니요, 호남에 대한 밀어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호남을 사수하지 않으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파죽의 기세로 경상, 충청, 강원을 유린하고 도성마저 함락시켰다.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이때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은 마지막 남은 호남을 국가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국가의 군량이 모두 호남에 의지하고 있으니, 호남이 없어진다면 국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옛글은 문맥 속에서 이해할 때 제 뜻이 살아난다. 한 두 구절만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멋대로 사용한다면 뜻이 왜곡될 뿐 아니라 선현의 정신마저 훼손된다. 』 김대중 대통령이 문장의 일부분만 단장취의하여 의도적으로 왜곡했는지는 알바 없으나 최소한 부주의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약무호남시무국가에 대한 곡해는 한문은 시제가 없으므로 앞뒤 문맥을 살펴서 해석하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해석자가 한 구절만을 편의적으로 떼 와서 자의적으로 풀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라도 방어를 잘 해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졸지에 전라도 덕분에 국가를 지켰다는 말로 어이 없이 둔갑해서 유포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 말은 여기저기 언론에서도 말도 안되는 엉터리로 인용되고 있다.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는 2005년 6월 26일의 한겨레신문 칼럼 "약무호남시무노통"에서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45381.html) 『 ...호남에서는 친노나 반노가 아니라, 용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한 말로,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건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그야말로 어림짐작으로 쓴 웃기지도 않는 칼럼이다. 문구의 해석은 그렇다 치고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는 1593년 7월 16일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서간문에 나온 것으로 이충무공전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명량대첩은 1597년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5일) 정유재란 때 있었던 해전일 뿐이다.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언론이든 지도자이든 선열의 말씀을 인용할 때는 사실관계와 본의를 살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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