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들이 베풀어준 칠순 축하이벤트
소정 하선옥
지난번 나의 칠순 생일에 필자는 친정 조카들에게 분에 넘치는 축하이벤트를 받았다. 제일 큰 조카가 저녁이나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고 아무 준비 없이 그냥 가족끼리 식사나 하는 것으로 알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약속 장소에 가서 차려진 밥상 앞에 앉자마자 조카들은 우르르 일어나 밖으로 나가길래 저희끼리 무슨 할 얘기라도 있거나 남자애들은 담배라도 피우려고 나갔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벤트 풍선 아크릴에 <항상 10대 소녀같이 아름다우신 하선옥 여사님! 인생은 70부터 반짝반짝 빛나게 130까지 갑시다. 가족 일동> 이라는 글을 새긴 휘장 막을 벽에 붙이고 ‘세월아 너는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너를 잡을 것이기에 사랑해(♥)’라는 글을 새긴 분홍 리본을 단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윗부분에 연분홍 작은 장미꽃 송이로 촘촘히 장식하고 둘레에는 5만 원권 지폐를 둘둘 말아 삥 두른 커다란 케이크를 내 앞에 뚝딱 차려 내놓는 게 아닌가! 살아오면서 나에게 이런 일이 꿈에서라도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집안에 맏이로 태어났지만, 생전에 배불러 애 낳아 본 적 없어 ‘그냥 남 하는 입덧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원이 없겠다’ 생각하며 임신한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형제·자매들이 아이 낳아 기를 때 나는 먼 산 바라보듯 살았고, 그 아이들이 병치레로 입원이라도 하면 그냥 빼꼼 얼굴 한번 내비치고 살았다. 내 자매들이 젖 먹이고 기저귀 갈면서 밤잠 설칠 때 나는 아침 늦도록 자면서 게으른 손끝으로 겨우 내 입에 넣을 밥만 지어 먹고 살았다. 그 조카들이 커서 학교 갈 때 도시락 챙기고 학원비 걱정할 때 나는 겨우 쥐꼬리만 한 용돈 한두 푼 내밀고 살았다.
그런 그 아이들이 벌써 어른으로 장성해서 결혼도 하고 또 자기 몫을 다 하면서 열심히 살더니 며칠 전 [음력 구월 스무닷샛날] 나의 칠순 생일날에 너무 멋지고 감동적인 못 잊을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순간을 감동이라 말할 테지만 나에게는 숫제 이런 표현이 모자랄 정도였다. 감동의 단계를 훨씬 뛰어넘는 정도여서 메말랐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솟아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을 겨우 참았다. 자리를 박차고 골목길로 뛰어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질하고 싶을 정도였다.
평소에 내 또래의 이웃들이나 친구들이 가족이 베풀어 준 본인의 칠순 잔치를 자랑하는 것을 볼 때면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나는 '애들 키우느라 수고한 일 없으니 이런 걸 부러워할 자격이 없지' 자조하듯 쓴웃음 지으면서도 내심 너무 부러웠었는데, 오늘 나는 세상 그 어느 것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오늘 이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을 때, 같이 슬퍼하고 이모나 고모로서 그들 뒤에 서서 묵묵히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외로울 때 거리감 없이 기댈 언덕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으며, 남에게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속사정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의논이라도 해 오면 그 애들의 생각을 들어 주고 의논 상대가 되어 줬을 뿐이었다.
그들의 성장통과 눈물 보자기를 대신 짊어준 것을 알아준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였다. 돌이켜 보니 그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내 삶의 발자취가 하나도 헛되지 않았음을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 오늘 그 아이들이 ‘이 고모가 이 이모’가 외로울 그거로 생각하여 매달 조금씩 모은 돈으로 이런 멋진 날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인 삼 년 후 외삼촌 칠순을 위해 또 다른 준비를 시작하는 듯 보였다. 내 마음으로 보듬어 키운 이들 형제간의 갸륵한 사랑과 그 정성은 세상 그 어떤 선물과도 견줄 수 없는 지극한 마음이었다.
‘사랑한다.’ 내 조카들! 내 강아지들. 오늘 받은 선물도 고맙지만, 너희들의 마음 씀씀이와 따뜻하고 정겨운 마음들이 나는 더 고마웠다.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각박한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면서 집안 대소사와 가족들의 기념일을 챙기면서 훤훤장부로 살아가는 것에 고마울 뿐이었다. 아름답고 고운 심성을 가진 내 조카들이 내게 베풀어준 가슴 벅차게 감동적인 오늘의 칠순 이벤트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노년의 추억으로 길이 간직할 것이다.
2023년 11월 8일 행복이 가득한 날에
첫댓글 생각지 않은 선물을 받았을때가 더 큰 기쁨으로 다가 오지요.
늦었지만 저도 축하의 말씀을 보냅니다.
선생님에게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여자로서 큰 아쉬움이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평소 선생님이 베푸셔서 또 그런 행복을 얻게 된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