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4일 하늘언어교회
본문: 시편 23편
1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겠습니다.
제목: 무한자원이신 하느님
새해부터는 성경적 삼분법에 따라 하느님 명칭을 세 가지로 칭하겠습니다. 원래 우리 하늘교회의 특성 중 하나가 하나님 대신 하느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개신교에서 오래도록 하나님을 사용하다 보니 적응이 안된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하나님을 사용해 왔습니다.
하늘 진리는 어떤 특정 종파에 귀속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나 가톨릭의 전통을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드러난 하늘나라 전통을 따르는 것이 복음진리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은 늘 하늘 진리를 주고싶어하시는데 인간은 늘 진리를 율법화, 교리화, 종교화해버리는 오류를 저질러 왔습니다.
성경적으로 좋은 방법은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세 가지를 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선 개신교 성경에 표기된 ‘하나님’은 엘로힘인데 이것은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타당합니다. 대신 ‘여호와-야웨’는 그 이름을 직접 발음하지 않고 주님이란 뜻으로 아도나이를 쓰는게 유대전통인데 한국식으로는 유일신론적 호칭인 하나님이 낫다고 봅니다.
새번역의 문제는 여호와로 표기된 부분을 주님으로 옮긴 것입니다. 원어에 주님으로 표기된 부분만 주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외에 성경적이라기보다 보편적 신성을 나타낼 때는 ‘하늘님’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늘님은 ‘조율’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명칭이죠.
이렇게 새해부터는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을 전부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새번역이어서 주님이 남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바꿨습니다. 주님은 한국인의 정서에는 익숙치 않아서 하나님이 더 본래 어감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시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인간 목자는 한계가 있어서 힘이 부치는 적을 만나거나 양이 추락해서 죽는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 목자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십니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의의 길로 인도하심, 사망의 골짜기에서 지켜주심, 원수들이 구경하도록 잔칫상을 차려주심, 기름을 부어주시고 잔을 넘치게 하심, 평생 변함없이 선하시고 인자하심으로 함께하심, 결국 영원히 그분 품에 거하게 하심 등 불안하고 연약한 인간이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목자로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무한한 매력과 완전하심 때문에 한번 하느님과 돈독한 관계가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반석같은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죄를 제외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태양, 공기, 물, 동물과 식물 음식, 인간친구, 생활의 편리를 위한 도구 등 모든 좋은 것이 전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극심한 추위로 얼어죽거나 중한 산소부족으로 죽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외로움으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전부 자기가 소유하고 남들에게는 돈을 받고 팔거나 접근을 금지하는 악습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사서 누리면 되지만 돈도 없고 장애 등으로 노동력조차 없다면 아무것도 원하는 대로 사용하거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느님 사랑이니 은혜를 운운하는 것은 굉장히 공허하고 삭막하고 무기력한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데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믿기만 해라, 외롭다고 부르짖는데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지 않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반복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무한자원이신 하느님을 이름뿐인 공허로 전락시키는 행위입니다.
한번은 지인 목사님댁을 방문해서 목사님의 아버님께 안마를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자기 아버지는 안마를 싫어하신다며 사양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기회가 있어서 안마를 해 드리니 아주 시원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왜 그러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이 속으로는 원하지만 겉으로는 미안해서 사양하시는 것을 문자 그대로 진심인줄 알고 그랬는지 어릴때 술을 마시고 괴롭혔던 아버지에 대한 상처 때문에 그랬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나이를 먹어서 노인이 되면 약자로서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이니 안마도 해드리고 잘 돌봐드려야 마땅한 일입니다.
노인뿐 아니라 장애인 등 연약한 이들은 어려서부터 무언가에서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디 갈때 쟤는 데려가지 마, 먹을것을 나누어 먹을 때 쟤는 주지 마, 놀이를 할때 쟤는 못해 쟤는 됐어... 이런 설움과 차별을 밥먹듯이 당한다면 평생 한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차별을 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약자를 괴롭히지 말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라고 수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살고 실천해야 비로소 우리 모두에게 푸른 풀밭이 펼쳐지고 쉴만한 물가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어떤 자원도 특정인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햇빛, 공기, 땅, 비, 동식물 등 모든 것을 악인과 선인에게 차별없이 주셨습니다.
현대인의 수많은 문제와 질병들은 무한자원으로부터 소외되고 차단당한 소외와 고립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원을 주셨을 뿐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무한자원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창조세계의 자원을 총체적으로 활용하면 온 인류가 풍족하게 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원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 세계에서는 여의치 못하므로 교회 안에서라도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럼 차별이 있는 현상계에서는 계속 불평만 해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약자들에게 차단되고 제한된 자원들이지만 작은 것들에도 전체가 들어 있기 때문에 가난 속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풍요를 누리려면 바로 무한자원이신 하느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느님과 깊이 교류하고 소통하고 동행할 때 완전한 충족과 무한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갑진년 한해는 인생을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일구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갑진년을 값진년으로 가꾸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하느님이 주신 무한자원을 총동원해서 삶의 현장에 하늘나라를 실현하시고 하느님과 깊은 관계와 신뢰를 통해 정신적인 충만과 하늘의 기쁨을 깊이 맛보는 은혜를 체험하십시오. 그래서 모든 약함과 우울과 소외와 고립을 치유받고 영육간에 강건한 하늘나라 자녀들로 성장해가시기를 두손모아 축원드립니다.
교회소식
1. 새해맞이 성경읽기
새해를 맞이해서 예배 후에 함께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선 창세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을 목표로 당분간 계속 하겠습니다.
읽을 분량은 상황에 따라 조율하면서 이어갈 것입니다.
2. 다양한 놀이와 랭킹
놀이문화가 워낙 저조하기 때문에 우리공동체는 놀이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보고 계발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젠가로 내기를 해볼까 합니다.
젠가를 쓰러뜨릴때마다 1000원씩 내서 일정액이 모이면 저녁을 사먹는 것이 어떨까요?
만일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격차가 많이 벌어지면 도중에 비장애인들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해보는 식으로 조정을 할 수 있습니다.
3. 손카친 활동개시
제가 카톡을 할 수는 있지만 점자단말기로 하기가 익숙치 못해서 아내를 통해 외부와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감각장애인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손벗님들과 단톡을 만들거나 개인톡으로 보고 듣는 세계를 나누고자 합니다.
단톡은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끼리 만들되 감각장애인을 적어도 1명 이상 초대해서 그 사람의 상황에 맞게 카톡으로 섬겨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예로 든다면 저와 아내를 중심으로 단톡방을 만들고 각 사람의 사정에 따라 좋았던 일, 길에서 만난 예쁜 가게 이름, 유행하는 신조어 등 각 사람의 사정에 따라 원하는 만큼 올려주시면 됩니다.
올리는 간격은 며칠, 몇주, 한두달 등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환영합니다.
저의 활동지원사님들은 하루에 1,2차례 정도 보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내용과 선택은 무한입니다.
서로 취향을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분량, 간격, 내용 등을 조율해 가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 만화를 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어릴때 읽었던 만화책 제목을 보내주시거나 기억나는 장면을 보내주시면 아주 좋아합니다.
또는 현재 보고 있는 드라마 제목, 장면이나 대사 등을 짧게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단톡이 번거로우면 개인적으로 톡을 주셔도 좋습니다.
반응은 점자단말기가 켜져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아무 반응이 없어도 본인의 페이스에 따라 이따금씩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단톡은 우선 하늘손벗단톡부터 만들고 여기에서는 주로 모였을때 돌아가는 상황을 모든분들이 통역을 해주신다고 생각하고 톡을 주시면 됩니다.
제 정식 통역자가 공석이어서 예배가 끝나면 소통보다는 자유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제가 리더인 이상 최소한의 소통은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목요일에 모였을때는 모든 분이 저의 통역자라고 생각하시고 현재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분위기와 상황이 어떤지 등을 올려주시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카톡으로 상의도 해주시고 그러다가 필요하면 정식으로 노트북으로 소통할 수도 있습니다.
단톡은 단체마다 따로 만들되 반드시 저 또는 다른 시청각장애인들을 적당히 초대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감각장애인 당사자와 소통의 끈을 놓치 않고 교제해서 서로를 더 자세히 알아가고 함께 성경정신을 실천해서 하늘나라 확장에 이바지하기 위한 발걸음을 이어가야 합니다.
4. 헬렌켈러와 설리반 대신 삼관인과 손벗으로 순화
제가 초창기에 다음카페를 개설했을때는 당사자를 헬렌켈러 회원이라 하고 비장애인은 설리반 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관행이 되어 지금도 여러 단체에서 헬렌켈러니 설리반이니 하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초창기에 국한해야지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자주성을 손상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한국의 시청각장애인인 제가 손수 만든 한국적 호칭으로 순화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청각장애인은 헬렌켈러 대신 삼관인으로 부르고 비장애인은 설리반 대신 손벗으로 불러 주십시오.
물론 손벗은 쓰임에 따라 비장애인뿐 아니라 시각단순장애인, 청각단순장애인, 시청각장애인끼리의 친분 등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새해 첫 예배와 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 누리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