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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거듭나야만 하겠다
2025년 1월 26일 / 요한복음 3:1-8, 16
요 3:1-8 / 어느 날 밤이 이슥할 무렵 바리새파에 속한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께 회견을 청해 왔다. “선생님,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선생님을 보내신 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이신 표적이 그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말하였다. “무슨 뜻입니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태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7) 그러니 내가 네게 새롭게 다시 나야 한다고 한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8) 마치 네가 바람 소리는 듣지만 그것이 어디서 불어온 것이며 또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와 같다.”
요 3:16 /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세례받고 ○○교회 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듭난 사람(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다.
마 12:21, 47-50 / 21)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붙들어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막 3:21-22 /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귀신들렸다> 함일러라). 47)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계십니다.’ 하고 전하자 48) 예수께서 물으셨다.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 49)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보라, 이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왜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고 물으셨을까? 또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보라, 이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하셨을까? 이는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무시하려 하심이 아니다. 이미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공생애(公生涯) 즉 사명의 길을 걸으시기에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2012년 예장(합동) 전국목사장로대회(목장대회)에서 부산 수영로교회 고(故)정필도 원로목사가 목장대회 둘째 날 ‘교회를 세우는 장로상’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한국교회에 거듭나지 못한 목사ㆍ장로가 많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절대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도 없다. 마귀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이 최우선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거듭남’으로 거듭남을 무시한 채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맡고, 봉사를 한다 해도 결국 하나님 심판에서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자기 쇄신(刷新 -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함)의 개념으로 쓰는 용어가 아닌 매우 심오하고 중대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정필도 목사는 강하고 단호하게 한국교회의 ‘수두룩한 목사, 장로들, 집사들’이 바로 불 못에 들어가게 되는 저주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인즉, 그들은 그야말로 거듭나지 않고 교회놀이나 하다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외친 것이다. 그러나 어디 목사와 장로들뿐일까? 그 교회의 집사들, 권사들, 일반 교인들 역시 거듭나지 않는 한 『지옥의 저주』(마 23:33)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 세례 요한도 마태복음 3장에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경고를 하였다(마 3:7-10).
▶ 예수님도 요한복음 8:31-41에서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에게 폭탄과 같은 충격적인 지적을 하셨다.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유대 민족의 창시자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과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룩한 약속을 근거삼아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 천국백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는 육신의 혈통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것 같이 믿고,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같이 순종하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이다. 사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가릴 것 없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요 1:12-13 /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3)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혈통이나 육체적 욕망이나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의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삭과 이스마엘이다. 이들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는데, 각각 배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은 계집종으로서 애굽 출신으로 사라의 하녀였고,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자유하는 여자로서 아브라함의 아내였다. 두 아이는 자연히 그 어머니의 신분을 좇게 되는데, 이스마엘은 종의 신분으로 이삭은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또한 그 둘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태어났는데, 하갈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이스마엘을 낳고 사라에게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자연을 초월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이 태어났다(히 11:11). 거듭나지 않은 교인을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육의 사람이라면, 거듭난 성도는 하늘 도성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 이 땅에 나그네로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에 가기를 사모했다(히 11:13-16).
■ 무디와 같은 대부흥사였던 휫필드는 청년 시절에 죄악 가운데 깊이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음이 온통 시꺼먼 죄악으로 물들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지 못했다. 먼저 그는 자기부정을 애썼다. 모든 사치를 마음으로부터 거부했다. 누더기 옷을 입고, 가장 조야(粗野)한 음식을 먹었으며, 일주일에 이틀간은 금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었으며, 밤마다 기도로 지새곤 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이 헛일이었다. 아무리 해도 마음의 평안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요한 웨슬레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서 「영혼 속의 하나님 생명」이란 책자를 얻었다. 이 책을 읽은 휫필드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매달렸고 성령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들어오셔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목사가 된 휫필드가 세례받은 신자들에게까지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설교했기 때문에 다수의 교회들은 자존심이 상했으며 분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조지아에서 돌아온 휫필드는 교회들에서 거부당하고 밀려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설교할 때마다 곳곳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몰려 왔다. 설교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가게 주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왔고, 농부들은 농기구들을 다 버려두고 설교를 들으려고 모였고, 사업가들은 사업하는 일을 잊을 정도로 설교에 심취하였다. 그때마다 전한 메시지는‘네가 거듭나야만 하겠다’는 것이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리들과 달리 기도도 많이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니고데모는 무엇인가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니고데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님,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선생님을 보내신 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이신 표적이 그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를 표했듯이, 예수님이 베푸신 많은 표적에 놀라면서 무엇인가 가르침을 받으려고 온 것이다.
요 3:3-6 /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말하였다. ‘무슨 뜻입니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태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 자신이 지식적, 도덕적, 세상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지적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변화는 도덕적, 지식적, 교양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뇌 개조 즉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고 가르쳐주시는 것들을 마음에 담고,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처럼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치관이 변화되어야 하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목표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거룩한 영에 붙잡혀 세상 사람과 다른 가치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거듭남의 의미이다.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한다. 어머니의 임신과 해산의 고통으로 태어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 20세기말 미국 기독교의 통계에 45%는 ‘자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나는 이 통계를 믿지 않는데,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럼 한국교인들에게 거듭난 사람 손을 들라면 몇 %나 될까? 눈치를 보면서 30%-40%가 손을 들었다(남이 드니 나도). 열심이 있는 교회에서는 70-80%가 손을 들었다(남에게 질 세라). 고양시에 있는 ◯◯교회에서는 90% 이상이 손을 들었다(거듭난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과연 그럴까? 정말 그렇게 많이 거듭났으면 좋겠다. 안타까운 것은 환상 중에 보여주시는데 200명 교인이 있는 교회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이 5명 보이더라는 심각한 말을 했다.
거듭남에 관해 나름대로 이해하도록 쓴 곳이 요한복음 3:1-15인데, 예수님은 여기에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는 말을 3번(3절, 5절, 11절)이나 하셨다.
3, 5, 11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거듭남이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나는 것이며, 왜 거듭나야 하는지?’에 대한 3가지 질문에 대해서 매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앞세우며 대답을 해주셨다.
1. 사람들이 꼭 거듭나야 하는가?(1-3절)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답은 명확하다. 사람은 누구나 거듭나야 한다는 것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 지식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보다 부족하여도 그것 때문에 지옥갈 일은 없다. 그러나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큰일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거듭남은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나는 것이며, 거듭남이 왜 필요한가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❶ 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는 이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이지만,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라고 할 때에 원어인 헬라어는 단수가 아닌 2인칭 복수와 수동태로 되어있다. 즉 자력(自力)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니고데모뿐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 즉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다 거듭나야 하겠다는 의미로 하신 것이다.
❷ 3절 전반에서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서두로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truly truly)’라고 말씀하실 때는 특별히 중요한 말씀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모든 성경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말씀은 극도로 중요하다. 예수님이 특별히 거듭나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신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❸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5절에서는 좀 더 강하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죽은 후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기간 중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기적들은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서론으로, 가장 큰 기적은 거듭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며 천국에도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❹ 예수님이 말씀하신 상대는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나라의 모든 문제를 통치하는 최고 의결기관(국회)인 산헤드린이 있었다. 산헤드린에는 70인의 관원이 있었는데, 니고데모는 그 중의 한 명이었다. 10절에 보면 예수님도 니고데모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셨는데, 여러 선생 가운데 한 선생인 ‘a teacher’가 아니라 정관사를 사용한 ‘the teacher’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수많은 선생이 있지만 니고데모는 ‘탁월한 선생이요 최고의 선생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앞에 두고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감히 나이도 훨씬 많은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2.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4-8절)
이 질문에 대해서 4절과 8절이 대답하고 있다. 예수님이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시자 니고데모가 4절에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3:5-6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육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거듭남이라는 다른 말로 하면 ‘중생(重生)’이란 말인데, ‘중생’이란 명사로 서술형으로는 ‘거듭난다’는 말로 쓰고 있다. 베드로전서 1:3에 보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고’라고 하셨고, 베드로전서 1:23에 보면 ‘여러분은 새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여러분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생명은 곧 썩어 버리지만 거듭난 이 새 생명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 새 생명은 인간 가운데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거듭’이란 ‘아노덴’이란 말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근본적으로’, ‘다시, 두 번째로,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라는 말이다. 이것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장소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듯 사람이 태어남으로 한 인격체로 사는 것처럼 그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고,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
거듭남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육신의 생명 이외에 또 다른 생명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신성한 생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거듭난다는 것은 자신을 고치거나 교정하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타락한 후에는 사탄적인 본성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사람은 외적인 행동 때문이 아니라 내적인 요소 때문에 본성상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으로 대표된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17절).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은 사탄인 뱀에 속아 그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6절).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였다. 이것 때문에 모든 인류가 부패하고, 하나님의 형상은 상실하고, 사탄의 죄악된 본성으로 변질되었다.
롬 5:12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현재 상태를 향상(向上)시키려는 의도가 없으셨다. 대신에 그분은 우리의 본성 변화(變化)되기를 원하셨는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처럼 또는 나병환자인 나아만이 완전히 치료되어 피부가 소년의 살결처럼 깨끗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대신 우리는 물 떠온 하인들, 나아만처럼 시키는 대로 순종만 하면 된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 뿌리는 이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뿌리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인내로서 결실을 맺어야지, 만일 거부한다거나, 마귀가 주는 가라지를 받는다면 계속 타락한 인간으로 있을 뿐이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타락한 옛 본성을 죽음에 넘기고 장사지낸 후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다(롬 6:3-9). 그리고 죄를 사랑하던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리스도의 새 생명과 함께 살아야 하니 더 이상 나약한 육신을 죄의 지배에 내맡겨 육신의 욕망에 빠져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롬 6:12).
3. 어떻게(how) 거듭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예수님의 답변이다.
요 3:14-16 /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사람들 위에 쳐든 것 같이 인자도 나무 위에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고백하라(1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물을 길어다 돌 항아리에 백 날, 천 날 부을 수는 있겠으나, 사람의 힘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듯 우리 스스로 생명을 부여할 수 없고,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 어느 누구의 힘으로도 될 수가 없다.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우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마 6:27). 그러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라고 하신 것처럼 오직 자신의 무능력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에 천국이 임하게 될 것이다.
슥 4:6 / …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요, 위대한 신비의 역사요, 놀라운 기적이다.
요 1:11-12 / …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3)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혈통이나 육체적 욕망이나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도 인간이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 새로운 본성을 인간이 만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재창조된다.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우리 또한 그 말씀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사악하고 엉터리이지만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지만 죄 씻음을 받아야합니다. 나는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제게 필요합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려야 한다.
▶ 우리는 회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롬 8:26 /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실한 감정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눅 18:13-14 / 세관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용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그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관원이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라.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고 하니까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라는 말씀을 가지고 ‘능력을 주옵소서! 성령의 권능을 주옵소서!’라고 욕심으로 기도한다면 잘못이다. 정작 구할 것은 구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1:9-13에서 왜 ‘성령을 주겠으니 구하라’고 하셨을까?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성령을 구하라’는 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방언하거나 병 고치는 은사 등)를 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라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을 보라.
마 5:19-20 /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계명이라 하여 이를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보다 더 의롭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구제하는 일에 힘썼으며, 금식하는 일을 한 주간에 이틀씩 하였으며, 기도하는 일에 열심이었으며, 십일조도 철저히 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예수님께서 비난하신 것이 아니다.
이에 앞서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할 천국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5장에서 형제에게 화를 내지 말고, 어리석다고 욕하지 말고, 형제를 저주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며,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겉옷까지 벗어주고, 비록 가고 싶지 않더라도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 주고,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누구처럼 말인가? 예수님처럼 말이다.
마 5:45-48 /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미덕이 되겠느냐? 세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 48)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더러운 죄인이요, 강퍅한 인간이 어떻게 천국백성들이 지켜야 할 천국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리새인의 잘못된 기도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는 것뿐이다.
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일까?
타락한 아담과 하와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애걸복걸할 때에 모두 탕감을 해 주신 것처럼 모든 죄를 탕감해 주시며 옥에서 나가면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라고 하셨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가자 말자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난리쳤다. 그런 사실을 전하여 들은 왕은 그를 소환했다. ‘이 악독하고 뻔뻔한 놈아! 네가 애걸하기에 불쌍히 여겨 내가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내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몹시 노하여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도록 그를 형리에게 보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우리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죄악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우리 또한 예수님의 의도대로 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할 때에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다.
4.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자.
베드로 사도는 과거의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지금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많은 믿음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벧전 2:2 / 여러분은 주님의 은혜를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악의와 기만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십시오. 마치 갓난아이가 젖을 찾듯이, 자신의 구원이 완성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십시오.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고 하시며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하셨다(마 11:29-30).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강조하였다(빌 2:5-8). 베드로 사도는 이 땅에서의 삶을 앞두고 그동안 풍성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믿음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벧후 1:2-11).
5. 거듭 났으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 7:21-23, 24-27 /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24-27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46) 그러나 내 가르침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을 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창 12:1-4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서 고향을 떠나거라. 한데 어울려 사는 네 친척과 네 집안 사람들을 떠나 내가 가르쳐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또한 네게 복을 내려 이름을 날리게 하리라. 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3) 네게 복빌어 주는 사람에게 나는 복을 내리리라. 네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저주를 퍼부으리라. 무릇 땅위에 살고 있는 민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 4) …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다.
모세는 80세에 부르심을 받았다. 늦었는가?
모세는 젖먹이 때에 죽음을 면했다. 부모들의 지혜로 나일강에 바구니로 떠내려가 바로의 딸에 의해서 발견되고,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그러나 친어머니가 젖을 먹일 수 있었다. 왕궁에서의 왕자로서 풍요롭게 살고, 왕자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 의해서 학대를 받은 것이다. 이에 모세는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다. 급하게 숨겼는데,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싸우고 있어서 모세가 ‘왜 우리 민족끼리 싸우느냐?’고 했을 때 모세에게 ‘우리도 죽이려고 하느냐?’라고 해서 모세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광야로 도망쳤다. 모세는 도망자로 40년을 살았다. 그렇게 40년을 보낸 후 결국 80세가 되었다. 이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매우 늦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이다. 지도자로 세워지기까지 걸린 시간 80년 40년간 왕자로 자랐고, 왕궁의 지도자 훈련 그리고 40년의 광야 생활, 하나님의 시간이 늦거나 이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80년이 이스라엘 200만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0만명이 광야에서 40년동안 움직여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리더쉽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 혈기도 죽여야 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기의 힘과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낮아졌을 때 오히려 높이 들어 쓰신다. 나의 유한한 겨자씨만한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더 신뢰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해서 택하신 것도 아니었다. 모세의 완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시려고 부르셨다.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하게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이때 모세를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양 한 마리를 소중히 돌보는 일에 전념하던 모세를 부르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신을 벗는 것은 당시 종이나 노예는 신을 신지 않았다. 하나님의 종으로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는 의미로 신을 벗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음과 같다. 곧 내 힘으로 살지 않고, 내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마음대로 살아왔던 내 삶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막 8:31-34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 8:31-34 / 그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유대인 지도자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셨다. 32) 예수께서 이 같은 일을 사실대로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선생님이 그런 일을 당하셔서는 안 됩니다.’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인간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34) 그러고 나서 제자들과 군중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 독수리의 환골탈태(換骨奪胎) / 독수리하면 까마득한 창공까지 차고 오르는 그 날개 짓과 눈부신 태양마저 직시할 수 있는 눈매라고 할 것이다. 그야 말로 모든 날짐승의 왕, 공중의 제왕이라 할 수 있다. 독수리의 수명은 사람과 비슷하여 평균 70년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주어진 수명을 다 살려면 한번은 완전히 거듭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독수리가 40년을 살고 나면 먹이를 사냥하는데 필수요소인 부리와 발톱이 길어지고 안으로 굽어진 채로 굳어져서 먹이를 잡기조차 어려워진다. 길고 휘어진 부리는 독수리의 가슴 쪽으로 구부러진다. 거기에다, 그 멋있던 날개조차 약해지고 무거워지며 깃털은 두꺼워진다. 나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짐이 되어 버렸다. 이 때 독수리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대로 사냥을 못하고 굶어 죽느냐? 아니면 새롭게 변화하여 거듭나느냐?’를 선택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40년을 수명으로 삶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용기 있는 독수리는 아무도 미치지 못하는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로 날아가 절벽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150일간을 전혀 날지 않고 둥지에 머무른다.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다. 먼저 절벽의 바위벽에 부리를 부비고 부딪쳐 길어지고 휘어진 부리를 다 부셔 버린다. 그리고 새롭고 날카로운 부리가 돋아날 때까지 절벽위에서 기다린 후 일단 부리가 돋아나면 그 부리로 무딘 발톱을 모두 잡아 뽑는다. 그리고 부리로 날개 깃털까지 모두 뽑아 버린 후 다시 날개 깃털이 나기까지 그 곳에서 인내하며 기다린다. 그리고 일단 새 발톱과 새 깃털이 다 나면 온전히 새롭게 된 몸으로 창공을 박차 올라 새 삶을 시작한다. 제대로 먹이도 취하지 못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그 기간이 무려 5개월이 걸린다. 이 인고(忍苦)의 기간을 견디지 못하는 독수리는 40년으로 생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견디는 독수리는 남은 30년의 삶을 새로운 부리, 새로운 발톱, 새로운 날개로 살게 된다.
▶ 우리 오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타성(惰性 - 오래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에 젖어 영성도 둔해지고 늘어나는 것은 영적교만과 나태함 밖에 없다. 꼭 독수리가 40년이면 그 부리와 발톱과 날개가 제 구실을 못하는 모습처럼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부딪쳤을 때 용기를 내어 결단해야 한다. 그대로 침륜에 빠져서 헤맬 것이냐? 아니면 독수리처럼 길어지고 무디어진 영적인 부리를 다 부셔 버리는 고통을 거쳐 새롭게 거듭날 것이냐? 결정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려놓음과 기다림과 배움이다. 독수리가 부리를 다 깨뜨리고, 발톱과 날개를 다 뽑아 버리듯이 우리도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신앙의 지식이나 습관일 수도 있고, 애지중지하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도 소중히 여겼던 자기의 의까지 과감하게 바위에 부딪쳐 부셔 버리기 전에는 새로운 부리가 나오지 않는다. 새로 돋은 부리로 과감하게 발톱과 날개를 뽑아버리는 인고(忍苦)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진정한 혁신을 기할 수 없다.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새 발톱이 나올 때까지, 새 날개가 돋을 때까지 고난의 과정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요셉이나 욥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기다리며 합당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내려놓음과 기다림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부리와 발톱과 날개를 허락하셔서 다시 창공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 있게 축복하실 것이다.
조용기목사님의 증언 / 한경직 목사님이 세상을 뜨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죄 덩어리’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말 인터뷰할 때 직접 들었다. 우리가 알기에 한경직 목사님은 목사님 중에도 목사님이요, 가장 거룩하고 청렴하게 사신 주의 종이다. 그런 분이 인터뷰에 나는 죄덩어리라고 말했으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 덩어리가 아니라 ‘온통 죄’이다. 죄덩이 같으면 괜찮지만 완전히 죄 근본 죄로 완전히 뭉쳐진 것이 우리 인간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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