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청천면에 있는 송면중학교는 독서를 강조하고 북카페 운영 등 독서 관련 활동을 열심히 하는 곳입니다. 활동과 관련해서 학생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도 자주 오곤 했는데요. 2021년에도 학년별로, 그룹별로 학생들이 여러 번 책방을 찾았습니다. 당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유난히 책방 나들이를 좋아해서 만날 때마다 흐뭇했었는데요. 그해가 끝나갈 무렵, 역시 단체방문을 왔던 학생들 가운데 여럿이 "책방에 오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책방에만 오면 힐링이 된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책방에,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하자 "책방에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선물이고 기쁨"이며 오히려 우리가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책방지기는 그 말에 완전 감동하고 말았어요.
그래서 제안했습니다. 책도 좋아하고 잘 읽는 것 같은데 혹시 책 읽는 모임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요.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내가 모임에 멘토가 되어주겠다고요. 그랬더니 학교로 돌아가서 의논하더니 곧 연락이 왔습니다. 하고 싶다고요. 그렇게 중학생들과 독서모임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8-9명 정도 학생이 모였는데요, 곧 이런저런 이유들로 흩어지고 그중 5명이 정규 멤버로 남아서 본격적인 모임을 시작했어요.
2023년 1월, 중학교 2학년이 된 후로부터 2024년 12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정확히 2년 동안 모임을 가졌습니다. 누가 시킨 모임이 아니고 순전히 자발적으로 진행한 모임. 월1회 두 시간, 같은 책을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단톡방을 이용해 의견을 나누었고 제가 관여하지 않아도 학교에 일정이 생기면 알아서 시간을 조정하는 등 말 그대로 자율 동아리로 활동했지요.
읽고 싶은 책도 함께 의논해서 정했습니다. 저도 추천하고, 학생들도 각자 추천하고, 추천한 책들을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눈 후 결정했어요. 방학 때면 책방에서 1박2일 독서캠프도 세 번이나 가졌네요. 첫 해에는 읽고 토론하기 중심으로, 두번째 해에는 글쓰기까지 나아갔습니다. 2년 동안의 모임을 통해 학생들은 제법 두꺼운 책을 부담없이 읽어나갈 줄 알게 되었어요. 가끔 토론하다 보면 저는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농촌학교 청소년들이라 순수하고 소박함이 돋보이는 친구들인데, 매우 성숙한 사고를 갖고 있어서요.
모임이 2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일단 참여하는 학생들의 적극성입니다. 무엇보다 이 모임을 즐거워하고 우선하며 열심히 참여했어요. 그리고 학교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책방지기가 아무런 댓가없이 학생들과 독서 모임을 한다는 걸 알게 된 학교에서 매달 읽는 책을 지원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자기 책으로 읽을 수 있었고 좋은 책이 책상 위에 쌓여가는 것도 학생들의 즐거움이었을 것 같습니다. 학부모 한 분께서는 모임 때마다 간식을 지원해주셔서 수업이 끝난 오후 5-6시, 출출한 저녁 시간을 채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즐거웠던 청소년들과의 독서모임 2년이 이들의 중학교 졸업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껏 쌓아왔던 독서력을 잃지 말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읽기와 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더 좋은 멘토, 선생님을 만나서 더욱 발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저와 함께한 2년의 시간이 보다 넓은 세상을 꿈꾸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섯 친구들의 중학교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함께 읽었던 도서 목록을 정리해 봅니다.
2023년
손도끼(게리 폴슨/사계절)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데포/시공주니어)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태 켈러/돌베개)
교실 뒤의 소년(온잘리 라우프/다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정유정/비룡소)
세상 끝의 세상(루이스 세풀베다/써네스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허블)
하얼빈(김훈/문학동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돌베개)
크리스마스 캐럴(찰스 디킨스/민음사)
2024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현대문학)
작은 아씨들(루이자 올콧/알에치코리아)
아몬드(손원평/창비)
순례주택(유은실/창비)
80일간의 세계일주(쥘 베른/비룡소)
원더(R.J.팔라시오/책콩)
시인 동주(안소영/창비)
마션(앤디 위어/알에치코리아)
동물농장(조지 오웰/민음사)
어린왕자 필사책(생떽쥐베리/마음시선)
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문학동네)
그리고 마지막 졸업과 고등학교 입학을 축하하며 학교에서 마련해준 예산으로 책 한권씩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가끔 한번씩 이 책을 들춰보며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