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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자: 2024.11.03 주일 낮 예배/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말씀: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 제목: 죄인을 부르라 |
- 은혜찬양 https://www.youtube.com/watch?v=J4F7OF3uzF8
- 들어가는 말씀
찬송가: 369장 죄짐맡은 구주 (youtube.com)
오늘 주님 께서 주신 말씀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디는 말씀입니다.
의인과 죄인이라는 대칭적 구조가 우리 기독교의 기본교리입니다. 옳은 것과 틀린 것, 의인과 죄인 이 두 가지를 빼면 기독교신앙에서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 남는 것이 오직 구원만 남습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의인은 구원을 받고 죄인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의인이라는 말과 죄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말씀의 중심 주제입니다. 우리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은 매우 간단 명료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기 원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옳으심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하나되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죄인은 회개한 후에 구원받으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구원에 선결조건은 회개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드릴 주제입니다.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고 구원받게 하자는 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사명입니다.
간단하죠? 우리 만나인 모두는 오늘 이 시간 모두 회개하고 구원받는 의인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우리 기독교 교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어떤 죄인이든 회개하면 구원받습니다. 영육간에 구원을 모두 받게 됩니다. 육적 구원은 나의 현실적인 고통, 우리는 이것을 현재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았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육신이 지옥과 같은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는(구원) 것이요, 다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생명의 부활과 함게 영생에 거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누명을 쓰고 살인자가 되어 쇼생크에 종신형을 살면서 탈출하기 위하여 각고의 고생끝에 낙원으로 갑니다. 영육간에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희망은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최대의 목표가 오늘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새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youtube.com)
- 주제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라 라는 주제는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실 때 청중이 회개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내가 왔다." (누가복음 5:32) 라고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회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회개는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서든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사도행전 17:30)라고 명하시기에, 모든 사람은 죄를 회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먼저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아무도 영생의 은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어디서든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사도행전 17:30).
회개는 대부분의 종교 공동체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현대의 종교 청중이 회개하라는 권고를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자꾸 회개하라고 하면 '너나 잘 하시요, 목사는 회개할 일 없남?' 이런 세상ㅅ에 이런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용기없는 목사는 할 말을 다 못하고 그저 회중들 듣기 좋은 말, '복 주시는 하나님' 말씀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사촌인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힘차게 설교했고, 청중에게 "회개하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 3:2, 8)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순교한 직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라고 설교하심으로써 동일한 주제를 계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몇 주 만에 신약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수천 명의 독실한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청중에게 한 영감 어린 말은 "회개하고 각 사람이 죄 사함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38).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는 ‘어떤 상황이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게 되는 계기 또는 그 지점’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이는 인생, 역사, 이야기, 또는 어떤 과정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가리키며, 그 변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마 9:13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 자신의 염려와 다른 사람들의 존경 속에 있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이 의롭다고 믿었고 그리스도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로 부르러 온 것이 아니므로 그들과 연합하지 아니하고 오직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였다. 세리들과 같은 사람들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주로 그런 자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 가운데 있기를 택하였다: 그는 이들에게 말씀의 외적인 사역으로 회개를 촉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회개로 이끌었다. 그분은 회개의 은혜를 베풀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회개의 의무를 촉구할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종교계에서는 회개가 종종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죄책감에 대한 감정적 반응, 우리의 죄에 대한 후회, 또는 단순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본다. 참된 회개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지만, 성경은 회개에만 더 많은 것이 있다고 보여줍니다.
참된 회개는 일시적인 감정적 반응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평생에 걸친 과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무언가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정확히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계속해서 회개하는 태도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회개는 무슨 회개야? -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
이사야서 55장 8∼9절 말씀에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제각각 자기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갖가지 안경을 씁니다. 파란 마음을 갖는 사람은 파란 안경을 씁니다. 시커먼 심뽀를 가진 사람은 검정색 안경을 씁니다. 우리 기도원장 목사님은 갈색 안경을 쓰시는데 갈색이 좋아서 쓰는 것 같지는 않고 모양이 좋아서 쓰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타고난 성품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같지를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인격의 근본이 됩니다.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선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선한 사람인 것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육신에 속한 생각만 하기 때문에 육신의 사람이고 믿는 사람들은 신령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영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5절로 8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로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영원한 천국에 앉았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에 부활하여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로 5절에
"우리의 무기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의 요새라도 파괴할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무기로 우리는 여러 가지 헛된 이론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대항하는 온갖 교만한 마음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우리 주장대로 우리 생각을 주장하면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게 되고 원수가 되게 되고 버림을 당케 되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했습니다.
3.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서라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하시기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라. 그로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라 그리하면 그가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리니 이는 그가 풍성히 용서하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55:7). 또한 사도바울도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세례를 받고 개종한 후에도 요한사도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 하면 그를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요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 1:8, 10).
죄를 짓는 것의 최종 결과는 사망, 즉 영원한 사망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예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멸망하리라"(누가복음 13:3, 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는 우리가 행동과 생각 모두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에 평생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 결심을 합니다. 세례란 회개의 시작이요 구원받는 자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중생’에 대한 주님의 답변입니다. 사람이 다시 거듭나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원리입니다. 주님 나라인 하늘나라에 들어가라면, 물과 성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에는 물과 성령이 반드시 필수 요건이라는 말입니다.
밤중에 찾아온 이스라엘의 지성인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직접 구원론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문답체로 된 거듭남에 대한 대화는 ‘중생 강좌’라 해도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반복해 말씀하신 것은, 니고데모가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은 후에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순 없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인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답변하셨습니다.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거듭남에는 ‘물과 성령’이 필수 조건입니다. 신기하게도 ‘물과 성령’은 죽음과 생명의 대조입니다. 물은 육체적인 죽음을, 성령은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과 성령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와 새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물과 성령은 구원을 받는 방법이지만, 여기에는 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거듭남의 과정’ 즉 ‘중생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이 거듭남의 과정은 단번에 그리고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을 거쳐 가능하게 됩니다.
물과 성령의 과정은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물이 겉으로는 보이는 형식이라면, 성령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내용입니다. 물로 세례 받음에는 “죄로 인해 나의 육체가 물에 죽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애 동안 항상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이것만이 사도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랑한 것입니다. 우리 만나인들도 바울처럼 자기의 자랑거리를 하나 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회개란 지금까지의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의 나됨을 자랑하는 것은 날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아멘
사도 요한은 회개하는 방법과 우리의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반응을 요약했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7-9).
시편 51
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7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결론
회개가 구원을 얻기 위한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6:44).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회개가 가능합니다 (사도행전 5:31, 11:18). 하나님이 회개를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회개할 수 없습니다. 회개와 믿음을 포함한 구원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내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로마서 2:4) 오래 참으심이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베드로후서 3:9).
회개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는 아닌 반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마음이 참으로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회개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태복음 3:8)고 외쳤던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자는 변화된 삶으로 그 증거를 나타냅니다 (고린도후서 5:17; 갈라디아서 5:19-23; 야고보서 2:14-26).
현실의 삶에서 회개가 어떤 모습일지를 보려면, 우리 모두 삭개오의 이야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여 얻은 사악한 이득으로 풍족한 삶을 살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마음은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삭개오가 말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네 의로운 집)에 구원이 임했음
- 지난 주에 말씀 선포가운데 욥기8:5~7,"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에서 말씀하신 바로 '네 의로운 집'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정의된 회개는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성경적인 회개는 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꿉니다. 더이상 죄의 사슬에 매어있지 않습니다. 죄는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마태복음 3:7) 위하여 내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회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꿉니다. 항상 신명기 32:35절 말씀,"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시는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님은 피흘리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