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덩이의 먹을 갈아 세 치 되는 붓을 놀려서는 고금(古今)의 아름다운 문장을 따와 글을 엮는다. 마치 화가처럼 흉중에 있는 마음을 그려 내되, 서린 근심을 말끔히 풀어내기도 하고 서로 배치된 감정을 합해 보기도 한다. 휘파람을 불고 노래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성내기도 하면서, 그 속에 밝고 아름다운 산수와 기이하고 고상한 그림을 담아낸다. 구름과 안개와 눈과 달의 변화무쌍하고 아름답고 담박하고 조촐한 모습을 그려 내기도 하며, 예쁜 꽃이라든지 고운 풀이라든지 찌르르 우는 벌레라든지 날아가는 새라든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해 낸다. 하지만 이 사람은 본디 담박한 사람이라 과격하거나 괴팍하거나 꾸짖고 비방하는 따위의 말은 일절 쓰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 하여 원고를 찢어 버리지도 않는다. 그저 글마다 붉고 푸른색으로 우열을 매길 뿐이다. 원고를 잘 묶어 책함에 싸서는 거기에 제목을 붙이고 하나의 책을 만든다. 이 책을 책 주머니에 넣어 품에 안고 다니면서 혼자 그것을 꺼내 찬탄하기도 하고 읊어 보기도 하는 등 마치 친구나 형제를 대하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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