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20일(금) 이사야 32:9-14 찬송 500장
9.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0.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11.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12.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14.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때의 초장이 되려니와 (개역 개정)
- 안일한 여인들에 대한 심판 경고 -
어제 말씀 중 5-8절에서는 한 의로운 왕 곧 메시야의 심판 대상으로서
권세와 부를 가진 귀족 남자들의 죄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어 오늘 말씀에서는 거듭되는 하나님의 심판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영적 무지와 무관심에 빠져 있는
상류층의 부녀자들이 슬피 울며 탄식할 날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이 여인들은 이미 3:16-4:1에서 한번 언급되었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방 여인들과 같이 온갖 사치와 허영에 빠져
자신들의 궁극적 멸망에 대해 아무 염려없이 살아가는 자들로서
영적으로 무감각하여 육신의 안일만 좇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격에 해당한다.
나아가 그 마음이 여호와를 향하여 있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과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향하여만 있는 인본주의자의 전형이다.
본문에 나타난 안일한 여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이러한 인본주의자들이 맞이하게 될 인생의 종국이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우리들의 영안을 어둡게 하고 마음의 지향점을
저 높은 곳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닌
이 땅에 고정시키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요일2:15-16)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들이 땅의 것을 생각지 않고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 때 그 삶은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된다.(롬12:1-2; 고후5:17; 골3:1-2)
9절)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오늘 말씀은 범죄하고도 각성도, 돌이킴도, 회개도 없이
육신의 안일함을 좇아 사는 유다 사람들을 향한 경고이다.
여기서 경고의 대상이 되는 ‘안일한 여인들’ 혹은 ‘염려 없는 딸들’은
일차적으로는 유다 상류층 여인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넓게는 모든 유다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안일함’과 ‘염려 없음’은 그 원어는 다르지만
모두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의를 행함으로 누리는 마음의 평안과 달리
범죄하면서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죄가 주는 거짓 안락에 찌든 상태를 말한다.
이 말씀이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에 이어서 나오며
유다가 심판 경고를 들은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에게 들려진 경고는 매우 임박한 심판에 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염려도, 회개도 하지 아니하고 안일함 가운데 있었다.
말하자면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이었고
죄에 대해 아무런 찔림도 각성도 없는 무디고 악한 마음을 고집하는 자들이었다.
이렇게 악한 마음을 고집하던 자들, 심판의 경고, 회개에 대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고 태만한 자세로 일관하던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앗수르라는 무시무시한 대적에게 온 나라가 짓밟히는 재난을 당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이 남겨지고
히스기야의 진실과 믿음이 담긴 간절한 기도로
나라가 멸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불신과 죄에 대한 안일한 태도,
즉 영적 태만으로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엄청난 수모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유다는 마땅히 과거의 일을 거울삼아 영적 태만을 버리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으며 그릇된 삶, 악한 삶을 버려야만 했으나
그들은 그토록 고통스럽고 심각한 재난을 겪었음에도
죄를 회개하지 않는데 있어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그리고 더 큰 죄악, 더 사악한 죄악만을 고집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은 안전이 보장되어 있고
태평할 것이라고 자부하였다.(렘6:14; 8:11)
그 결과 그들이 당한 것이 무엇인가?
바벨론를 통한 나라의 파멸, 곧 멸망의 사건을 맞이해야만 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영적 태만함, 회개치 않는 마음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죄를 돌이키지 않는 것,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각성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결국 파멸의 심판을 초래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주님은 우리들을 향해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때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임박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가까이 이른 때인가?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삶 가운데 그릇된 것, 악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합당치 못한 바가 있다면 속히 회개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심판 날이 도적같이 닥칠 때까지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