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으로 쌓인 연륜
최원혜
며칠 전 아침에 출근하였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며 운전대 잡고 신나게 노래 불러댔다. “…뒤돌아보면 그리운 시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시간 돌아가고파 사랑하고파 아~ 잊지 못할 여고 졸업반~.….” 차창을 닫아 소리 질러대어 불러 보았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 튀어나온 노래 가사가 하필이면 “여고 졸업반” 노래일까 생각하였다. 몇 달 전 여고 동기회 모임 다녀온 후로 활성화되어 벚꽃 피는 사월에 야유회 모임 간다고 한다. 단체 톡에서는 “깨톡, 깨톡” 밤이고, 낮이고 알림 소리가 계속 울리어 대었다. 여고 졸업 후 어언 오십 년 만에 자주 만나지 못하였던 친구들의 모습이 나이 들어 변하였던 모습에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통나무를 잘랐을 때 일 년마다 생기는 고리의 테가 쌓이어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것이 “나이테”이다. 친구들의 모습 또한 오십 년 동안의 삶을 잘 살아 곱디고운 연륜(年輪)이 보인다.
일 마치고 점심을 우동으로 대충 때우고 부랴부랴 운전하여 “대구간송미술관”에 관람하고 왔다.“간송”은 전형필 선생의 호(號)이다.이는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물 간(澗)”자에,“소나무 송(松)”자를 더해서 만들었다. “간송”은 고미술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문화보국의 길을 걷도록 가르침을 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1864~1953)이 지은 것이다. 간송은 한국 미술사학의 초석을 다진 김원룡, 황수영, 진흥섭, 최순우 등과 교유하며,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힘썼다. 그러므로 연륜 있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의 문화유산이 계속 유지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매표 창에서 시니어(senior)이고, 대구 시민이라며 무료입장이라고 하였다. 내가 어느덧 시니어 대접 받는구나 생각할 때 기분이 묘하다. 평상시 상설 전시만 관람하였을 때 육천 원, 기획전시 열릴 때 육천 원 합하여 일만 이천 원이라고 하였다. 나는 상설 전시만 관람하였기에 육천 원 할인받은 셈이다.
공짜 표 받아 미안한 마음 들어 그림 석 장을 샀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그림 중 “하화청정(荷花蜻蜓)” 연꽃과 연잎의 일생을 한 화폭에 담았다. 또 “마상청앵(馬上聽鶯)” 초여름에 나타나기 때문에 꾀꼬리는 여름 알리는 전령사로 선비가 나들이 길 꾀꼬리 울음소리에 마음 빼앗겨 길 멈춘 장면을 부감법(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처럼 그리는 그림의 구도를 잡는 방법)으로 잡았다. 새는 두 마리를 그리는데 “암수 서로 정답구나.”라는 의미이다. 또 하나의 그림은 주로 밤의 화가로 한량과 기생의 유흥 문화를 그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美人圖”로 조선 정조시대 한양 기녀 전신 초상화이다.
관람 중 서예를 좋아하여 내 눈에 딱 들어온 묵서가 있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쓴 “추수자심사오척(秋水緕深四五尺)” “가을물 깊어도 겨우 네댓 자”이다. “녹음상간양삼가(綠陰相間兩三家)” “우거진 수풀 사이로 두서너 집뿐”이라는 뜻이다. 이 묵서는 김정희가 당나라 두보의 시구에서 “남린(南隣)과 사공도(司空圖)”의 “양류지수배사”에서 각각 한 구절씩 취하여 합성한 집구(集句)형식으로 쓴 행서 대련이다. 원래 시의 뜻과는 다른 참신한 의미를 만들어 내었다. 이는 고전을 섭렵하고 재구성하는 김정희의 박학다식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글씨 또한 빠르고 유려하게 쓰기보다는 함부로 흘리지 않아 힘 있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12세기에서 16세기 시대의 청·백자 매병, 연적, 대접 또한 물고기, 발 담근 채 낚싯대 드리운 그림 등은 그야말로 놀랄만한 작품이다. 이 세상에 없지만 연륜 있는 대가의 작품성은 현대 사람들이야말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예술성에 놀랐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길 걸어갈 때 희(喜)·로(怒)·애(哀)·락(樂) 없이는 연륜을 쌓을 수 없다. 잔잔한 호수처럼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였을 때 너무도 무의미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유한 가정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던 나의 생활이 차곡차곡 나이처럼 연륜을 쌓아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아이들도 지금은 부모의 삶을 보며 자라서인지 고군분투하며 바통 터치하여 아등바등 값진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
연륜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버티고, 책임져가며, 포기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린 날 우리 부모 세대에서 삶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하다. 거칠 대로 거칠어진 손은 우리 가족들의 시간을 지탱하여 온 나이테와도 같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쌓이어 단단하여졌을 것이다. 힘들다고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실패하여도 다시 일어났던 끈기, 그것을 자식들에게만은 더 나은 세상을 전해주고 싶어 하였던 마음이 부모 세대의 연륜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았을 때 연륜이 쌓이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외가와 같은 마을에서 성장하였다. 어머니가 맏딸이어서 외삼촌, 이모 들을 세 분 두었다. 어머니는 친정이 가까이에 있어 이모들이 언니 아이들을 돌보아주었다고 들었다. 이모 말로 네 명이 저세상 갔는데 그중 바로 내 위의 언니는 방긋방긋 웃으며 아장아장 걷던 세 살짜리 이라고 하였다. 그 언니가 병으로 저세상 갔기에 너무도 슬펐다고 한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이모는 나를 만나면 가끔 그때 생각하면서 속상하여 울었던 그 시절을 회억한다. 이모는 언니가 너무도 예뻐서 업어 키웠기에 정들었던 아이로 내 아이처럼 슬퍼하였다고 한다. 그 시절 의료시설이 부족하였던 때라 병에 걸리어 축 늘어진 모습에 이모는 몹시도 허탈하였다고 한다. 너무도 정들었던 언니를 잃은 슬픔에 어머니보다 더욱 크게 슬퍼 억장이 무너진듯하였다고 한다.
슬픔에 질려 있는데 그다음에 나를 낳았을 때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그때 내 상태를 보면서 이번에 낳은 질녀도 그야말로 풍전등화 같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내가 성장하여 국민학교 입학하였다. 그때는 친가, 외가 양가에서 모두 기쁨의 블루스로 난리이었다. 잘 자라 예쁘다며 작은이모는 양장 배워 원피스 만들어 입히었다. 지나간 세월은 춘풍추우(春風秋雨) 이다. 요즘 가끔 이모를 만나면 “야야! 너보다 덩실하니 큰 두 아들 낳아 벌써 며느리 보았네. 개천에 용이 났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나는 부모, 외가 식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친할머니의 연륜 덕택에 이 세상을 만끽하며 잘살고 있는듯하다.
속담에 “산 넘어 산”이라고 했듯, 부모의 고난에 고난을 거듭 겪어내고 연륜으로 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던 무한한 은혜를 지금도 감사기도 올린다.
칠순 바라보는 여고 시절 친구들도 모두가 연륜이 쌓이었던 모습을 볼 때 반갑고 보기 좋았다. 다가오는 사월 여고 동기회 야유회에 참석하여 우리들의 블루스로 추억을 간직하며 여행하기로 하였다. 나는 수필가로서 일상적 체험을 문학적으로 관조하며 서정·사색하며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써대는 삶의 연륜 쌓아 나가기로 한다.
(20260314.)(20260318.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