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智異山
兼山 金敬海
여름휴가의 막바지라고 할 수 있는 8. 15 광복절 연휴를 앞두고 가족과 함께 시간도 보내고 개인적 일도 처리하고 싶었으나 고민을 한 끝에 이번 연휴가 끝나면 더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심신단련 및 세속에서 찌든 심신을 淨化하기 위해 한 번 더 지리산 종주산행을 가기로 선택을 하였다. 여벌 등산복, 렌턴, 스틱 등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최대한 배낭을 가볍게 하고 집을 나섰다.
이제 등산은 우리나라에서는 대중화가 되어 너와 나, 남녀노소 구별 없이 즐겨하는 국민스포츠가 되었는지 오래이다. 등산복은 국민들의 평상복이 되어 의류업계의 패션에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사실 골프장 같은 곳에 갈려면 개인이나 회사가 관리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산은 국가 소유로 입장료가 없다. 이 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또 골프장을 가기 위해서는 주로 승용차를 이용하지만, 아무리 먼 거리에 있는 산을 가더라도 산악회 버스로 단체로 가기에 약간의 회비만 내면 되는 것이니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노닐며, 건강도 다지고 스트레스 해소 등 산행에서 얻는 이익이 말할 수 없이 크기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산을 선호하고 즐겨 찾는지 모른다.
금요일 밤 10시에 양재역에서 산악회 버스를 탔는데 산행의 안내와 인솔의 책임을 맡은 산행대장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지리산 종주산행만 150번을 하였다고 하고, 자기 자신은 비를 피해 다니는 사람으로 이번 산행에 비올까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하였다. 오늘 진정한 고수를 만난 것이다. 150번 지리산 종주산행을 했다고 하니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왔고, 이 정도라면 가히 산신령급의 수준이요, 세계 기네스북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한 50대 중반 정도로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이로 60세라 하니 나보다도 몇 년이나 더 연배이셨다, 산행대장을 맡은 10년 동안에 한 것만 150번이고, 그 이전에 개인적으로 종주산행한 것은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하기야 1년에 15번을 간다고 치고 10년이면 150번 갔다는 계산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1년 중에 최고로 좋은 때에 지리산을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안전산행을 당부하며 안내 설명을 해나갔는데 산사나이의 기운과 믿음직함이 느껴졌다.
성삼재에서부터 3시 좀 넘어서 걷기 시작하였는데 버스 안의 비좁고 불편한 좌석에 앉아 밤새 잠을 잘 수 없어 수면부족과 몸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 올라가자니 처음에는 여간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걷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했고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 옹달샘에서 물 몇 잔을 마시니 정신이 한결 개운해졌다.
비가 많이 내린 탓으로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는 곳이 많았는데 바위와 돌, 지표면에 드러난 나무뿌리를 밟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한다. 나무뿌리를 잘못 밟아 미끄럼을 타거나 돌의 경사진 면을 밟아 미끄러진다면 정말 난감한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 될 수 있다.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오로지 전적으로 자신만의 책임 소관이다. 보폭을 짧게 하고 돌의 경우에는 뾰족한 곳을 밟아야 안전하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나도 순식간에 미끄러진 적도 몇 번 있었고, 스틱에 의존하였기에 스틱이 휘어지는 것으로 다행히 부상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2개의 스틱 또한 안전을 위한 중요한 필수품임을 새삼 경험하였다.
연하천대피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나니 몸이 가뿐하고 몸 컨디션이 좋아졌다.
이제부터는 삼각봉과 형제봉을 거쳐 3.6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벽소령대피소로 향하는 것이다.
벽소령 가는 길은 경치도 좋다. 도중에 여러 산행객들과 함께 잠시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누군가의 음악기기에서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나훈아가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 여성은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나훈아는 야성미도 있고 참 매력적인 남자이다. 그런데 왜 김지미와 이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하니 ‘나훈아의 모창가수인 너훈아도 있었는데 너훈아는 작년에 죽었다.’ 또는 ‘나운도라고도 있다. 그 가수도 나훈아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노래를 잘 부른다.’ 등등 각자가 아는 내용에 대해 한마디씩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서 다시 걷는다.
벽소령대피소에 당도해서는 대피소에 들어가서 약간의 수면을 좀 취하고 나니 한결 피로가 가시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6.3킬로미터 거리로 이미 체력도 떨어져 있고 지쳐있는 탓으로 이 구간이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선비샘까지는 평탄한 길이라 그런대로 걸어가서 그곳에서 시원한 山水를 마시고 체력을 보완한 다음 걷기 시작한다. 순간 구름이 일어나더니 영신봉 자락을 따라 올라가는 흰 구름을 보았다. 그러다가 실체가 없이 생겨난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이 본디 실체가 없듯이
生死去來亦如然 삶과 죽음도, 가고 옴도 또한 그러한 것.
獨有一物常獨露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있어
湛然不隨於生死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라고 佛家에서는 말하고 있다.
세석대피소를 앞두고 177개의 나무계단이 나타는데 이 계단을 통과하여서 조금 더 걸어가면 세석대피소가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를 올라서기 전에 산행대장이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산행객 한 분이 걷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벽소령대피소과 세석대피소 구간 사이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나이 62세의 산행객이 급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것을 두고 運命이라고 말해야 할까? 원인은 무리한 산행이었을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冥福을 빌 따름이다.
성삼재에서 세석대피소까지 중간의 휴식과 산행시간을 포함하여 13시간을 걸어서 도합 22.9킬로미터를 걸었던 것이다.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자 손에 물을 적시니 물이 차가웠고, 저녁 공기도 쌀쌀하였다. 벌써 지리산 고지대에는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저녁에 일찍 고단한 몸을 눕히고 내게 지정된 침상에 누워있으니 더 이상 안락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기 마련이고 그러하기에 재미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비교적 타인의 코고는 소리에는 관대하고 무신경한 편인데 이번에는 의외의 强敵을 만났다. 코고는 소리가 음량에 있어 예사롭지 않게 높았고 특히 음질이 아주 불량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였음에 틀림없었겠지만 대놓고 불평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仁者樂山이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질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 세석대피소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매표소로 가는 10.5킬로미터의 여정이 남아 있었으나 나는 6킬로미터의 거림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천왕봉을 안 가본 것도 아니고 무리할 필요 없이 고요적적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면서 거림으로 내려가는 길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천왕봉을 향하여 떠나가고, 대피소의 2층 침상에 누워서 혼자만의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것도 무척 달콤하고 의미가 있었다.
아침 6시 30분에 거림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옹달샘에 가서 얼굴도 씻고 물도 마시고 산새소리 들으며 이른 아침 雲霧에 휩싸인 신비롭고 고요한 靜寂이 감돈 산길을 걷는다. 이러한 경계와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거림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과 폭포도 좋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쾅쾅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흘러가는 계곡의 물 흘러가는 소리. 이를 일러 『莊子』라는 책에서는 대지가 내쉬는 숨을 바람이라 하고, 땅의 퉁소 소리를 地籟라 한다. 이것을 즐기기 위해 산을 찾는 이유가 될 것이다. 만약에 산에 물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할 것인가?
내려가는 길에는 드문드문 올라오는 산행객을 만난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세석에서 1박 하고 내려갑니다.’ ‘세석으로 올라가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수고 하십시오’ ‘안전한 산행하십시오’ 등의 인사와 가벼운 대화를 내려가다 만나는 산행객들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걸어 내려가는 동안 7, 8월 여름 내내 관심을 갖고 읽었던 性理學에서 말하는 心, 性, 情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고 理氣는 무엇이며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 등 四端七情論辯의 주요개념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아직도 명확하게 잘 이해되지 않은 조선성리학의 부분들을 다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다보니 넓적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위에 제법 큼직한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가 있는 바위’ 그러니까 ‘솔바위’이다. 그 밑에 내려가면 ‘솔바구 식당’이 있다. 원래는 ‘솔바위’이나 경상도 사투리로는 ‘솔바구’이니 식당 이름을 ‘솔바구 식당’으로 지은 것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전형적인 경상도 억양의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친절하게 나를 반겨준다. 새롭게 잘 단장되어진 식당 테이블에 혼자 앉아 도토리묵 안주와 ‘지리산 덕산 막걸리’를 시켜 한잔 마신다. 산행의 긴장감과 피로가 순간 확 풀린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오로지 자신의 땀 흘린 체험으로만 알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뿌듯한 보람, 희열이 느껴진다.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배운 무언의 가르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