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나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회지에 실릴 글입니다.
시기적으로 미리 나누고 싶어 여기에 올립니다.
허위의식을 깨우는 평통사로!
평통사 공동대표 김창환
그야말로 만화방창한 봄이다. 제주도에서 북상한 화신이 이 즈음에 이르면 그 의미를 잃고 만다. 남녘에서 북녘까지 산하가 온갖 꽃으로 장식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내 수액을 안으로 모은 채 엄동설한을 견뎌낸 초목들은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요 하늘의 이치이다.
남북의 산과 골짜기는 저러한데, 이 땅에 터 잡고 살아 온 사람들한테는 한가로이 봄맞이 꽃놀이에 마냥 취해 희희낙락할 수 없게 한다. 옛 시인의 말마따나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봄을 느낄 수 없도록 우리를 움츠리게 하는 요인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분명 겨레의 봄이 오긴 했는데 봄을 느끼게 할 수 없도록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분단 후 길고 긴 겨울 동안 서로 적대하고 감시하고 경계하고 상호 외면하도록 강요하는 틀과 힘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보안법이 제도적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보다는 나라의 치안유지를 위해 필요한 법이라는 논리가 일제강점기부터 여태까지 짓누르고 있다. 혹자는 이미 사문화된 법이니 있으나마나 한 구시대의 유물이라 하지만 언제쯤 전가의 보도로 다시 시퍼렇게 날을 세울지 알 수 없다. 최근, 6ㆍ25전쟁에 대해 그것이 남침이었다 하더라도 가치판단과 정의적 개입이 없이 학문적으로 객관화하자면 ‘통일을 위한 내전’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견해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고 있음을 본다. 만약 이런 논리로 본다면, 독일의 통일은 통일이고 베트남 통일은 통일이 아니라는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말 텐데도 말이다.
둘째로, 지각 있는 국민들은 누구나 남과 북이 화해를 하고 협력을 하여 마침내 통일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당연히 통일의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 스스로 자주적인 역량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희망은 우방과 이웃 나라들이 통일에 도움을 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자기네 나라의 이해타산이 우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불가피하게 한미동맹에 의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족공조로 통일의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반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한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일이다. 쇠붙이에 의지하여 힘겨루기를 해서는 민족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라의 살림살이를 쪼들리게 할 뿐이다. 평화와 통일도 그만큼 멀어지게 한다. 더 이상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도입, 군사력 증강을 해서는 안 되고 상호 군축과 평화협정체결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 넘겨 준 작전통제권을 이른 시일 내에 되찾아 와야 한다. 세계적으로 남의 나라에다 자기 나라 군대의 작전권을 넘겨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셋째로,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금의 평택 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거쳐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으로 전쟁억지력의 역할을 해 온 전방배치 미군을 한강 이남 안전 지대인 평택 팽성읍으로 대피시키겠다고 한다. 더는 인계철선(trip wire) 구실을 않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중대한 상황 변화를 의미한다. 그 핵심은, 이북의 군사력에 대한 대응은 한국군만으로 가능하므로 주한미군은 다른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1월 19일에는 한미 공동성명을 통해 듣기에도 생경한 용어인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주한미군의 주임무로 밝혔다. 말하자면 주한미군을 아시아 분쟁지역에 신속히 투입하기 위한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장 양안분쟁 당사국인 중국의 반발을 불러 오고 있다. 자칫 한반도를 국제전의 싸움터로 만들지도 모를 위태로운 일인 것이다.
평택에는 이미 450만 평의 땅에 미군 기지가 있는데, 거기에다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 300여 만 평의 땅에 기지를 확장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겼다. 황새울의 광활한 옥토에 이제 군사기지를 설치하면 향후 수십 년간 미군이 주둔하게 될 것이다. 이러매 공권력이란 이름의 폭력으로 수로를 틀어막고 농민들을 내쫓으려만 말고,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공론화하여 가까운 통일시대를 내다보면서 당당히 평화지향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월남전 파병, 이라크 침략전쟁 파병,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 등으로 하여 더 이상 미국에 대한 보은론을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집회장에 나와 부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자면서 성조기를 흔드는, 수치스런 숭미 사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반미를 외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주권국가로서 양국이 대등하게 실질적인 호혜평등과 선린우호의 길로 나아가면 된다.
아직도 국가보안법, 군사력 강화, 전략적 유연성 등 평화나 통일과 거리가 먼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이웃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 평통사 동지들이 나서서 안데르센 동화에서 보듯 ‘벌거벗은 임금님’을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허위의식의 껍데기를 훌훌 벗어 던지게 하자. 전래동요처럼,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대중화 전문화 전국화로!
2006. 4. 10.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