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허블 우주 천체망원경은 지구로부터 120억~140억 광년 떨어진 원시은하계를 관측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허블 망원경이 작동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우주 빅뱅 직후 형성된 둥그스름한 원시은하는 지구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 이후 지금까지 허블 망원경은 블랙홀이 은하계 중심부에서 가스와 별 구성 성분을 엄청난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를 포함해 수만 장의 우주 영상을 지구로 전송해 왔다. 허블 망원경은 천문학의 혁신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변의 모래보다 더 많은 별, 외계 은하, 블랙홀, 지구 같은 행성을 거느린 별 등 우주의 ‘속살’은 이처럼 우주에 떠 있는 천체망원경과 지상의 천체망원경에 의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각국은 왜 우주로 다양한 종류의 천체망원경을 올리고, 지상에서는 더욱 더 큰 천체망원경을 건설하는 경쟁을 벌이는 걸까.
우주는 천체 관측의 최적의 장소
태양 외에 머나먼 우주의 수많은 별로부터 지구로 쏟아지는 빛은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만 빛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X선·감마선·적외선·자외선도 빛의 일종이다. 우주의 구석구석을 보려면 이런 모든 종류의 빛을 다 받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지상까지 도달하는 것은 가시광선과 적외선의 일부다. 자외선은 태양에서 나오는 자외선 중 일부만 지상에 도달할 뿐, 먼 별에서 오는 자외선은 대기에 흡수돼 버린다. 이 때문에 감마선과 X선·자외선은 지상 관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주에는 습기도 공기도 없다. 천체 관측에 이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이다.
가시광선용인 허블 망원경 외에도 X선 관측용인 찬드라, 적외선용인 스피처, 자외선용인 갤럭시, 감마선용인 페르미 등 다양한 우주 천체망원경을 우주로 쏘아올린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 크기는 지상 천체망원경보다 작지만 우주에 거대한 천문대를 세우는 것과 같다. 주 반사거울의 지름이 2.4m인 허블 망원경은 지상에 8m짜리 천체망원경을 설치한 것과 맞먹는다. 단순 수치로 앞으로 우주에 지름 6.5m의 천체망원경을 올린다면 지름 30m짜리 지상 천체망원경의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된다. 우주에서 이들이 찍은 영상은 지구로 전송돼 우주의 신비를 벗겨내려는 천문학자들의 밤잠을 빼앗아 간다.
허블 망원경이 우주의 영상을 디지털카메라처럼 촬영한다면 찬드라 망원경은 허블 망원경이 볼 수 없는 블랙홀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다. 블랙홀은 빛도 물질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상을 잡아낼 수 없다. 단지 블랙홀 주변에서 방출하는 강력한 X선을 관측해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블랙홀을 찾아내는 데는 찬드라만 한 ‘공신’을 찾기 어렵다.
스피처 망원경은 갓 태어나는 아기별을 찾아내는 데 적합하다. 별이 태어날 때는 온도가 낮고 적외선을 많이 방출한다. 갤럭시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별에서 쏟아내는 에너지 전체 방출량을 산출할 수 있다. 자외선은 주로 뜨거운 온도의 별에서, 적외선은 차가운 온도의 별에서 주로 많이 나오므로 갤럭시와 스피처 망원경은 서로 보완적이다. 페르미 망원경은 블랙홀, 또는 높은 에너지를 지녔지만 정체를 모르는 천체를 알아내는 데 적합하다.
우주 천체망원경은 깨끗하고 간섭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이점이 크지만 개발비가 막대하면서 수명이 짧은 것이 문제다. 1990년 쏘아올린 허블 망원경의 경우 여러 번 수리했는데도 내년 수명을 다한다. 일반적으로 우주 천체망원경은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아 수명이 다하면 그만이다. 우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가시광선과 적외선은 지상에서 관측이 가능하지만 대기·습기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좋은 영상을 얻는 데 애를 먹는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상 천체망원경은 렌즈에 해당하는 주 반사거울의 크기를 늘리는 한편 각종 간섭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지상에서는 반사경 키우기 경쟁
꼭 400년 전인 1609년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처음 만들어 우주를 관측했다. 그 망원경은 요즘 문방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이다. 가느다란 파이프 같은 경통 양끝에 각각 하나씩의 렌즈를 붙여 만들었다. 그는 이런 망원경으로도 목성 주위를 도는 4개의 위성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사람이 사물을 보는 것은 물체가 반사하는 빛을 동공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공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고, 더 어두운 물체도 밝게 인식할 수 있다. 갈릴레이는 사람의 동공을 렌즈를 이용해 키운 셈이다. 렌즈가 빛을 모아 받아들이는 집광력은 구경의 제곱에 비례한다. 구경이 두 배 들면 집광력은 4배, 구경이 8배 늘어나면 64배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이는 64분의 1만큼 희미한 별도 구경이 큰 망원경을 쓰면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각국이 막대한 투자를 해가면서 천체망원경 구경 키우기 경쟁을 벌이는 연유다.
망원경 구경 키우기 경쟁은 미국이 주도했다. 18세기 말 미국의 윌리엄 허셀이 구경 122㎝의 반사망원경을 만든 데 이어 1917년 윌슨산 천문대에 구경 2.5m 반사망원경, 48년 팔로마산 천문대에 구경 5m 반사망원경, 97년 하와이에 구경 10m의 반사망원경을 설치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동 중인 가장 큰 망원경은 2007년 미국 애리조나에 미국·스페인·독일이 합작해 세운 구경 11.8m짜리다. 세계적으로 지름 6m 이상의 지상 천체망원경은 18개다. 한국이 보유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은 보현산 천문대의 구경 1.8m짜리가 고작이다. 미국과 유럽 등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름 25~42m짜리 천체망원경 개발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구경 25m짜리인 미국의 거대 마젤란 천체망원경(GMT)에 10%의 지분을 투자해 참여하고 있다. 완공 목표는 2018년이다.
단일 반사거울은 지름 8.5m가 한계
우주에 올릴 천체망원경이든 지상에 설치할 천체망원경이든 광학용은 반사거울을 주로 쓴다.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주 반사거울은 망원경의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주 반사거울은 천체망원경에서 우주의 빛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일 반사거울로 천체망원경을 만들 경우 그 구경이 8.5m 이상이 되면 무리가 있다. 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두껍게 만들어야 하지만 너무 무거워 이를 지지하기 어렵다. 개발·유지비도 많이 든다.
이 때문에 구경 10m 이상의 천체망원경은 작은 반사 거울 여럿을 이어 만든다. 하와이의 구경 10m짜리 켁(KECK) 망원경도 구경 1.8m짜리 작은 반사거울 30개 정도를 이어 만들었다. 구경이 작으면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구경 25m의 GMT 천체망원경은 구경 8.4m짜리 반사거울 7장을 붙여 만든다. 이는 칠레에 지을 예정이다.
지상 천체망원경은 설치 장소를 고르는 데 제약이 많다. 맑은 날이 잦고, 습기가 적으며 기류의 변화가 많지 않은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와이 마우나케아산, 칠레의 안데스 산맥,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남아프리카 등이 적지로 꼽힌다. 하와이에는 구경 8m 이상의 천체망원경이 4기, 칠레에는 구경 6.5m 이상이 7기나 설치돼 있다. 이런 곳들은 연중 11개월 정도가 관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현산은 100여 일에 불과하다. 지상 천체망원경은 반사거울을 둘러싸는 경통이 없다. 경통 안 공기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 자연스럽게 통풍이 되도록 한 것이다.
전파망원경의 구경은 무제한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해 우주를 관측하는 망원경이 전파망원경이다. 언뜻 위성 수신용 대형 접시 안테나처럼 보인다. 전파 망원경은 멀리 떨어진 곳에 각각 우주 전파 수신기(망원경)를 설치해 놓고 각기 수신한 신호를 조합해 영상을 구성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말 서울과 울산·제주에 각각 전파 수신기를 설치했다. 이는 구경이 무려 500㎞에 달하는 망원경의 성능을 낸다. 한국은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이 이론상 구경을 2500㎞까지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