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토대가 된 한 병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국내최대의 전쟁영화동호회에서 걸작 전쟁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의 실존모델에관한 이야기는 당연히 소개되어 있어야겠죠?
아마 국내 온,오프라인엔 라이언일병구하기의 실존모델인 프레데릭
닐랜드상사 이야기가 올라온적은 없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4형제중 3형제가 전사하고홀로 전장터에 남게된 라이언 이병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의 토대는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영화속의 라이언과 같미 제101공수사단에 소속되어 D-DAY에 참가한 한 병사의 이야기입니다.
Frederic Niland상사.
닐랜드 상사는 미제101공수사단 501연대 소속으로 D-DAY 전날 다른
병사들과 함께노르망디의 카렝탕 지역에 야간 낙하합니다.
닐랜드 상사에겐 3명의 형제가 있었고 첫째 형인 에디 닐랜드는 육군
항공대 소으로 버마전선에서 격추되어 D-DAY전인 1944년 5월 중순경 실종되었습니다.그리고닐랜드 형제의 어머니는 1944.6.8일 에디
닐랜드의 실종을 알리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둘째인 로버트 닐랜드는 미82공수사단 505연대 소속으로 D-DAY에
505연대의 목표였던 생 메르 에글리제 읍 근처에 낙하,전투를 벌이다
D-DAY당일날 누빌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프레스톤 닐랜드는 미제4사단 22연대 소속의 소위로 D-DAY에
유타해안에상륙하였고 다음날에 전사하였습니다.
D-DAY전날 야간강하한 다른 많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닐랜드 상사도 목표지에서훨씬 벗어나서 착지하였고 소수의 다른 병사들과 함께
소규모 전투를 벌이다 1944.6.11일에 비로소 소속부대인 501연대의
본대와 합류하였습니다.
본대와 합류한 닐랜드는 D-DAY에 같이 상륙한 형제들의 안부를 수소문하였고 결국두명의 형제가 모두 전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이
사실을 안 501연대 소속 종군목사는 연합군 사령부로 프레데릭 닐랜드를 안전한 곳으로 이송시키라는 문서를 작성,사령부로 보내나 이
편지는 제때 전달되지 않았고 D-DAY이후 7월 중순까지
프레데릭 닐랜드 상사는 노르망디의 덤불을 헤치며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1944년7월 미82공수사단,101공수사단은 휴식과 재편성을 위해 노르망디 해안에서LST를 타고 영국의 사우스햄프톤 항구로 돌아왔고 101공수사단은 램본에 있는 주둔지로 돌아갑니다.
램본에서 101공수사단의 지휘부는 닐랜드 상사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닐랜상사에게 전투임무해제를 명하고 그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내립니다.닐랜드 상사는 자신은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계속 싸우겠다고했지만 그는 결국 귀국선에 오르게 됩니다.
닐랜드 상사가 고국에 도착했을땐 이미 그들의 부모는 나머지 3형제의 실종,전사소식을 전달받은 상태였습니다.
몇개월이 지난후 종전이 되고 버마 전선에서 실종되었던 큰형 에디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귀국하여 닐랜드와
그의 부모들에게 큰 기쁨을가져다 주었습니다.
닐랜드 상사는 제대후 구강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그분야에서 전문가로서명성을 떨치다 1980년대 초반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실 닐랜드 상사의 D-DAY이후 행적에 대해서 많은 사가들의 의견이
있었는데닐랜드 상사를 1개 중대가 가서 데려왔다는 설도 있었고
D-DAY직후 바로 영국으로갔다는 설등이 있었으나 나중에에밝혀진
바에 의하면 닐랜드 상사는 위에서 설명한대로 101공수사단이 영국으로 철수할때까지 노르망디의 전장터에 있다가 영국에서
귀국선에 올랐으며 이 사실은 모두 미국의 저명한 전사가 스테판 앰브로즈가 당시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밝혀냈습니다.
결국 닐랜드 상사의 이야기는 특이한 소재를 찾는 허리우드의 제작자들에게 알려져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나오게 된겁니다.
그리고 윗사진은 닐랜드 상사가 1943년에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