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시간 관념이 참 흥미롭다. 그것은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의 아날로그식 시간 관념과는 사뭇 다른 독특함과 오묘함을 지니고 있는것 같다. 불교의 기본적 관념은 시간이 흐르되 채워질듯 채워지지 아니하며 돌고 돌며 영겁을 향하여 흐른다는 거 같다.
불교시간의 기본 단위는 찰나(刹那)이다. 찰나는 현대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약 75분의 1초, 곧 카메라셔터속도 1/75초또는 윙크 시간인거다.
이 찰라들이 모이고 모여서 겁(劫)을 이룬다. 겁에는 반석겁(劫)과 겨자겁(劫)이 있다. 반석겁(盤石劫)은 그 지름과 높이가 15km에 달하는 바위를 베 옷깃으로 100년에 한번씩 닦아서 그 바위가 다 소모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그 바위가 다 마모되었다 해도 일겁(一劫)은 다 채워지지 아니한다고 한다.
겨자겁은 지름과 높이가 각각 15km인 통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한 씨알 씩 꺼내 그 겨자씨를 다 꺼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물론, 그 겨자씨를 통 안에서 다 꺼내도 겁이 끝나지 아니하긴 마찬가지다.
겨자겁과 반석겁의 길이가 동일한지 차이가 있는지 분명치는 않으나 그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닌것 처럼 보인다. 반석이 다 마모되어 일겁이 채워질듯 하면서도 일겁이 결코 쉽사리 완성되지 않는다는 시간 관념속에 불교의 진리가 숨어 있는것 같다.
어쨌거나, 겁(劫)은 다시 20겁을 1대겁(1大劫)단위로 하는 4대겁(4大劫)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곧 성겁(成劫;20겁) 주겁(住劫;20겁) 괴겁(壞劫;20겁) 공겁(空劫;20겁)으로서 모두 80겁으로 채워져 4대겁(4大劫) 단위로 계속 돌고 돈다고 한다. 이 4대겁은 만물이 생성되어(성겁) 안주하고(주겁) 괴멸한(괴겁) 뒤 공허로 돌아갔다가(공겁), 다시 성-주-괴-공의 4대겁으로 반복된다는 식으로 시간관념을 구성하고 있는 거다.
요컨대, 불교의 시간은 찰라를 기본 단위로 해서 찰라마다 생성과 소멸이 되풀이 되고(刹那生滅), 찰라들로 채워진 겁은 반석의 마모 또는 겨자씨의 소진이 이루어 지더라도 일겁이 완성되지 않는다. 일겁이 완성되면, 20겁을 일대겁으로 하는 4대겁을 대단위로 하여 생성, 소멸을 반복하면서 영겁(永劫)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교의 시간관념을 음미하면서 나는 80겁이 소요되는 성주괴공의 4대겁은 커녕, 반석겁이나 겨자겁으로 구성되는 일겁(一劫)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그 엄청남에 짓눌려 숨이 다 막힐 지경이다. 바위가 다 마모되어도 일겁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 숨이 막히려는 찰나, 나는 한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은 얼마나 왜소하고 서글픈 존재인가, 또 ‘나’ 라는 존재는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영겁 속에서, 일상속에서 인간실존의 존재 의의을 새삼 재발견하게 된다. 영겁(永劫)으로 향하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네 삶이란 한갓 한 점으로?표시되지 아니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될 쯤이면, 우리네 삶이 참 덧없고 무상타는 생각도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나는 맹렬한 삶의 의욕도 솟구쳐 오름을 느낀다. 인간 실존의 서글픔만을 탓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거다. 내 나이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곧 불혹이고,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동안 살아온 날을 크게 초과하지는 않을 것이나, 그것마저 확실치는 않다. 분명한 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지만은 않다는 사실인거 같다.
비록, 불교의 시간관념에 비추어볼 때는 그리 길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그리 짧은 것만도 아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책무가 주어져 있고, 그것이 삶의 길, 인간의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인생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 되도록 많이 경험하고 누리고 느끼며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영겁의 시간 속에서 혹은 일상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기 인생에서 저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몰입해야할 이유가 있다. 우리의 일생은 일과 자기실현, 사랑 가족 우정 사회봉사.....를 통해서 생활의 충일감과 만족감을 채워나가기에도 벅찬 시간들인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얼싸안고 마주보고 웃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그리 넉넉지만은 않은거 같다. 다정한 친구들과 오붓이 모여 따뜻한 인정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그리 충분치는 않은거 같다. 부모님 형제자매, 그리고 자녀들과의 애틋한 정을 나누기에도 많지 않은 시간들인거 같다. 자기가 맡은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성장과 자기실현을 추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들인 거 같다.
아무튼 나는 불교의 시간관념이 암시해 주는 인생의 의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번잡한 일상생활 속에서 함몰되지 않도록 내 손목에다 “불교의 시계”를 차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분석과 대안이 있는 관세사, 윤영호 총총....
첫댓글 저도 "불교의 시계"차고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