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누구와 갔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저물녘 막막한 들판에 탑이 하나 서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절반쯤 허물어져 가는 탑이었다. 어느 한 시대의 허물어짐이랄까, 장구한 세월의 침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석탑이었다. 단순히 탑이라고만 부르기에는 그 장중함에 대한 표현으로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주위에 절 건물이 있었다면 오히려 탑이 주는 감흥은 훨씬 덜했을 지도 모른다. 그 탑은 빈 벌판에 서서 종교의 융성함보다는 퇴락함을, 진리의 견고함보다는 무상함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었다.
동편에는 남아있는 서편 탑을 모방하여 거의 새로 축조하다시피 한 미끈한 동탑이 서있었다. 동탑과 서탑 사이의 허막한 거리, 그 사이로 건널 수 없는 강물처럼 바람이 불었다. 기계로 다듬은 동탑과 달리 서탑에는 징으로 쪼은 인고의 자국과 해묵은 풍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탑은 이제 굳은 침묵 속에서 조금씩 기울어지며 흙에 묻힐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탑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내린 모습은 어떤 비장미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붕괴를 눈앞에 둔 듯한 그 위태로운 순간을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붙잡고 있었나 궁금해 하면서 탑의 뒷편으로 돌아선 순간 그 궁금증은 허망하게 풀렸다. 검은 시멘트 덩어리가 거의 무식할 정도로 처발라져 탑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듣기로는 일제시대 당시 일본인 사학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나는 두고두고 그 시멘트 덩어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탑을 온존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딴은 그 방법이 옳을 것도 같다. 새로운 돌로 아무리 정교하게 짜맞춘다 해도 유실된 부분을 완벽하게 복원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헌옷에 덧댄 새 천처럼 우스꽝스러운 천박함만 드러냈을 수도 있다.
요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을 기화로 불거진 한일문제에 대한 논란이 그치질 않는다. 일본과의 대립보다도 우리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사람들 면전에서 저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경악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친일 발언들이 횡행한다. 단순히 우리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정략적 수준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강고한 신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천 년에 걸친 중국 문화의 영향,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 최근 미국을 통한 압도적인 물질문명의 도래 등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볼 때, 지금 우리의 문화는 어쩌면 저 석탑처럼 한 쪽으로 기운 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형국인지도 모르겠다. 외세 의존이라는 극약 처방을 저 미륵사지 석탑 뒤편의 시멘트처럼 훌륭한 방편으로 삼아 덕지덕지 바르고서.
지금은 그 석탑을 해체하여 새로이 복원했다고 한다. 아마도 새로 복원된 탑은 그 날 내가 본 석탑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일 것이다. 새 탑이 어떤 모습이든 나는 여전히 과거의 그 탑을 사랑한다. 그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좋아했고 남아있는 탑에 연장선을 그려 완벽한 탑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를 좋아했으며 검은 시멘트로 가려져 있던 탑의 뒷모습 또한 좋아했었다. 시멘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에 가려진 진실을 사랑했던 것이다. 시멘트의 존재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시멘트의 무게가 아무리 우리 마음을 짓누른다 할지라도, 나는 무너져내리는 탑의 쓸쓸함과 그를 견디는 탑의 안간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